한 발 물러서서 백성들을 구한 슬기로운 임금

가락국의 마지막 영토, 경남 산청군 왕산 기슭의 구형왕릉을 찾아서

등록 2007.03.26 10:08수정 2007.03.2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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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의 마지막 왕이셨던 仇衡王은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서 나라를 신라에 양도했습니다. 신라의 법흥왕은 구형왕을 양왕으로 봉했습니다.
가락국의 마지막 왕이셨던 仇衡王은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서 나라를 신라에 양도했습니다. 신라의 법흥왕은 구형왕을 양왕으로 봉했습니다.이승숙
지난 3월 17일엔 우리 시댁 형제간들이 경남 사천 사는 막내 시동생 집에 다 모였다. 형들이 늘 어리게만 여기는 막내 시동생의 둘째 아들이 첫 생일인 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을 비롯하여 여러 형제들이 다 사천으로 내려간 터였다.

형들 눈에는 막내 동생이 늘 어리게만 보이나 보다. 큰 형이 되는 우리 남편만 해도 늘 막내 동생을 걱정한다. 하지만 이번에 가서 보니 우리들의 걱정은 기우였음이 밝혀졌다. 막내 시동생은 알토란같은 자식들을 둘씩이나 데리고 오순도순 정답게 잘 살고 있었다.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막내 동서의 살림 솜씨가 한 눈에 다 들어왔다. 눈길 가는 곳 마다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막내 동서는 살림을 참 예쁘게 잘 살았다. 아이들도 얼마나 잘 거뒀는지 병치레 하나 없이 탄탄하게 잘 자랐다. 두 아이 모두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사람들과도 편안하게 잘 어울렸다.

식구들이 다 모이니 집이 온통 시끌법적하다. 애들은 애들끼리 놀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오랜만에 자손들이 노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흡족하신지 아버님 얼굴이 연신 벙긋거린다.

"야들아, 내일은 산청 구형왕릉에 가보자. 내가 전부터 너거한테 보여주고 싶었구마는 기회가 없었다. 이번 참에 그게 가서 조상님들 뵙고 오자."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제 10대 구형왕은 김유신 장군의 증조부이시기도 합니다.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제 10대 구형왕은 김유신 장군의 증조부이시기도 합니다.이승숙
가락국의 마지막 왕이신 구형왕의 릉에 가다

아버님은 이번 참에 계획을 단단히 세우고 오셨나 보다. 무슨 일을 하시든지 간에 세부 사항까지 다 계획을 세우고 챙기는 아버님 성미신데 아마도 몇 날 며칠을 이 생각하시며 행복해 하셨을 거 같았다.


"가락국은 시조대왕에서 시작해서 10대 임금님까지 내려왔는데 고만 신라에 병합이 되었는기라. 마지막 왕인 구형왕께서 국운이 다한 가락국을 신라에 넘기시며 백성들이 아무 차별 대우 안 받고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카더라. 그리고 여기 산청 땅으로 내려오셨는 기라."

"그기 가보마 알겠지만 참 희한하데이. 왕릉이라면 대개 보면 흙 봉분인데 구형왕릉은 돌을 쌓아서 만들었어. 아마도 그런 왕릉은 다른 곳에 없을꾸로?"


아버님은 수로왕으로 부터 시작해서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김해 김씨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셨다.

"구형왕은 돌무덤에 묻히기를 스스로 원했다 카더라. 국통을 끓은 사람이 어찌 따뜻한 흙무덤에 묻힐 수 있냐 그러시며 돌무덤에 묻히기를 자청하셨단다. 나라를 신라 법흥왕에게 넘기시며 백성들을 부탁하고 이 산골짝 산청으로 들어왔다는데, 가만 보면 여기가 바로 가락국의 마지막 영토인기라."

아버님은 약주잔을 기울이시며 우리들에게 선대왕인 구형왕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구형왕릉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 왕산 기슭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피라미드형 돌무덤입니다.
구형왕릉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 왕산 기슭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피라미드형 돌무덤입니다.이승숙
뿌리 없는 나무가 없고, 조상 없는 후손은 없는 기라

우리 아버님은 젊었을 시절,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서 힘써 노력하며 열심히 사셨다. 그 결과 지금은 남들이 다 부러워할 만큼 집안 살림을 탄탄하게 일구셨다. 더구나 슬하의 5남매가 어디 내놔도 안 빠질 정도로 자리를 잡아서 아버님은 그 점이 가장 든든하다 하셨다.

수신에 제가까지 하신 아버님은 이제 조상님을 모시는 일에 아주 지극하시다. 우리가 이만큼 사는 거도 다 조상님 덕분이라 하시며 조상님 모시기를 한결같이 해야 한다고 하신다. 아들 며느리며 손자녀들이 모이면 윗대 어른들 살아가신 이야기를 늘 들려주신다.

"뿌리 없는 나무 없고 조상 없는 후손이 없는 기라. 우리가 이만큼 사는 거도 다 조상님 덕분인 기라. 그저 조상님 은덕에 고마워하며 살아야 한다."

늘 듣는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새로운 거는 나 역시 자식을 둔 부모이기 때문이리라. 조상님의 은덕으로 내 자식들이 잘 되기를 빌면서 아버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 다음 날(3월 18일) 아침을 먹고 산청으로 향했다. 길을 아는 아버님이 앞장서시고 우리들은 줄을 지어 아버님 뒤를 따랐다. 아들 며느리에 사위까지 해서 대부대를 거느리고 조상님을 뵈러 가는 아버님은 흥이 절로 나시는지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오르셨다.

아버님이 선대왕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니다.
아버님이 선대왕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니다.이승숙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전해 내려오는 피라미드형 돌무덤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돌무덤이 한 기 있다. 바로 가락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을 모신 능이다. 비스듬한 산기슭을 의지하여 수만 개의 잡석으로 쌓아올린 이 무덤은 모두 7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단의 너비는 약 20미터, 전체의 높이가 7.15미터에 이른다.

기록에 따르면 이 능은 왕릉으로 관리되어 오다가 인진왜란 이후로 잊혀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조 때 기우제를 지내고 오던 고을의 한 좌수가 능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기록들을 능 근처에 있던 절의 대들보 위 나무 궤에서 찾았다고 한다. 그 궤에는 구형왕릉이라는 기록과 왕과 왕비의 영정, 갑옷, 칼 등이 들어 있었다 한다. 그래서 이 능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김해평야의 곡창지대에 터를 잡고 나라를 일으킨 가야는 시조대왕인 수로왕으로 부터 해서 10대 임금인 구형왕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신라의 침입으로 나라가 한 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신라의 법흥왕은 서기 532년 대군을 이끌고 가야를 쳐들어간다. 구형왕은 백성의 안위를 위하여 법흥왕께 무릎을 꿇는다. 최후의 일인까지 목숨을 건 싸움보다는 백성의 안위를 먼저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죽기보다 힘든 양위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김해의 기름진 땅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얻은 법흥왕은 약속대로 가야의 백성들을 차별없이 대한다. 그리고 구형왕을 양왕으로 봉하고 구형왕의 자녀들과 신하들에게도 능력에 맞는 직책을 준다.

하지만 구형왕은 국통을 잇지 못한 죄인이라 스스로 칭하시며 가족들을 이끌고 산청으로 내려와서 칩거하게 된다. 그리고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구형왕은 죽기보다 더 어려운 결정을 내린 임금이었다. 그는 백성들의 안위를 위하여 나라를 양위하였다. 쉽지 않은 결단으로 백성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다. 신라는 약속을 지켜 가락국의 백성들을 흡수하여 이후로 국운이 크게 흥하게 되었다. 나중에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 김유신 장군은 구형왕의 증손자가 된다.

만일 신라의 침공 때 죽음으로 결사 항전을 했더라면 김유신과 같은 불세출의 영웅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김해 김씨가 번성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위시하여 무수한 인재들이 양왕의 뒤를 잇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현명한 선택을 하셨나 싶다.

이만큼 사는 것도 다 조상님 덕이라고 늘 강조하시는 시부모님 덕분에 구형왕릉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만큼 사는 것도 다 조상님 덕이라고 늘 강조하시는 시부모님 덕분에 구형왕릉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이승숙
아이들을 통해서 이어져 내려가는 뿌리

어린 조카아이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재롱을 부린다. 애들 눈에는 이보다 더 좋은 놀이터가 없나보다. 능을 따라서 산비탈을 한 바퀴 돌기도 하고 잔디밭에서 재주 넘기도 한다.

세월 속에 사람들은 왔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자손들을 통해서 역사는 늘 이어지고 계승된다. 저 어린 아이들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고 조상 없는 후손이 없다지만 후손 없는 조상님 역시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 소중한 존재들인 것이다.

"며늘아들아, 너거가 있어서 우리가 있다. 각자 다른 성씨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김해 김씨 문중으로 시집와서 손을 이어준 며느리들 덕분에 우리가 있는 거다. 오늘은 내가 맛있는 거 사주꾸마, 먹으러 가자."

마음이 흡족해진 아버님이 한 턱 내시겠다고 했다. 자손들을 다 거느리고 조상님들 뵈러 왔으니 아버님 마음이 흥복으로 가득 찰 만도 하다.

산을 타고 맵싸한 바람이 내려왔다. 봄이라지만 아직도 산기슭에선 찬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3대가 모인 곳에는 훈풍만이 불었다. 오래오래 자손들이 흥성하기를 바라는 조상님들의 바람이 따스한 마음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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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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