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삼을 튀겨 먹는다?

바다의 인삼, 해삼 별식을 먹으며

등록 2007.03.23 09:16수정 2007.03.2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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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집을 나갔다. 두 아이를 데리고. 도대체 어딜 간 거지? 배는 왜 이리 고픈 거야. 씩씩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가 옷장 속에 옷을 넣은 후 거실 소파에 앉아 무심코 TV를 켰다. 그리고 TV 위 달력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는데, 아 이런! 이제야 생각났다. 오늘이 아내의 동창생 모임이었군. 맛있는 것 먹인다며 아이들도 데려갔지. 정신하곤.


그나저나 시간은 어느덧 8시를 가리키고 배는 슬슬 고파오고 도대체 뭘 해먹는담. 집사람이 만들어 놓은 반찬과 국거리는 냉장고에 곱게 있긴 하지만 그런 평범한 것은 먹기 싫고. 뭐 좀 좋은 것 없을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중에 냉장고 한 켠에 오도카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해삼이었다. 얼마 전에 가까이 사는 친척분이 싸게 구입했다며 가져다 준 것이었다. 참 질기게도 남아 있다. 3일 연속해서 날 것으로 먹었는데도 아직 남아 있으니. 심드렁한 기분으로 다시 소파로 돌아와 TV를 켰다.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음식채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손질된 해삼
손질된 해삼김대갑
음식채널에서는 중국편이 소개되었는데, 아이스크림을 튀겨 먹는 장면을 방영하고 있었다. 특이하군. 아이스크림을 튀겨먹다니. 그때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 그래, 아이스크림도 튀겨 먹는데 해삼이라고 못 튀겨 먹냐? 해삼을 한 번 튀겨서 먹어보자.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전광석화처럼 차비를 차리기 시작했다.

밀가루를 걸쭉하게 반죽한 후 계란을 하나 풀었다. 적당량을 만든 후에 손질한 해삼을 무더기로 쓸어 넣었다. 그동안 프라이팬에서는 기름이 설설 끓고 있었다. 이제 밀가루에 범벅이 된 해삼을 프라이팬에 올려서 적당히 튀기기만 하면 된다. 야릇한 기대와 흥분감으로 해삼을 팬 위에 올렸다.

잠시 후, 포도씨유에서 적당히 익어가는 해삼에서 바다의 향이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해삼 튀김을 젓가락으로 하나 집어서 입 안에 살짝 넣어 보았다. 오오, 이런 경천동지할 맛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해삼튀김
해삼튀김김대갑
적당히 익은 밀가루의 바삭함과 해삼 자체의 짭짤한 맛이 변증법적으로 결합하면서 입 안에 마구 몰려오는 황홀한 맛이라니! 감히 어느 누가 이런 기발한 요리를 개발한단 말인가?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히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남은 밀가루 반죽이 아까워 생미역과 버섯을 넣어서 튀겼는데 생미역 튀김 또한 별미였다. 생미역에 밀가루를 입혀 튀겨 먹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천재적인 발상(?)이었다. 껄껄.


해삼 튀김과 생미역 튀김을 안주 삼아 소주를 몇 잔 먹으니 불콰하게 몰려오는 기분이 여간 상쾌한 게 아니다. 인삼처럼 영양이 많은 해물이라 하여 해삼이라고 불렀다는 생물. 서양에서는 바다의 오이, 바다의 소시지, 바다의 뱀 등으로 부르기도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회로 먹지만 중국에서는 말려서 먹는 생물인 해삼.

덤으로 만든 생미역 튀김
덤으로 만든 생미역 튀김김대갑
해삼은 4~5월에 많이 잡히고, 가을부터 맛이 좋아지기 시작하여 동지 전후에 가장 맛이 좋다. 특이한 것은 인삼에 사포닌 성분이 있듯이 해삼에도 사포닌 성분이 있단다. 우리 조상들이 해삼이라 부른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만큼 해삼은 싸면서도 우리 몸에 좋은 성분을 가진 생물이라는 말이다.

해삼회, 해삼볶음, 해삼찜, 해삼탕은 있어도 해삼 튀김은 결코 없었다. 모든 요리라는 것이 창조의 과정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콜롬버스의 달걀처럼 상식을 깨는 행위이다. 요리는 그런 상식을 깨면서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내일은 해삼을 가지고 또 어떤 요리를 개발해 볼 것인가? 불콰한 기분으로 다시 연구에 몰입해야겠다. 역발상의 묘미, 역발상의 신선함. 해삼 튀김을 즐겨보시도록.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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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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