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 동국대 학생위원회
홍씨는 이어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이 만연한 우리 사회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삶은, 몸과 의식으로 나뉠 수 있죠. 상태로서의 몸은 건강을 추구하며, 지향으로서의 의식은 균형을 지향합니다. 몸에 대한 관심은 우리 사회에 상당히 높은 데 비해 의식에 대한 관심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없어요. 리영희 선생은 <대화>라는 대담집에서, 중학생 때 자신의 균형된 의식을 찾기 위해 '데칸쇼(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에 파고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제 자신 세대들도 어설펐지만 삶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어설픈 고민조차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몸은 건강하지 않을 때 아파하는 자각증세가 있는데 의식은 균형을 잃어도 아플 줄 모르니 끊임없는 자기성찰이 필요하다"고 의식의 중요성을 역설한 홍씨는 "몸은 자신이 허락받지 않으면 건드릴 수 없는데, 의식은 나를 둘러싼 사회가 계속 건드린다"며 '사회화 과정'에는 "개인의 삶을 위한 것도 있지만 자신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요소도 분명히 있다"고 말하며 "비판적 안목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여러분은 끊임없이 나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령 공교육이라면 헌법에 규정된 대한민국의 존재의미, 곧 '민주공화국'의 어원이 '공적인 일(res publica)'이라는 것을 구성원들에게 인식시켜 주는 것이 의무입니다. 하지만 가르쳐주지 않죠. 20:80의 사회가 아닙니까? 80에 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존재에 맞게,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정책으로 내세우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죠.
민주주의의 라틴어 어원은 '데모크라토(demos cratos)'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민주주의의 본질은 '서민 지배'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만약, '20'을 위한 정책을 내세우는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80'들을 봤을때 '내가 주장한 민주주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홍씨는 의식의 기본속성으로 이런 현상을 풀이하기 시작했다. 한 번 형성된 의식은 그 의식을 계속 고집하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합리화하려는 동물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연립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간 <한겨레> 독자들 중 절반은 조·중·동으로 신문을 바꿉니다. 사은품, 무료구독 등 보수신문들의 집중공략에 따른 것이죠. 그런데 신문을 옮긴 독자들의 대부분이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한겨레>가 예전같지 않다' '볼 내용이 없다' 등의 얘기를 하면서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것입니다."
"의식을 고집부리지 말고 계속 회의해보라. 그리고 합리화시키지 말고 합리적 동물이 돼라"고 당부한 홍씨는 '나 자신이 주도하여 의식을 형성하는 과정'을 이렇게 말했다.
"일단 책을 많이 읽음으로써 여러 시대의 생각에 대해 알아야 하고, 열린 토론을 통해 동시대 다른 생각도 접해보고, 여행 같은 다양한 직접경험으로 실제 부딪혀 본 후, 마지막으로 자기성찰을 통해야지 올바른 의식형성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책을 도통 읽지 않고, 토론할 때 자기 생각을 그저 확인하려만 들고, 동아리들은 다 죽어간 현재 대학생들의 의식은 '자기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칼 맑스의 말처럼 '한 사람을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국가권력이 교육을 장악하고 있고 자본이 대중매체를 장악한 현실. 그러니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구호에 다수가 '사회주의적, 좌파적 발상'이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죠."
홍씨는 '공화국의 주인'으로서 개인이 지금까지 형성된 의식이 지극히 일방적이고 편향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박노자씨가 왜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고 했는지, 칼 맑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어떤 얘기를 했는지, 한홍구씨는 <대한민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한국사회연구회'라든지 '근현대사연구회' 같은 동아리를 만들어서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