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휴가 나온 아들 "우리 아들 맞어?"

군대 간 아들의 아름다운 변화를 보면서

등록 2007.03.24 14:29수정 2007.03.2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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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첫 정기휴가를 나왔다. 입대한 지 10개월만이다. 자식 군대 보내고 한참 동안을 눈물로 지새우는 많은 엄마들, 심하면 우울증까지 생긴다는 엄마도 있지만 나는 우리 아들이 "친엄마 맞아?"라고 섭섭해 할 정도로 희희낙락 아들의 등을 떠밀다시피 했다.


물론 수시로 국민들을 놀라게 하는 수많은 군대 내 사건사고. 총기사고, 폭행사고 그리고 자살 사건까지. 그 많은 사건사고를 보면서 어떤 부모들이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싶고, 또 보내고 나서는 맘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겠는가.

그래도 마음 든든히 먹고 아들의 입대를 아주 좋은 쪽으로 해석한 것은 내가 원래 '전국구'를 무진장 선호하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옛 속담에도 '사람 새끼는 나서 서울로 보내고 말 새끼는 제주로 보내라'고 했다. 그 속담처럼 나도 내 아들이 힘들고 거칠더라도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복잡한 세상에서 세파를 능히 헤쳐 나갈 수 있는 뚝심을 길렀으면 싶었다.

비슷한 정서, 비슷한 입맛, 눈에 익숙한 고향 산천. 우선 먹기는 곳감이 달다고, 제 살기 편한 곳만 바치다 보면 온실의 화초처럼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을까. 하여튼 공부가 시원치 않아 대학은 서울로 못 갔지만 다른 지역에 있는 지방 대학을 다니다 입대를 하게 된 아들.

자대 배치 받은 아들 면회갔을 때. 든든해요. ^^
자대 배치 받은 아들 면회갔을 때. 든든해요. ^^조명자
부대도 아주 강원도 최전방으로 떨어졌다. 입영 며칠 전 선후배들이 베풀어 준 환송연에서 만취해 제 선배 붙잡고 "나 군대 가기 싫어..."하며 악을 악을 썼다던 아들이었는데 '짬밥'의 연륜이 제법 묻은 의젓한 모습이 되어 돌아왔다.

작년 4박 5일 100일 휴가를 나왔을 때는 "엄마, 학교가 너무 가고 싶어요. 제대하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어요"라고 갑자기 철든 소리를 해 나를 사정없이 행복하게 해주더니 이번엔 아예 든든한 울타리처럼 기대고 싶은, 어른이 돼 버린 것 같았다.


"엄마, 군대 가서 제일 크게 얻은 것은 성격이 낙천적으로 변했다는 것일 거예요. 군대라는 곳이 맘에 안 든다고 뛰쳐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별별 놈이 다 있는 곳에서 견디려면 어쩔 수 없지, 그냥 좋게 생각해야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어요."

"그래. 사회조직도 적응하기 쉽지 않은데 군 조직이야 오죽하겠니? 그런데 지금도 폭언이나 구타가 발생하고 있니?"


"아니요. 지금 그렇게 했다간 제까닥 영창이에요. 요새는 신병들이 말을 안 들어 간부들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지경이라니까요. 그리고 부대 내 사고를 은폐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외부와 통화도 마음대로고 또 대대장에게 전하는 '마음의 편지'라는 제도도 있어 익명으로 고발할 수 있는 공간도 있거든요."


군대 내에선 선임자나 간부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병이 '신참' 이등병이란다. 적응이 쉽지 않은 성격이거나 정서가 불안한 아이들은 언제 터질 줄 모르는 화약고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병들은 아예 보초를 빼 버리고 불침번 당번을 맡긴다나. 실탄을 장전한 총기를 휴대하는 보초 임무 특성상 위험이 너무 큰 탓이다.

"아들, 군 생활을 힘들어 하는 신참들한테 잘 해줘라. 가뜩이나 어리버리한데 선임들한테 구박이나 당하고 그러면 더 정을 못 붙일 것 아니냐?"

"그럼요. 내가 얼마나 신경을 쓴다고요. 힘들어 뵈는 아이들이 있으면 불러다 이야기를 해요. 어려운 일 있으면 내가 도와주겠다고 하면 처음엔 말을 잘 안하다가도 나중엔 털어놓거든요. 그렇게 몇 번 이야기 나누다 보면 확실히 표정이 밝아지고 적응도 쉽게 하는 것 같아요."


후임들한테 잘 해줬더니 요즘은 "이야기 좀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신병들도 있다고 뻐기는 아들을 바라보니 그렇게 오질 수 없었다. 더구나 군대 가기 전에는 허리 아프다고 매일 징징 짰는데 입대 후엔 허리 아픈 것도 견딜 만하다니 어미 입장에선 가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수준이다.

"아들아, 네가 제일 힘든 부분은 어떤 것이니?"

"제일 힘든 부분이요? 그야 물론 인간관계죠. 아이들이 정말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요. 동료들에 대한 배려가 눈곱만큼도 없는 얘들을 보면 으~~ 한 대 치고 싶어요."


5톤 트럭 운전병으로 복무하는 아들, 큰소리가 점입가경이다. 트럭으로 인원 수송도 하고, 주부식은 물론 그 무거운 유류까지 나르다 보면 일 하는 데는 도가 텄다나. 사회에 나가 제 먹고 살 일은 걱정도 말란다.

"엄마, 나는 이담에 뭐를 하든지 먹고 사는 덴 자신이 있어요. 쌀 200포대도 날라봤는데, 뭘. 택배를 해도 되고, 또 대형운전면허 따서 버스 운전기사를 할 수도 있고, 조금 더 배우면 자동차 정비도 문제없어요. 그러니까 나에 대해선 조금도 걱정하실 것 없어요."

아이고, 이놈아 장하다. 직업 종류 늘어놓는 것 보면 어이가 없지만 그래도 그 나이에 허파에 바람 들지 않고 신실한 사고를 하는 아들놈이 나름대로 믿음직스러웠다. 9박 10일의 휴가를 마치고 귀대한 아들의 흔적을 살피다 아들의 미니 홈피까지 가게 되었다.

"내일이면 들어가는구나...
잘 쉬었다 간다. ^^ 밖에서 가족들하고 친구들 보는 것도 좋지만..
동기들하고 선임들, 후임들하고
지지고 굴러다니는 것도 참 좋다. ^^
그래서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갑니다.^^ 다들 안뇽~~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아들. 사랑한다, 사랑한다 내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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