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불 폐지 득볼 대학 10%... 보수 언론의 사실 왜곡

[지역언론 별곡-179] '침묵의 나선이론'과 '3불 정책' 보도

등록 2007.03.24 15:46수정 2007.03.2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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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교수신문>은 ‘3불 폐지로 득볼 대학 10%밖에’란 제목의 기사에서 권영건 대교협 회장의 인터뷰 기사를 크게 다뤘다.

<교수신문>은 ‘3불 폐지로 득볼 대학 10%밖에’란 제목의 기사에서 권영건 대교협 회장의 인터뷰 기사를 크게 다뤘다. ⓒ 교수신문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지배적 여론과 합치한다고 믿으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그렇지 않으면 침묵을 지킨다."

커뮤니케이션 학자 노엘레 노이만(E. Noelle-Noumann)은 1970년대 '침묵의 나선이론(spiral of silence theory)'을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소수에 속해 따돌림당할까봐 숨죽이는 현상이 '침묵의 나선이론'의 주된 개념이다.

그런데 시대적 상황이 달라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종종 이러한 현상이 목격된다. 특히 여론시장에서 우월적, 지배적 지위를 놓치지 않으려는 국내 수구보수언론의 의제설정에서 자주 묻어난다.

이유는 뭘까? 옳든 그르든 간에 '다수의 의견'이라는 내부적 착각과 이에 동조하는 외부적 세력의 인식 때문이다.

'침묵의 나선' 건재하다고 믿는 걸까?

사학법 개정문제와 '3불 정책'(본고사·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 금지)을 다루고 있는 언론의 보도태도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의제설정이 제각각이다. '3불 정책'의 뇌관 핵심을 기어코 건드린 쪽은 이번에도 보수신문이다. 다수의 의견임을 내세워 맹렬하게 물어뜯는 듯한 보도행태는 '침묵의 나선이론'이 아직 건재하게 살아 있다는 착각을 들게 할 정도다.


그래서일까. 일부 지역언론들은 자신의 의견이 소수의견에 불과하거나 열세 또는 하향세에 있음을 알기 때문인지, '고립의 두려움' 때문인지 의견을 숨긴 채 침묵에 빠져들었다. 심지어 동조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보수언론이 '획일화의 압력'으로 이해시키려는 '3불 정책'이 논쟁의 중심에 섰지만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3불 정책의 보도행태에 주목하기에 앞서 지난 15일 감사원 발표자료에 시선을 돌려보자. 지난해 3월 13일부터 5월 30일까지 전국 124개 학교법인 및 그 소속 학교, 교육인적자원부 및 16개 시·도 교육청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학지원 등 교육재정 운용실태'에 대한 감사결과다.


감사에서 드러난 사학들의 비리실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사학들의 비리유형은 교비 횡령·유용에서부터 비자금 조성, 공사계약 체결 시 리베이트 수수, 설립자의 친인척 등 무자격 특수 관계자의 교원 임용, 회계문서 파기 등 파렴치한 범죄행위들로 넘쳤다.

교육재단을 운영할 최소한의 '자질'조차 갖추지 못한 재단들이 전횡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 그러나 개정 사학법에 반대해 온 수구보수신문들은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왜일까.

민언련의 3월 17일 성명 '사학비리, 왜 이렇게 축소보도하나'에서 답을 구할 수 있다. 이 성명에는 "그동안 수구보수신문들은 비리 사학은 '일부'의 문제라고 강변하며, 최소한의 학교운영의 투명성을 지키자는 취지의 개정 사립학교법을 '사학들의 자율권 침해'라고 흔들어 왔다"고 전제한다.

<조선>은 사학재단 대변 신문인가?

a 3불 정책 폐지론을 강조하는 <조선> 사설들

3불 정책 폐지론을 강조하는 <조선> 사설들 ⓒ 조선닷컴

하지만 비리 내용이 심각해 고발까지 당한 사학이 전체 조사 대상의 5분의 1을 넘는데, 이것을 '일부 사학'만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아예 눈을 돌려 보도하지 않은 <조선> <동아> <중앙> 등 수구보수언론을 민언련은 꼬집었다.

민언련은 "특히 조선일보는 감사결과를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며 "사학재단의 주장이라면 시시콜콜한 것까지 보도해 왔던 조선일보가 사학재단들과 관련된 '비리사실'에 대해서는 눈감고 있으니 '사학재단 대변 신문'이라 할 만하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서울대와 사립대들이 코너에 몰린 보수언론의 구원군으로 혜성처럼 나섰다. 불과 일주일만이다. 서울대 장기발전계획위원회가 '3불 정책'을 비판한 지 하루만에 사립대 총장들도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22일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회장 손병두 서강대 총장)는 대입 3불 정책의 폐지를 강하게 요구하는 것을 기점으로 <조선> <중앙> <동아>는 다시 신났다. 조·중·동은 적극적인 3불 정책 폐지론을 기사와 사설, 논평에서 표명했다.

<조선>의 사설은 대표적이다. 23일 사설 '교육과 가난이 뭔지도 모르는 '3불 정책'의 위선'에서 "민족사관고의 학생들이 올해 서울대에 7명이 합격했지만 외국 명문대엔 80명 넘게 합격할 것"이라며 "서울대가 민사고 출신 학생들의 우수성을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우수한 학생들이 너나없이 외국 명문대로 진학한다"고 주장했다.

기여 입학제에 대해서도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줘 대학 교육의 기회를 주고 제대로 된 실험 실습실을 갖춰 탁상공론식의 과학교육을 면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자는 것이 기여 입학제의 목적"이라고 했다.

24일 사설에서도 <조선>의 포문은 식을 줄 몰랐다. '3불은 나라를 거꾸로 끌고 가고 있다'란 사설 제목에서부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이 정권의 '3불' 정책은 국가가 어린 학생들을 빵 기계로 빵 굽듯 획일적 인간으로 찍어내겠다는 것이다"며 "창의성과 다양성을 잃어버린 국민이 21세기의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3불 정책 비판논리 궁핍

a 입시전형 방안 변경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국제신문> 24일자 사설

입시전형 방안 변경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국제신문> 24일자 사설 ⓒ 국제신문

<동아>도 23일 사설 '대입 3불과 교육 포퓰리즘'에서 반감 전선을 부채질했다. <중앙>은 24일 사설 '차기 대통령은 교육을 다시 세울 사람이어야'에서 평준화 정책은 한마디로 잘못됐다고 성토했다.

<중앙>은 사설에서 "능력이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을 어떻게 평등하게 만들 수 있는가. 이런 평등주의가 깨지지 않는 한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고 하면서 "새로운 교육혁명은 차기 정부로 넘어갔다"고 진단해 버렸다.

몇몇 지역신문들이 이에 가세하고 있으나 논리가 궁핍하다. 공교육 부실과 사교육비 부담, 촌지와 치맛바람을 우려하며 가난한 지역민들의 입장을 대변해 왔던 지역 언론들이란 점에서 폐지론을 들추고 나선 모양새가 어색하다.

<부산일보>는 23일 사설 ''3불 정책' 존폐 적극 검토할 때가 되었다'에서 보수언론들과 비슷한 당위성을 내세웠다. 이 사설은 "이쯤 되면 3불정책의 장단점을 하나씩 따져보고 보완책은 없는지 재검토할 때가 되었다"며 "평등만 강조하다가는 세계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만다. 우리 대학 가운데 서울대만 세계 100대 대학 중 겨우 63위에 진입한 현실이다"고 지적했다.

<국제신문>도 이날 사설 '교육 3불 정책 공론화 필요하다'에서 "고수든 완화든, 교육 3불정책의 진지한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더니 하루 지난 24일 사설 '입시전형까지 서울 눈치 보는 지방대'에서는 "대부분의 부산 고3학생들이 택하는 대학은 결국 지방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입시전형 방안 변경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태도를 바꿨다.

이에 앞서 <매일신문>은 22일 사설 ''3불정책' 공론의 장에서 재검토를'에서 "3불 정책 하나하나를 재검토할 때가 됐다"고 동조했다. <대전일보>도 23일 사설 '교육부, 3불 정책 폐지 검토할 때다'에서 "교육부는 겉으로만 대학의 자율성확대를 내세울 게 아니라 규제의 핵심인 3不정책 폐지를 먼저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한다.

'대입 3불 정책'이라는 주제를 놓고 보수언론들이 사설과 기고 등을 통해 폐지 쪽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이들이 왜곡된 사실을 전달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는 것은 오히려 중앙언론이다. <경향>과 <한겨레>가 보수언론에 맞서 다시 총대를 멨다.

다른 관점의 <경향> <한겨레> <교수신문>

a 3불 정책 폐지론과 관련해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제기한 <경향신문> 기획기사

3불 정책 폐지론과 관련해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제기한 <경향신문> 기획기사 ⓒ 경향신문

<경향>은 24일 사설 ''3불 정책'의 기조 유지해야 한다'에서 뚜렷한 입장을 드러낸다. 사설은 "3불 정책은 대학의 자율성을 다소 제한해서라도 더 큰 가치를 지켜내겠다며 설정한 교육 이념이다"며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최근의 3불 정책 존폐 논쟁은 일부 대학의 정제되지 않은 견해가 보수 언론들에 의해 확대 포장되고, 대통령과 정치권까지 끼어들면서 필요 이상의 정치적 담론으로 번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겨레>도 이날 사설 '왜곡과 거짓 위에서 춤추는 3불 정책 폐지론'에서 3불 정책 흔들기에 대해 조목조목 맞섰다. "3불 정책은 사교육의 폐해와 교육기회의 불균형, 대학운영의 불투명성을 최소한으로나마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한 이 사설은 "대학이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게 충분한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복마전과도 같은 사학 비리가 근절되며, 망국론까지 나오는 사교육의 폐해가 사라질 때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

<한겨레>는 "대학들은 3불 정책이 대학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 둘러대지만 경쟁력 약화의 원인은 입시제도에 있는 게 아니라, 인재를 뽑아 둔재로 졸업시키는 대학의 무사안일에 있다"는 뼈아픈 지적도 빠뜨리지 않았다.

<교수신문>도 이에 가세했다. 이날 '3불 폐지로 득 볼 대학 10%밖에'란 제목의 기사에서 권영건 대교협 회장의 인터뷰 기사를 인터넷신문에 비중 있게 보도해 눈길을 끈다. 이 기사는 "과연 3불 정책 폐지에 찬성하는 대학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대학 자율화라는 큰 틀에서 3불 정책 폐지를 논의할 순 있지만 실익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 권 회장의 발언을 무게 있게 실었다.

분명한 것은 3불 정책 폐지가 대학 전체의 의견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일부 대학 총장들의 주장이 전체 대학 총장들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 권 회장의 발언은 대교협의 공식입장이 아니고 대교협 회장 개인의 입장이라는 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정리하자. 그간 언론은 교육문제에 관한 한 다양한 의제를 설정하고 대안을 제시해 왔다. 특히 '과외 광풍 우려', '고교 서열화', '명문고 쏠림 심화' 등이 그것이다.

지역언론들은 '대학 빈부차 커 지방대 '소외'', ''공교육 붕괴' 불 보듯' 등의 주제를 다각도로 보도해 왔다. 그러면서도 이번 3불 정책에 침묵하거나 보수언론과 맥을 같이 하는 태도는 거대 보수언론의 의제를 '획일화의 압력'으로 이해하며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은 아니었는지 곱씹어 볼 때다.

'침묵의 나선이론'에서도 '따라야 할 압력'보다는 '양심 있고 책임 있는 시민의 판단'을 오히려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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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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