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기사 더보기 왕이 피서를 한 강이라고 해서 왕피천인가 왕이 피난을 갔다고 해서 왕피천인가. 울진군 근남면 신포리에 가면 이 왕피천이 모래사장을 휘돌아가면서 동해와 만나는 절경을 만날 수 있다. 앞에는 만경창파가 빙옥처럼 펼쳐져 있고, 뒤에는 천년 세월을 이긴 송림들이 망양해수욕장의 은모래 빛을 받으며 고적하게 서 있다. 그리고 그 중간지점에 울연한 소나무 사이로 아스라이 보이는 정자 하나가 있으니, 바로 관동별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망양정이다. 천근을 못내 보와 망양정의 올은말이/바다 밧근 하늘이니 하늘 밧근 므서신고, 갓든 노한 고래 뉘라셔 놀내관대/블거니 쁨거니 어지러이 구난디고. 은산을 것거 내여 육합의 나리난 듯/오월 장천의 백설은 무사 일고. 큰사진보기 ▲망양정 가는 길김대갑 금강산에서 시작된 정철의 관동별곡은 울진의 해변 언덕에 자리한 망양정에서 마침내 그 절창을 마치게 된다. 숙종이 관동팔경을 그린 그림을 보고 난 후 가장 낫다고 하여 친히 '관동제일루'라는 편액을 하사한 망양정. 사실주의의 대가이자 진경산수화풍을 창안한 겸재 정선이 두 폭의 그림을 남긴 망양정. 정철은 이 곳에서 길고 긴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송강은 고래처럼 노한 모습으로 흰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를 보면서 5월 하늘에 흰 눈이 내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은산을 깎아서 나온 부스러기가 온 세상에 흘러 은빛이 분분히 날린다고 표현했다. 직유와 은유가 변증법적으로 결합된 관동별곡의 묘미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관동별곡은 한민족의 곱디고운 언어가 아름다운 금수강산과 어우러져 빚어진 한 폭의 거대한 수묵담채화인 것이다. 큰사진보기 ▲망양정 전경김대갑 아쉽게도 현재의 망양정은 예전 송강과 김시습, 숙종이 찬양한 그 망양정이 아니다. 정선이 하염없이 경치를 응시하다가 마침내 화폭에 점 하나를 찍으면서 그려낸 그 망양정이 아니다. 깎아지른 해변 언덕에 위태롭게 서 있다가 가끔씩 지나가는 흰 돛단배들에게 그리움의 손길을 보내던 그 망양정이 아니다. 원래의 망양정은 기성면 망양리 해변언덕에 세워져 있었다. 앞으로는 망망대해가 티끌 한 점 없이 펼쳐져 있고, 그 망망대해를 오가는 어선들과 갈매기들이 멀리서 정자를 손짓하던 곳이었다. 정선이 담아낸 망양정의 옛 모습은 적어도 이러했다. 그러나 철종 시대에 옮겨진 현재의 망양정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은빛 조각들이 날리는 파도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기 힘들다. 큰사진보기 ▲왕피천이 동해와 만나는 모습김대갑 그러나 옛 모습의 망양정이 아니라 해도 현재의 망양정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훌륭하다. 태백산맥에서 발원한 왕피천에는 성류굴의 단아한 봉우리가 담겨 있다. 왕피천의 발걸음은 망양정으로 다가올수록 점차 느려져서 작은 호수를 하나 만드는가 싶더니 마침내 동해로 슬며시 잠기게 된다. 그 묘려한 모습을 보고 시심에 젖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망양해수욕장의 모래밭은 미인의 나신처럼 황홀하고, 흰 연꽃처럼 떠오르는 명월은 정인(情人)의 얼굴처럼 해맑기만 하다. 송강은 유하주를 가득 부어 달에게 물었단다. "영웅은 어디 갔으며 사선은 누구이더냐. 아무나 만나 보아 옛 소식을 묻고자 하니 선산 동해에 갈 길이 멀기도 멀구나." 참으로 아쉽게도 송강은 망양정에서 달과 유하주를 나눈 후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조금만 더 내려가서 관동팔경의 마지막이자 망양정과 또 다른 멋을 지닌 평해의 월송정을 들렀으면 좋았으련만. 만일 그가 월송정에 들렀다면 관동별곡에는 천하의 명승지가 모두 포함되었을 것이다. 아마 송강은 마음 한 구석에 월송정에 대한 그리움을 곱게 간직하면서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큰사진보기 ▲망양정에서 바라 본 왕피천과 동해김대갑 송강은 망양정에 꼿꼿이 앉아 명월을 바라보며 선정에 대한 포부를 밝히다가 소나무 뿌리를 베고 누워 선잠에 빠진다. 꿈속에서 그는 자신이 신선이었으며 황정경 한 글자를 잘못 읽어 인간 세상에 귀양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꿈속에서 신선을 만나 북두칠성과 같은 국자를 기울여 향기로운 술을 대작한다. 그리고 이 향기로운 술로써 백성들을 다 취하게 한 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 후, 옥피리를 불며 학을 타고 날아가는 신선을 배웅한다. 그때 그는 보았다. 깊이를 모르는 바다위에, 온 산과 촌락 위에 희디 흰 달이 교교하게 빛나고 있음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추천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글 김대갑 (kkim40) 내방 구독하기 페이스북 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이 기자의 최신기사 <삼국유사>를 썼다는 곳이 여기라니...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AD AD AD 인기기사 1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3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4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5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오월에 내리는 백설을 볼 수 있는 곳, 울진 망양정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인기기사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윤 대통령 조롱 문구 유행... 그 와중에 아첨하는 장관 [단독] '윤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부, 또 검찰 직격 '최순실' 소환한 민주당 "대통령 협박하는 명태균, 왜 가만두나" 블랙리스트에 사상검증까지... 작가 한강에 가해진 정치적 탄압 [이충재 칼럼] 농락당한 대통령 부부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