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시래이 안 뜯어오고 웬 빌금다지냐?"

봄나물로 어머니 반찬을 해 드리다

등록 2007.03.26 10:46수정 2007.03.2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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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나물과 빌금다지다
유채나물과 빌금다지다전희식
어제는 내가 사이버단장으로 있는 '길동무'에서 평택 대추리에 모여 마지막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보따리학교'를 여는 날이었지만 나는 텃밭을 일구어 남새들을 심고 어머니가 오줌을 누신 옷을 세 벌이나 빨았다.

오늘은 내게 특별한 인연이었던 '동사섭' 문화센터가 개원하는 날이라 오랜 도반들이 여기저기서 출발했냐고 전화들이 걸려 왔지만 나는 소쿠리를 들고 밭두렁을 오가며 나물을 뜯었다. 하루 세 끼 어머니 반찬 올리는 것도 작은 일이 아니다. 끼니때만 되면 반찬걱정이라 오늘은 날씨도 어지간해서 봄나물 뜯으러 갔던 것이다.


분홍빛 치마 하늘거리며 나물 뜯는 봄처녀는 없고 늙은 할머니 한 분이 들판을 어슬렁거렸다.

빌금다지 나물을 무척 맛 있게 드시는 어머니.
빌금다지 나물을 무척 맛 있게 드시는 어머니.전희식
여기는 남부지방이지만 워낙 지대가 높아서 강원도 북부지방하고 절기가 엇비슷하다. 표고 550미터다. 양지바른 쪽으로만 이제 막 새싹들이 돋고 있었다. 냉이나 광대나물, 햇쑥 등이 제철인데도 아직 돋지 않았고 작년에 흩어놨던 유채나물만이 유일했다. 할머니 소쿠리에도 유채나물만 가득했다.

유채를 큰놈으로 골라가며 뜯고 있는데 듬성듬성 빌금다지가 보였다. 아직 철이 이른지라 여리기도 했지만 많지도 않고 드문드문했다. 빌금다지 덕분에 그래도 소쿠리를 좀 채웠다. 그 사이 한나절 해가 다 갔다.

"어무이 나물 뜯어왔어요!"라고 집에 들어서면서 냅다 고함을 질렀다.

겨우 알아듣고 어머니가 마루로 나와서 나물 소쿠리를 뒤적이더니 반가워하기는커녕 핀잔을 주었다.


"나시래이('냉이'의 경상도사투리)나 뜯어오지 이까짓 빌금다지를 뜯는다고 그 야단을 지기고 있냐"고 했다. 나시래이가 뭐냐고 했더니 냉이란다.

"빌금다지 이런 거는 옛날에는 거저 줘도 안 먹었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럼 어릴 때 내가 먹던 것은 다 거저 얻은 거란 말예요?"

내가 퉁명스레 받았지만 귀가 멀어 못 들은 어머니는 혼자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기 시작한다.

내가 차린 밥상이다. 딸기. 청국장. 쌈장. 산초간장절임. 콩잎절임. 김치. 현미잡곡밥. 무장아찌. 그리고 오늘 뜯은 봄 나물. 여기서 딸기 외에는 다 내가 농사지어 만든 반찬이다.
내가 차린 밥상이다. 딸기. 청국장. 쌈장. 산초간장절임. 콩잎절임. 김치. 현미잡곡밥. 무장아찌. 그리고 오늘 뜯은 봄 나물. 여기서 딸기 외에는 다 내가 농사지어 만든 반찬이다.전희식
"이기 저 건네 흰글 논(천수답 무논의 경상도 사투리) 뒤 구석에 마이 피는 기라. 이 빌금다지 먹으면 딱 존기 있는데 마음 변한 사람한테 이거 멕이면 직빵이다. 맘 되돌리는데 이거 멕인다 아이가."

그러면서 거저 줘도 안 먹는다는 빌금다지에 얽힌 이야기가 끝도 없이 시작되었다.

"너는 '바네띠기' 모를끼라. '바네띠기'가 눈지 아나? 그 딸내미가 마음이 변해 가지고는 밤만 되면 베개 주워들고는 지 씨애비 방에 가서 여기서 잘란닥꼬 싼는기라.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빌금다지 해 믹이면 좋탁캐서 이걸 쌩으로도 묵고, 삶아서 데쳐서도 묵고 그랬는데 이기 저거 친정에 가서는 도로 뒤집어서 말을 하는기라. 지 씨애비가 밤만 되면 아들도 없는 지 방에 자로 온다고 그란기라. 그랑께노 우사 아이가. 그래서 그때 약이 뭐 있노. 빌금다지 에지가이 해 먹있지 암매."

어머니의 빌금다지에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있는데 내가 밥상을 들고 들어갔다. 밥을 먹는데 어머니는 그 '거저 줘도 안 먹는다'는 빌금다지를 손으로 한 웅큼씩 집어서 둘둘 뭉쳐서 쌈장에 찍어 드셨다.

들판에서 갓 뜯어 온 나물인지라 맛이 기가 막혔다. 상큼하고 싱싱한 풋내음이 입 안 가득 번지는 듯했다. 어머니 먹는 기세로 봐서는 남에게 거저 주기는커녕 달라고 통 사정을 해도 못 줄 것 같았다.

내가 몇 번 먹을 새도 없이 어머니는 새끼손가락과 볼에 쌈장이 벌겋게 묻은 줄도 모르고 마지막 빌금다지를 한 입 가득 밀어 넣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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