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폭리' 밉지만 FTA 답 아냐"

[13인13색-한미FTA를 말하다 ⑥] 현대차 노조 이용진 교육위원

등록 2007.03.26 15:07수정 2007.03.2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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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 수출차에 대한 관세가 2.5%인데 이게 향후 몇 년간 단계적으로 철폐된다고 해도 수출이 얼마나 늘어나고 이익이 얼마나 늘어날지 회의적입니다. 관세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현대자동차는 미국 생산공장의 생산량을 늘려 가면 되는 것 아닌가요?"

현장 노동자의 생각은 달랐다. 현대·기아차와 GM대우, 르노삼성, 쌍용차 등 국내 5개 완성차 업체가 한미FTA 지지 의사를 밝힌 상태다. 그래서 세간에는 한미FTA가 국내 자동차 업계에 이익이 될 거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지만 현대차 노동자 이용진씨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을 만드는 노동자다. 1987년 갤로퍼를 만들던 현대정공에 입사한 이래 20여년 동안 자동차를 만들었다.

또 노동조합에서는 교육위원을 맡고 있고 민주노동당 울산광역시당에서는 노동위원장으로 대외 활동에도 열심이다. 25일 '한미FTA 저지를 위한 민주노동당 총궐기대회'에 참석하러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에 나선 그를 만났다.

한미FTA로 가장 많은 이득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되는 현대자동차 노동자지만 이 위원은 "한미FTA는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동차 시장과 관련해서도 "관세를 철폐하는 대가로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게 되면 오히려 내수 시장이 타격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미FTA로 자동차 업계가 이익을 본다고?"

"미국의 관세를 철폐하려면 미국 차의 국내 시장 공략에 필요한 것들을 내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자동차 수입 관세를 철폐하고 세제를 개편하게 되면 현재 미미한 미국 차의 내수 점유율은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고스란히 국내 노동자 구조조정 문제로 이어지게 되겠죠. 10년 후 자동차 산업 지형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추진하는 FTA가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이나 실질임금의 상승을 가져올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그의 지적대로 내수 시장이 문제다. 국내 업체들의 내수 시장의 점유율이 낮아지면 노동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특히 국내 완성차 업체의 경우 한미FTA 체결시 내수시장에서의 손익계산서가 달라 겉으로는 한미FTA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동상이몽을 꾸고 있다.

지난해 각각 23만9605대와 33만2136대를 미국에 수출한 현대기아차와는 달리, 12만1372대 수출에 그친 GM대우와 아예 미국시장에 진출하지 않은 르노삼성, 쌍용차는 한미FTA 체결로 얻을 이익을 계산하기보다 내수시장 잠식을 우려해야 할 판이다. 미국과의 협정 체결로 자동차 업계가 거두게 될 이익의 대부분은 수출 비중이 높은 현대·기아차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현대·기아차의 내수 시장 점유율이 70%에 이르는 등 절대적인 시장 지배력이 소비자들에게는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독점적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현대·기아차는 내수 차량 가격을 미국 시장보다 훨씬 높게 책정하는 등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자동차 업계의 내수시장 잠식을 우려해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것이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소비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오히려 경쟁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다른 국내 업체들이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해 현대·기아차의 높은 가격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거의 없다. 때문에 차라리 자동차 시장을 좀 더 개방해 외국 업체라도 시장 참여자의 수를 늘리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독점적 지위 현대·기아차 밉긴 하지만..."

a 이용진 현대차 노조 교육위원.

이용진 현대차 노조 교육위원. ⓒ 오마이뉴스 문경미


하지만 이용진 위원은 "현대기아차가 가격을 차별하는 것은 맞지만 자칫 무분별한 시장개방은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기아차가 내수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서 국내 소비자들에게 폭리 취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외국의 자동차가 훨씬 자유롭게 국내시장에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소탐대실이 될 수 있습니다. 노조가 경영에 참여한다든지 소비자 운동을 통해서 자동차 가격의 적정화를 실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기아차의 독점적 지위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자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어 "설사 한미FTA가 자동차 업계에 이익이 되고 자동차 만드는 노동자들의 소득이 늘어난다 해도 한미FTA에는 절대 반대"라고 말했다. 현장에는 자기 밥그릇 키우자고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사회적 약자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괴물'을 환영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노동 운동 측면에서도 한미FTA가 몰고 올 악영향을 걱정했다.

"현재 민주노조 운동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 양극화와 사회적 차별이 핵심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공공성을 강화하고 복지 수준을 높이는 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미FTA가 체결되면 공공성은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 강력한 노동 유연화로 더 많은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차별은 더 확대될 것입니다."

이 위원은 또 "노동자로서 판단해 보면 한미FTA가 당장은 산술적인 계산에서 이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삶의 질을 파괴할 것이 자명하다"고 단언했다. IMF의 경우 주로 금융부분의 구조조정이 강하게 추진된 것이라면 한미FTA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완전한 시장개방으로 완결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출 늘면 뭐하나, 삶의 질이 문제지"

"한미FTA가 체결되면 정부의 주장대로 수출이 느는 등 경제성장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죠. 경우에 따라서는 소득 수준도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식 노동의 유연화로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것은 제쳐 두더라도 공공서비스 영역의 파괴는 우리의 삶의 질을 크게 낮출 것입니다.

병원을 영리화하거나 교육 시장을 개방한다면 의료비, 교육비가 크게 오를 것입니다. 수도전기 등 공공서비스 영역이 민영화 압력을 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렇게 삶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 물가가 오르게 된다면 소득이 조금 늘어난다고 해도 결코 삶의 질이 나빠지면 나빠졌지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사실들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몹시 안타까워했다. 한미FTA가 거대 정치 담론이 아니라 바로 내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테지만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것.

"여론 조사를 보면 한미FTA에 대한 찬반이 팽팽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국민의 80%는 3월 말 FTA 체결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긴 하지만요. 그러나 숫자 놀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한미FTA로 인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고 FTA의 실상을 알게 된다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반대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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