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카드' 한국 체면 세워주자는 것
체결 전에 국정조사·국민투표 해야"

[13인13색-한미FTA를 말하다 ⑧]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등록 2007.03.28 12:48수정 2007.03.2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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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우리 정부가 지켜낸 것 같은 모양새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미국이) 우리 정부의 체면을 세워주는 거죠. 정말로 쌀이 협상 대상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협상 중단을 선언해야 합니다."

낮은 목소리 톤이었지만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단호했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막판에 미국이 쌀을 들고 나온 것에 대한 해석이다.

정태인(48)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그는 "(한국이) 중단 선언을 하겠다고 하면, 미국은 쌀에 대한 요구를 거둬 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과) FTA를 맺고 싶으면…"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그의 해석을 한국쪽 협상단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쌀을 거론하면 협상이 깨질 수도 있다면서도 여전히 쌀은 의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쌀'을 지렛대로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끌어낼 것으로 그는 우려한다.

정 전 비서관의 이름 앞엔 '저격수'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한미FTA를 둘러싼 논쟁의 한 복판에 항상 서 있었다. 직설적인 화법과 탄탄한 논리가 그의 무기였다.

한미간 막판 협상을 앞둔 지난 24일 낮 그를 만났다. 간단한 식사를 겸한 만남이었지만, 그의 발길은 바빴다. 지난 1년여 동안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그를 찾는다. 방송 토론도 그의 몫이다.


'저격수'라 불리는 사람..."청와대 비서관도 비정규직"

a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 오마이TV 김도균

청와대서 나온 후 달라진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그는 지난 2005년 5월에 청와대서 나왔다).


"원래대로 돌아온 거죠. 그동안 실업자 아니면 비정규직이었는데…. 사실 청와대 비서관도 비정규직이에요. 보통 권력을 벗어나게 되면, 권력 금단현상에 빠진데요. 거기 있을 때 권력을 행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난 금단증세가 없는데….(웃음)"

스스로 말한 것처럼 그에겐 청와대 비서관이 그나마 번듯한 직장(?)이었다. 그것도 가장 오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의 공직생활 마지막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른바 '행담도 사건'으로 물러난 후, 재판까지 받아야 했다. 지난해 1심 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재판으로 그는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200여차례가 넘는 강연과 토론에 참석했다. 주말을 빼면 거의 매일 한미FTA의 실체 알리기에 나선 것이다.

왜 그토록 한미FTA를 반대할까. 간단했다. 한미FTA 목적 자체가 '미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것이고, 이를 위해 상대 나라의 법과 제도, 그리고 관행까지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FTA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설명도 이어진다.

한국보다 17배나 큰 시장 접근이 한국기업에 이익되는 것은 없을까. 그의 답은 분명하다.

"2천만원짜리 소나타, 1년에 5만원 떨어진다고 바꿔 타겠나"

"시장을 연다는 것은 관세인하와 비관세장벽을 없애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시장이 거의 개방된 상태다. 전기재료와 반도체 등은 이미 무관세다. 섬유쪽은 우리 요구사항인 원사기준 완화도 관철시키지 못했다. 결국 관세부분에서 우리가 이득 볼 것이 거의 없다. 이것은 산업전문가나 업계에서 다 아는 것이다."

그는 핵심쟁점 중 하나인 자동차의 예를 들었다. 미국의 수입 완성자동차에 매기는 관세는 2.5%다. 우리나라는 8%다. 한국쪽은 미국의 즉시 철폐를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10년 내 철폐로 버티고 있다.

미국 주장대로 간다면, 2000만원짜리 소나타의 혜택은 1년에 5만원 떨어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왜냐면 10년에 걸쳐서 2.5% 관세를 없애는 것이므로, 매년 0.25%씩 떨어지게 되고, 2000만원짜리 자동차의 경우 1년에 5만원 정도 떨어지게 된다).

정 전 비서관은 반문한다. "아무리 우리보다 시장이 17배 크면 뭐하나. 관세 인하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격 폭이 있어야 하는데, 소나타 5만원 떨어진다고 캠리(일본차) 타다가 바꾸겠는가"라고….

'슈퍼301조'와 같은 미국의 비관세 장벽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이 장벽을 허무는데도 실패했다. '이미 예상됐던 대로'라는 것이다. 정부가 성과라고 내세우는 무역구제심의위원회 설치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그는 '힘의 비대칭성'을 강조한다. "미국이 위원회를 설치하자고 하면 우리에겐 큰 압력수단이 된다"면서 "하지만 우리가 요구해서 만든 것은 얼마나 미국쪽을 설득해서 의견을 관철시킬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a 한미간 막판 협상을 앞둔 지난 24일 낮 정태인 전 비서관을 만났다.

한미간 막판 협상을 앞둔 지난 24일 낮 정태인 전 비서관을 만났다. ⓒ 오마이TV 김도균


끝난 것이 아니다...국정조사와 국민투표 이뤄져야

미국이 막판에 쌀을 들고 나온 것도 그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 정부는 그동안 쌀은 협상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그는 1년 전에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도 "내가 USTR(미 무역대표부) 대표라도 쌀을 내놓으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정 전 비서관은 "쌀을 이용해 한국쪽엔 체면을 세워주면서, 우리가 사실상 포기한 여러 분야에서 확실한 문서를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미국쪽은 막판 협상과정에서 쇠고기 개방 등에 대한 명문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는 현재까지 나온 사실만 가지고도 '가장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 '강력한' FTA라고 강조했다. '포괄적'은 거의 빠진 것 없이, '높은 수준'은 개방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그의 문제의식은 다시 우리 내부로 향했다.

"문제는 우리나라 내부에 있다. 공공서비스 민영화 계획을 다 가지고 있다. 재경부에서 이미 준비해왔고, 한미FTA가 맺어지면 대단히 빠른 속도로 민영화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전기, 수도, 철도와 같은 네트워크 산업과 의료 부문도 마찬가지다. 거의 완벽한 개방시나리오다."

앞으로 전망을 들어봤다. 쌀과 쇠고기 등 농업부문에서 나름대로 험악한(?) 분위기가 협상장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타결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그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했다. 끝난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 지금부터가 시작일 수도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대신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이번주에 타결이 된 다음에 정식 체결까지는 시간이 있다. 국정조사를 해서 협상 내용을 밝혀야 하고,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물론 경제에 미치는 영향,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가 따라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협정문에 사인하기 전에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

그의 마지막 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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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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