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을 살아온 고향에서 쫓겨나야 하는 할머니들의 설움을 누가 달랠 수 있을까.최종수
26일 새벽 1시, 잘못 결려온 전화에 잠을 깼다. 눈을 감자 별 하나가 떠올랐다. '대추리 마지막 미사'라는 별,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샛별이었다. 아니, 대추리와 함께 했던 날들이 무수한 별들의 은하수처럼 빛을 발했던 것이다.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방문한 사람도 이렇듯 밤잠을 설치는데, 80~90년 동안 살아온 고향에서 쫓겨나는 주민들의 심정을 어떠할까?
오후 2시경 동료 사제와 정안 휴게소를 지나자 잿빛 하늘이 천둥번개를 치며 장대비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대추리 공소의 마지막 미사를 하늘도 안 것일까. 평택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 대성통곡 뒤에 잦아드는 흐느낌처럼 하늘은 이슬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널따란 들판을 가로지르자 황새울에 버티고 있는 미군기지에 들어섰다. 반세기 동안 한 번도 손을 놓지 않고 있는 철조망도 흐느끼는 이슬비의 그렁그렁한 눈물을 달고 있다. 철조망에 갇혀있지만 산과 밭이었던 기지의 땅에서는 본능처럼 파릇파릇 싹들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황새울 들판도 우산이 젖혀질 만큼의 비바람으로 울고 있다. 평화공원의 파랑새도 제 몸 안으로 바람을 통과시키며 아픈 휘파람을 불고 있다. 한동안 뵙지 못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손을 잡자 이내 눈물을 글썽이고 만다.
미사 전에 시작된 십자가의 길, 일본군의 침략과 미군의 주둔으로 얼룩진 황새울 들판의 애환을 지고가는 평화의 기도였다. 그 십자가의 길은 질곡의 한국 현대사의 아픈 역사를 가로질러온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의 한을 승화시키는 희망의 길이기도 했다.
오후 3시 마지막 미사가 봉헌된다. 사제단 대표 신부(전종훈)가 오지 않기를 바랐던 마지막 미사에서 각혈하듯 말문을 열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우리는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935일 동안 밝혀온 촛불, 그것은 자주와 통일, 정의와 평화의 횃불로 기억될 것이다. 그 촛불은 꺼졌지만 우리들 가슴 속에 옮겨붙은 세상의 빛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는 꺾이지 않는다. 우리가 백번 천번 다시 일어나 그 길을 간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