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에 쫓기지 않는 사람 드라마로 남아달라

[드라마는 내 인생 2] MBC 수목드라마 <고맙습니다>

등록 2007.03.29 11:06수정 2007.03.2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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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인간의 냄새가 풍기는 인간적인 드라마 <고맙습니다>

인간의 냄새가 풍기는 인간적인 드라마 <고맙습니다> ⓒ MBC

전문직 드라마의 붐이 일면서 소재 한계에 부딪힌 한국 드라마에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 내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평일, 주말할 것 없이 불륜과 멜로로 점철되던 드라마가 탈피하는 역할을 해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부분을 드라마에서 찾아 볼 수 없다.

그건 바로 '사람 냄새'가 풍기는 드라마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 <전원일기>처럼 우리네 인심과 사람 냄새,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담은 드라마가 여전히 부재한 상황이다. 더욱이 가족이 보는 일일드라마와 주말드라마가 그러한 소임을 자처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여전히 시청률을 의식한 채로 불륜 드라마로 점철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 냄새가 풍기는 그러한 드라마가 드디어 나왔다. 바로 MBC 수목드라마 <고맙습니다>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드라마에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야 할 정도다. 물론 이 드라마도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가 주요 내용이지만 삶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과 교감하면서 조금씩 변화한다는 내용이 기본 바탕에 깔려있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드라마이다.

아직 초반이지만 방송 후반까지 기존 뚝심을 가지고 극을 전개해 나간다면 분명 순수한 감성이 살아 있는 드라마로 남을 것이다. 그럼 우리에게 찾아와 준 아주 고마운 드라마 <고맙습니다>를 관찰해 보자.

인간적인 캐릭터와 인간적인 이야기

a 어리지만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연기하는 서신애

어리지만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연기하는 서신애 ⓒ MBC

에이즈에 걸린 딸을 홀로 씩씩하게 키우는 미혼모, 애인의 죽음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젊은 의사, 자식을 잃고 그 충격으로 정신을 놓은 치매노인, 옛 사랑과 현실에서 갈등하는 젊은 사업가, 졸부로 자신의 아들을 누구보다 멋진 여성에게 장가를 보내고 싶은 엄마 등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극적이지 않은 캐릭터이다.

물론 가난한 미혼모인 영신(공효진)과 석현모(강부자)의 속물근성은 여느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캐릭터이지만 그 캐릭터마저 철저하게 속물근성으로 똘똘 뭉친 모습이 아니다. 영신에게 못되게 굴지만 자신의 손녀딸인(손녀딸이 아니라 부정하지만) 이봄과 닮았다는 말에 소스라치게 화를 내는 귀여운 면도 있다.


또한 치매노인인 영신의 할아버지(신구) 조차도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는 소재지만 한편으로 훈훈한 웃음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신과 기서의 캐릭터는 여타의 주인공 드라마와는 차별성을 가진다.

영신의 경우 미혼모로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딸을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씩씩한 여성이다. 그리고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그러한 모습에 조금씩 삶의 희망을 찾는 기서 또한 애인의 죽음과 불온전한 가정의 결핍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은 냉정한 남자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소유자다.


특히, 나이보다 어른스럽고 천진난만한 미소가 예쁜 여덟 살 난 여자아이 봄이는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중심축이다. 역시 어른보다 순수할 수밖에 없는 어린이기에 이 드라마가 무공해 드라마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순수한 캐릭터들이 있기에 이 드라마는 어른들과 아이의 세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른들의 세상 이야기는 영신과 기서와 영신의 옛 애인 석현(신성록)의 엇갈린 사랑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지만 사랑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영신과 기서의 사랑은 사랑이라 하기 보다는 가난하지만 희망을 품고 사는 영신을 사랑하게 되면서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희망을 찾아갈 기서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사랑타령만 하던 드라마와는 확연히 차이를 드러낸다.

또한 기서가 다친 사람을 구해주면서 마을사람이 찾아와 병을 치료해달라고 찾아온다. 그들의 순박한 모습(소까지 데려와 치료해달라는 순진한 아저씨까지)이 그려지는 등 시골의 소박한 사람의 마음이 그려지면서 훈훈함을 더해주고 있다.

아이의 세상은 에이즈에 걸렸지만 누구보다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봄이의 눈을 통해 그려지고 있다. 미혼모를 엄마로 둔 봄이는 자신과 치매할아버지가 혹이라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고, 엄마를 시집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보다 철이 난 아이다. 하지만 어느새 또래 아이의 모습에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신구조화의 묘한 앙상블이 빚어낸 매력

a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주는 영신 할어버지 치매 노인을 연기하는 신구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주는 영신 할어버지 치매 노인을 연기하는 신구 ⓒ MBC

이처럼 무공해 캐릭터와 무공해 내용을 담고 있는 <고맙습니다>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바로 등장인물들의 연기다.

먼저 제대하고 첫 연기를 시작한 장혁은 냉정하지만 따뜻한 가슴을 지닌 민기서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 내며 까칠 기서의 모습으로 새롭게 연기변신을 했다. 군에 가기 전 그저 어깨와 눈에 힘을 주며 터프가이 모습으로 일관하던 그였기에 이번 변신은 더 할 나위 없이 멋지게 보일 수밖에.

거기에 처음으로 엄마 역에 도전하는 공효진은 평소 씩씩한 캐릭터를 맡던 그녀의 연기가 무르익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완벽하다. 거기에 한편으로는 마음 여린 사랑에 목마른 여자로서, 에이즈에 걸린 딸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엄마로서,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잘 모시고 싶은 손녀로서 모습을 완벽히 소화해 내고 있다.

이와 함께 베테랑 연기자 신구와 강부자, 전원주씨도 극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치매연기를 완벽히 소화하고 있는 신구는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손녀딸에게 "메주야!"라고 부르며 아이처럼 웃음을 주거나, 기서에게 "형 오줌 싸!"라고 매달리는 모습이 재미를 준다. 이와 함께 정신이 돌아와 자신이 짐이 된다는 생각에 가출하는 정반대 연기를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또한 이기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강부자와 미스 송이라 불리는 전원주는 영신이 할아버지와 로맨스를 펼치면서 웃음을 주는 감초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신구조화가 완벽히 이루어지면서 드라마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이재동 감독과 이경희 작가 덕분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재동 감독이 연출했던 <단팥빵>의 순수한 모습이 언뜻 보여 지기도 하고, 이경희 작가가 집필한 <상두야 학교가자>의 밝은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 두 드라마가 오버랩 되면서 한데 모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아직 방송 초반임에도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해주는 <고맙습니다>가 너무나도 고마워 얄미울 정도다. 앞으로도 시청률과 상관없이 쭉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로 남아주길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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