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이 현실 모른다고...
이론 무장하면 더 넓게 본다"

'대선출마' 발언수위 높이는 정운찬... 서울여대 특강서 "3불정책 폐지" 강조

등록 2007.03.29 19:38수정 2007.03.2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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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의 대선후보 영입 1순위로 꼽히고 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대선출마 관련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교수들 보고 현실 모른다고 하는데, 단기문제 해결에는 현장에 있는 분들이 유리할지 모르지만. 경제문제는 단기뿐 아니라 중기, 장기도 있다. 이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더 넓게 보고 더 길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저는 현장과 학교 있는 사람을 비교한다면, 학교 있는 사람 고르고 싶다."

정 전 총장은 29일 오전 서울여대에서 열린 '2007 미래를 여는 지성아카데미' 초청 특강에서, 참석학생으로부터 "경제를 이끌 권한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번 대선출마예상자 중 '실물경제 전문가'로 불리는 이명박 전 시장과 경제학자인 자신을 비교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질문에도 "경제학을 가르치는 것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현실을 추상화한 이론은 튼튼하다"면서 "이론을 튼튼히 확립하면 현실에 나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인데 인생의 매 순간이 선택이라고 한다면 경제학은 삶의 방법에 대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경제학자의 장점을 '과시'했다.

강연이 끝난 뒤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자신감 없이 어떻게 일하겠나"라고 답하기도 했다.

자신의 잇단 특강을 놓고 '특강정치'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대부분 지난학기에 요청받은 건데, 신세진 데가 많기 때문에 거절하지 말자는 것"이라면서 "강연자료도 똑같은 게 아니라 4, 5개 버전이 있다"고 말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는 또 "앞으로 뭘 할지 잘 모르지만, 내년에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선출마와 관련한 정 전 총장의 발언 수위는 조금씩 높아져 왔다.

지난해 12월 20일 "정치 안한다 단언할 수 없다"는 발언으로 시동을 건 뒤, 같은 달 20일 "충청인이 나라 가운데서 중심잡아"로 관심을 끌었다. 올해 3월 들어서는 "여러 가능성 진지하게 생각"(4일), "정치참여 신중검토"(8일), "대학총장도 정치 잘 할 수 있다"(16일)고까지 말했다. 이어 오늘(29일)은 현재 대선주자 지지도 1위인 이명박 전 시장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까지 나온 것이다.


물론, 정 전 총장은 '대학총장도 정치…' 발언은 "세계적인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가 한 말로 일반적인 의미일 뿐". '이명박과의 비교' 시각에는 "상상력이 좋다", "언론이 앞서가고 있다"고 피해가고 있다.

a 서울여대에서 29일 특강을 하고 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서울여대에서 29일 특강을 하고 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 오마이뉴스 김윤상


"한미FTA,며칠 안 남은 상황에서 정합성 있는 타결 가능할까"

'한국경제의 과제'라는 제목의 이날 강연에서 정 전 총장은 전날 행정대학원 특강에서와 마찬가지로 한미FTA문제에 대해, 낮은 수준의 FTA를 타결한 뒤에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전 총장은 "며칠 안 남은 협상 시한 안에 정합성과 공정성이 있는 타결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면서 "국민 대다수의 바람과 상관없이 미국의 일방적 의도에 의해 타결이 강요될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또 쌀개방 문제에 대해서는 "농업은 가정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잘 건사해야 한다"면서 "농업은 국방 같은 것인데, 비교우위 논리에 의해 중국에서 사 먹고 대신 중국에 제품을 팔자는 논리는 대단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또 대기업들의 투자부진이 정부 경제정책의 일관성 결여 때문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기업들은 차라리 사회주의를 해도 일관되게 하면 투자하겠는데 하루는 자본주의 같고 하루는 사회주의 같아 투자를 못 한다고 한다"면서 "제가 보기에는 정책의 최선과 차선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상식에 어긋나지 않으면 한번 정하면 계속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우리 경제의 문제는 중장기적으로는 교육의 문제"라면서 "미국의 대표적 사립대학 10개 졸업생이 1만명이 안되는데 비해 서울대, 연대, 고대의 한 해 졸업생수가 1만 5천명일 때도 있었던 것은 우리 대학교육의 질이 높지 못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규모 축소와 기초강화, 다양성을 강조했다. 다양성과 관련해 2004년 서울대 폐지론과 관련해 서울대 내에서 있었던 일도 소개했다. 총장으로서 교수 20여명을 모아 의견을 들었는데, 한 교수는 "서초동의 이아무개 검사가 (서울대 폐지론에 대해) 분개하는데 그를 방송에 나가게 해서 우리를 변호하게 해 달라"고 했고, 다른 교수는 "동아 논설위원이 책상 치며 분개하는데 그에게 사설 한번 써달라고 하자"는 말을 했는데, 연대출신 한 교수는 "연대나 고대 폐지한다고 하면 청와대나 교육부가 박살날 텐데 왜 이렇게 서울대는 안일하냐"했다는 것. 교수가 다양해지니 새로운 의견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a 정운찬 전 총장이 서울여대 특강을 끝낸 후 기자들에게 '3불 정책 폐지'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정운찬 전 총장이 서울여대 특강을 끝낸 후 기자들에게 '3불 정책 폐지'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윤상


"3불정책 폐지 입장 바꿀 수 없다"

약 1시간 30분간 진행된 이날 강연은 학생들이 몰리면서 400석 규모의 강당이 부족해 간이의자를 들여놓았고, 서서 듣는 학생들도 있었다.

정 전 총장은 1960년대 대학생 시절 서울여대 학생과 미팅을 했던 이야기 등으로 웃음을 끌어내는 등 활기차게 강연을 이끌었다. 10쪽 정도의 강연록을 준비했지만, 상당부분은 원고에는 없는 말들로 설명해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교 1학년 때까지 제대로 밥 먹고 다닌 적이 없다는 등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했다. 학생들은 강연이 끝난 뒤 꽃다발과 정 전 총장의 캐리커처를 선물했다.

정 전 총장의 강연에 대해, 정보통신공학분야의 4학년 학생은 "때로 지루한 느낌도 있었지만, 쉽게쉽게 설명을 했다"고 평하면서, "대선후보로 놓고 보면, 아무래도 이론만 공부하신 분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교수로서의 한계가 있을 것 같다"고 평했다. 경영학부 2학년 학생은 "여유가 느껴졌다"면서 "리더십도 있는 것 같고 대선후보로서 괜찮다고 보는데, 이명박 전 시장이 많이 앞서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강연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3불정책'과 관련해 "문제 있으니 다 폐기하자는 게 아니라 검토해보자는 것"이라면서도 "생각은 바꿀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의 단식에 대해서는 "저와 생각은 다르지만, 그런 행동들 속에서 협상능력을 높이는 측면도 있다"면서 "제가 거기 가서 동참할 생각은 없지만, 얼마나 위기감을 느꼈으면 그렇게 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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