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 놓치고 '쇠고기' 내주고...
약값 부담, 5년간 1조 늘어날 듯

[한미FTA 타결] 전문가가 꼽은 '끝내 못 얻은 것'과 '끝내 내준 것'

등록 2007.04.02 21:46수정 2007.04.03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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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대 회원들은 지난 2월 서울 종로 보신각 부근에서 한미FTA 이후 갑비싼 의료비와 교육비, 수도세, 전기세, 수입농산물, 비정규직 등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의 모습을 풍자하는 행사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최종 협상 결과의 손익계산서는 어떻게 나왔을까. <오마이뉴스>는 2일 오후 발표된 협상결과 내용을 토대로 전문가 5인이 뽑은 '끝내 못 얻은 것'과 '결국 내주고 만 것'을 추려봤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에서 우리가 미국에서 꼭 얻어냈어야 할 분야(3개 중복 응답)로 ▲섬유분야 관세 철폐와 얀포워드 원칙적용 배제(5명) ▲전문직 비자쿼터(3명) ▲반덤핑 조치완화(2명)를 꼽았다. 또 반드시 지켜냈어야 할 분야로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4명) ▲투자자-국가소송제 배제(3명) ▲쇠고기 수입기준 변경(2명)을 선정했다.

[놓쳤다] "섬유 관세, 다른 나라에 비하면 '최소' 이득"

정부는 그동안 섬유를 기대 효과가 가장 큰 분과로 선전해왔다. 정부는 대표적인 비관세장벽으로 '얀 포워드(Yarn Forward, 원사를 원산지 기준으로 삼는 미국만의 독특한 제도)'를 꼽고 이에 대한 면제를 미국에 요구했다. 당초 정부는 85개 품목을 얀포워드 기준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으나 협상 결과, 5개 품목으로 확정됐다.

최재천 의원(무소속)은 "미국은 싱가포르와는 제3국 원사 사용에 대해 얀포워드 면제를 인정했고, 페루와도 제한된 쿼터 내에서 인정해주었다"며 "그러나 우리의 경우 5개 품목에 불과해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최소'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또한 의사나 건축기사들이 미국에 가서 취업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전문직 비자쿼터도 결국 우리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은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와 체결한 FTA에서는 전문직 비자쿼터를 인정해 줬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협상 초기 정부는 '미국에 무비자 취업길이 열린다'고 광고를 했으나 결국 이는 거짓말이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반덤핑 조치를 완화하는 무역구제 분과에서도 핵심 요구 사항이 최종 협상결과 빠졌다. 반덤핑 완화는 이번 한미FTA 협상에서 우리 측의 주된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지난 12월 미국에서 열린 5차 협상에서 6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미국 측의 답변을 기다렸지만 미국 측은 끝내 거부했다.

이 밖에 남북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도 나중에 논의할 수 있는 토대(빌트인)를 마련했지만 이번 협상에서 우리 요구를 완전히 관철시키지는 못했다.

[내줬다] 신약 특허 연장해 환자 부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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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지난해 11월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전문가들은 반드시 지켜냈어야 할 분야로 약제비 적정화 방안(4명)을 1위로 꼽았다. 이번 협상에서 신약의 최저가보장을 반영하지 않기로 했지만, 특허기간을 연장해 줌으로써 국내 제약사와 소비자의 부담을 키웠다.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사실상 의약 특허기간을 20년에서 3~5년 연장해주고 미국의 거대 제약사가 약값 결정에 관여하는 제도를 만들었다"며 "이 때문에 5년간 6000억원에서 1조원의 추가 약값 지출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도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원칙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다만 부동산정책과 조세정책은 예외로 뒀지만 당초 우리 측 요구를 완전히 관철시키지 못했다.

쇠고기 수입기준 변경도 전문가들이 뽑은 반드시 '지켰어야 할 부문'에 올랐다. 우석균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 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이미 5월에 수입하기로 약속한 뼈있는 쇠고기 수입을 위해 우리의 위생검역제도는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정부는 자동차 관세를 낮추기 위해 미국 측 요구를 받아들여 배기량 기준 자동차 세제를 단순화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정부가 조급하게 시한에 쫓겨 결과적으로 미국에 끌려 다녔다는 데 입을 모았다. 미국의 TPA(무역권한촉진법) 시한에 맞춘 협상 타결의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 모두 '매우 아니다'고 답했다. 협상이 국민적 합의에 기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모두가 '그렇지 않다'고 답해, 협상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번 설문에는 송호창 변호사, 우석균 보건의료연합 정책국장, 이해영 한신대 교수,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 최재천 의원(무소속)이 참여했다.

경제 전문가 "윈윈게임, 체결만으로도 긍정효과"

(서울=연합뉴스) 재경팀 = 경제 전문가들은 31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협상 시작당시의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경쟁 촉진, 경쟁력 제고, 산업구조 고도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달 줄 것으로 기대했다.

또 개방의 정도만을 비교해 협상 결과를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대 효과를 제대로 얻기 위해서는 정부가 피해 분야에 대해 철저한 보완책을 시행하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도 효율적이고 투명한 경영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 협상이 졸속으로 시작됐지만 협상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김종훈 수석대표 등 우리 협상팀이 뚜렷한 전략을 세우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전반적으로 우리가 많은 부분을 개방했는데 '미국에 너무 많이 줬다'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협상 타결 이후에 손익에 포커스를 두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정부가 해야할 일은 FTA의 잠재적 이익을 극대화시키는데 있다.

FTA는 기업들에 일종의 규제완화와 같다. 기업들은 이번 기회를 100% 활용할 것이다. 정부는 기업들에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만 하면 된다.

다만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이나 서비스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빠를 수록 좋다. 무조건적인 지원은 안된다. 피해 산업과 계층이 더 나은 부문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한미 FTA 타결로 유럽연합(EU)과 일본도 우리와의 FTA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한미 FTA를 이들 국가와의 협상 카드로 사용한다면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 중국과의 FTA는 저가 제품의 유입 등 중소기업과 농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사회과학대학장 = 한미 FTA 체결은 참여정부의 유일한 치적이다.

넓어지는 시장을 잘 활용해 FTA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국내 산업의 구조조정도 진행해야 한다. 농업의 구조조정 현황을 잘 봐야 한다. 국가만 믿고 있다 보니 변한 것이 없다. 피해가 생기는 산업에서 사람을 끄집어 내 다른 부문에서 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타결한 FTA를 뒤집기는 힘들다. 이제는 받아들이고 위험요소를 줄이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FTA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협상 과정에서 아쉬운 점도 많다. 미국이 지적재산권이나 신약 최저가 보장 등을 들고 나올 것을 충분히 예상했어야 하는데 준비가 부족했다.

동시다발적 FTA 체결은 부정적이다. 미국과의 FTA의 득실을 충분히 지켜본 뒤 이를 보완하는 데 우선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중국과의 FTA는 필요하다. 중국과의 FTA가 체결되면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을 아우르면서 주도권을 쥐게 되고 동북아 허브도 가능해진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애초 기대의 최대치를 달성했다고 보긴 힘들지만 실패도 아니다. FTA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얻고자 했는 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 목표에는 단기 교역 이익 뿐 아니라 개방을 통한 서비스 등 국내 산업의 고도화 같은 것도 있는데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에서 초점이 왜곡돼 논란이 있었다.

또 협상 후반부에 타결 못한 부분만 부각돼 `퍼주기 논란'이 있었다. 모든 부분을 감안하면 미국에 다 주기만 했다는 평가는 무리하다. FTA는 제로섬이 아니라 윈-윈(win-win) 게임이다.

또 산업구조의 개선이나 선진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타결 이후에 이뤄지는 국내 규제, 역차별적 규제를 어떻게 개선하느냐가 관건이다.

기업들은 시장변화를 예측하고 전략적인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 국내 반대 세력, 정부 내 의견 조율 미흡 등을 감안하면 협상단이 열심히 했다. 하지만 국민설득 등이 어렵다는 이유로 소극적으로 진행한 점은 아쉽다.

교육이나 의료 등 핵심 부분이 빠졌다. 이로 인해 당장 피해는 줄일 수 있지만 애초 목표했던 이익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긍정적인 것은 이번 협상을 통해 우리 경제 주체들에게 개방이 대세라는 신호를 충분히 준 점이다.

정부가 내놓을 대책은 융자나 폐업지원 등 피해 당사자에게 직접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금융보상을 최소화하는 대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컨설팅, 지식.기술이전 등의 지원을 해야 한다.

중소기업이나 내수 기업들은 기술이나 자본이 약하면 미국 자본과의 제휴 등을 통해 업그레이드 해야 하고 생산규모에 경쟁력이 없으면 틈새시장을 노려야 한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무역투자정책실장 = 기대했던 수준은 아니지만 한미 FTA 타결로 제조업의 수출 등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 제조업 관세가 높지 않아 큰 혜택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다른 경쟁국에 비해 미국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농업 등 미국보다 경쟁력이 뒤지는 부분에서 피해가 불가피하고 기대를 모았던 서비스업 분야도 예상만큼의 대폭적인 개방이 이뤄지지 않겠지만 각종 제도 개선, 글로벌 스탠더드 확산 등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것이다.

한미 FTA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경쟁력이 있는 기업들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고 이런 부분에서 나온 이익을 피해 분야에 대한 지원과 양극화 심화 방지에 활용해야 한다.

한미 FTA가 얼마만큼의 이득을 줄 것인가는 전적으로 우리의 대응에 달려있다.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 교육, 의료, 회계 등 서비스의 큰 분야들이 논의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성과가 없어 아쉬운 면이 있다.

양국의 수치적 득실 만 따진다면 불평등 얘기가 나올 수 있다. 미국은 우리보다 많이 개방돼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면이 있다. 하지만 개방을 통한 경쟁 확산, 경제 체질 및 산업구조 개편, 경쟁력 향상이 진정한 목표라는 것을 고려해서 평가해야 한다.

한미 FTA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 규제를 개혁해야 기업들이 자유로운 경영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확대할 수 있다. 현재 세계 경제 전체의 수출은 1980년대 중반에 비해 3배 정도 늘어났지만 외국인 직접투자는 14배 정도 증가했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기업들도 효율적이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정부에 기대거나 현실에 안주할 수는 있는 상황이 아니다.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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