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잠실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박상천 후보가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박상천 신임 민주당 대표가 당대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박상천(69) 전 대표최고위원이 3일 민주당의 새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의 등장은 민주당 50년 역사의 정통성을 강조해온 '올드보이'의 귀환이자 '구정치'의 복귀로 받아들여진다.
박 대표는 전남 고흥 출신으로 광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 등 법조3역을 두루 거쳤다. 가족은 김금자씨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생활신조는 유의필성,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룬다'는 것이다.
그는 88년 평화민주당으로 정계에 입문해 4선(13·14·15·16대) 의원을 지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평민당 총재 시절에 발탁되어 제1 야당 대변인을 거쳐 여야 원내총무(3회)와 법무장관 그리고 대표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개성강한 '강골' 정치인이다.
DJ 앞에서도 첫째, 둘째, 세째 짚어가며 '할 말은 하는 사람'
국회의원 시절에는 '법안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지방자치법, 통합선거법, 안기부법 개정 등 굵직굵직한 입법 실적이 많았다. 하루 두 갑 이상을 피우는 '체인 스모커'로서 동료 의원들에게 민폐를 많이 끼치는 '구름 제조기'이기도 했다.
말투와 표정이 무뚝뚝하면서도 논리적이고 개성이 강하다. 또 매사에 진지하고 성실하며 날카로운 논리성을 갖추고 원칙을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판검사 시절부터 청렴하고 강직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래서 오히려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자신의 주장을 "첫째, 둘째, 셋째"라고 조목조목 짚어가며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스타일은 DJ를 연상시킨다. 한번은 당 총재인 DJ가 광주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느라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도 "총재님, 이건 이렇습니다" 하면서 '첫째, 둘째, 셋째' 짚어가며 끈질기게 설득하는 바람에 DJ도 손을 들었다는 후문이 들릴 정도로 집요한 면이 있다.
그의 집요함은 4일 당대표 선출 뒤에 DJ를 예방한 자리에서 나눈 대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민주당이 공개한 면담 대화록에 따르면, DJ의 발언은 1,108자(258 단어)인 반면에 박 대표의 발언은 1,090자(254 단어)로 거의 같았다. DJ 앞에서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발언 수위도 아슬아슬했다.
박상천 : 민주당이 강해지면 그런 사람들은 민주당 지지로 돌아올 것이다. ‘도로 열린당’을 하는 것보다는 각각 가면서 경쟁을 하다가 여론을 보아서 단일후보로 가면 된다. 바로 합치게 되면 지난 4년간의 실정을 함께 심판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대선필패로 이어진다.
DJ : 아무튼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서 조용히 들으면 들린다. 열린당이 당을 깨고 나간 것은 국민의 소리에 역행한 것이다. 민주당도 나가려면 빨리 나가라고 했기 때문에 일부 책임이 있다.
박상천 : 아니다. 나가라고 한적 없다.
DJ : 아니다. 신문에서 많이 봤다
박상천 : 그들이 하도 ‘나간다 나간다’ 하니까 오래된 당원들이 감정에서 한 말이다. 누가 현직 대통령더러 당을 나가라고 했겠는가.
DJ : 누가 보아도 열린당의 책임이 크고 민주당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정 안되면 후보연합이라도 하라.
박상천 : 그것은 한다. 이겨야 하니까.
올드보이를 불러들인 '강성'의 힘
그는 2003년 민주당 분당 당시 현 열린우리당 창당세력인 신당파와 사수파간 대결국면에서 '민주당의 정통성을 지키는 모임'을 이끌며 사수파의 좌장 역할을 맡았다. 그때도 '50년 정통성을 가진 민주당을 해체할 수 없다'는 원칙론을 고수했다가 2004년 4월 총선 때 '대통령 탄핵' 역풍에 휘말려 고배를 마셨다.
그는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선 신중식 의원(나중에 민주당 입당)에게 아슬아슬하게 패했다. 박주선 전 의원의 출마 때문이었다.
원래 박 전 의원의 지역구는 보성·화순이었다. 그런데 그가 현대비자금 사건으로 수감되어 감옥에 있는 동안 고향 보성이 고흥으로 묶여버렸다. 졸지에 선거구가 공중 분해된 박 전 의원은 명예회복 차원에서 옥중 출마를 단행했고 박 대표는 그 유탄을 맞은 셈이다.
그와 박 전 의원은 김대중 정부 초기에 법무부장관과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호흡을 맞춰온 광주고·서울법대·법조계 선후배 사이다. 지난 총선에서 박 대표 및 박 전 의원과 겨뤄 승리한 신중식 의원은 현 민주당 공직후보자 추천특별위원장이다.
따라서 다음 총선에서 박 대표가 비례대표로 나서지 않는 한 신중식 의원 및 박 전 의원과의 지역구 조정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범여권 통합 과정에서 민주당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 대표는 지난 3년간 비주류 원외위원장이었다. 그가 3년간의 와신상담 끝에 당대표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도 원외위원장들의 집단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현역의원 수가 많은 열린우리당과의 통합을 반대한다. 당이 통합되면 다음 총선 공천에서 현역에 비해 불리하다는 계산 때문이다.
박 대표 또한 전당대회 연설에서 '민주당 중심의 중도정당 건설'과 '열린우리당과의 당 대 당 통합 반대'를 전면에 내세워 강성 대의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당 대표 선출 뒤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박 대표는 "열린우리당과의 통합 논의는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당대당 통합'보다는 '후보간 통합'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한 정당이 됐을 때 민주당은 현역의원 수가 적어 열린우리당이 주류 세력으로 등장하고 민주당은 흡수소멸된다. 이는 대선승리의 길이 아니고 민주당 소멸의 길로 가는 것이라서 지금 단일정당으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
[첫째] 원군을 넘어서라, 현역의원을 추슬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