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이 곳에서는 음악예술이다

[김창남 칼럼] <스페이스 공감> 3주년을 축하하며

등록 2007.04.06 12:26수정 2007.04.06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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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스페이스'의 기획공연 '거장' 시리즈에 출연한 산울림 김창완의 공연 모습
2006년 2월 '스페이스'의 기획공연 '거장' 시리즈에 출연한 산울림 김창완의 공연 모습EBS
지난 3월 6일 광진구에 자리잡은 멜론악스 공연장에서 제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 시상식을 주관한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의 선정위원장으로서 개인적인 소회를 먼저 밝히자면, 이 시상식이 4회를 넘겼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기적과도 같이 느껴진다.

매년 시상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늘 살얼음판 같았다. 음악은 사라지고 단지 상품만이 유통되는 현실에서 음악을 중심에 두는 대안적 시상식을 표방한 한국대중음악상은 이미 그 취지 자체로 시대착오적이거나 적어도 불온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과거의 주관 단체로부터 벗어나 선정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진행한 이번 4회 시상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더욱 어려웠다. 전혀 상업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 행사를 선뜻 후원해 주는 기관도 없었지만 더 우리를 힘들게 한 것은 음악계 안팎에 팽배해 있는 냉소주의와 열패감, 그리고 대중음악 판 전체의 문제를 보지 않고 그저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 드는 유아적 의식 수준이었다.


음악은 사라지고 상품만이 유통된다

"그거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시상식에서 공연 해 주면 상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한테 상을 안 주니 너희가 언더 음악상이란 소리를 듣는 것 아니냐."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이런 류의 반응을 접할 때 우리가 느낀 절망감을 십분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그래도 이 상의 진정성을 믿는 음악인들이 적지 않고 한국의 음악 씬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음악 팬들이 있어 4회까지 시상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한국대중음악상의 수상자 선정은 치열한 논쟁과 토론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어쩌면 그런 선정 과정 자체가 이 상의 남다른 특성이자 독특한 정체성일지도 모른다.

많은 경우 선정위원들의 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 치열한 난상 토론과 투표, 재투표 과정을 거치곤 하니 사실상 자원봉사를 하는 선정위원들로서는 적지 않은 고역이지만 그런 과정 자체가 큰 보람이기도 하다. 물론 가끔은 별다른 논란 없이 쉽게 수상자가 결정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번 제4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도 아무런 이의 없이 손쉽게 수상자가 결정된 분야가 몇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선정위원특별상이었다.

알려진 바대로 제4회 한국대중음악상의 선정위원특별상은 EBS의 음악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에 돌아갔다. 뮤지션이나 레이블이 아닌 방송 프로그램에 이 상이 수여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지만 이 프로그램이 특별상 이상의 특별한 가치를 가졌다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별상 이상의 특별한 가치를 지닌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 제작진이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특별상을 수상한 뒤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스페이스 공감> 제작진이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특별상을 수상한 뒤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EBS
EBS의 스페이스는 2004년 4월부터 지금까지 주중 매일 연 700회 이상의 공연을 치렀고 주말에는 <스페이스 공감>을 통해 300회 이상 콘서트 실황을 방송하면서 4월 3주년을 맞게 되었다. 적지 않은 출혈을 감내하면서 이루어낸 공연과 방송의 횟수도 놀랍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 팬들이 만날 수 있었던 아티스트들의 면면을 보면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간 아티스트들을 그저 기억나는 대로만 적어도, 신영옥·이루마·정성조·유키 구라모토·한상원·정원영·김두수·밥 제임스·잭리·백창우·강산에·이자람·김용우·바이날로그 등등 대강 열거하기도 숨가쁠 지경이다. 클래식에서 록·재즈·크로스오버·포크와 국악, 그리고 월드뮤직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들을 만한 모든 음악이 망라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대부분의 음악이 주류 방송 미디어에서는 접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의 가치는 분명해진다. 말하자면 <스페이스 공감>은 이미 음악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채 그저 눈요기와 오락 거리로 전락한 TV의 음악 씬에서 거의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고 살아있는 청정한 '음악' 공간인 셈이다.

시청률주의와 시장 논리를 앞세우는 방송 풍토에서 <스페이스 공감>이 쌓은 역사는 대단히 귀중한 성과이며 진정한 의미의 공영방송으로서 교육방송의 가치를 확인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대중음악을 눈요기 아닌 음악예술로, 대중음악인을 단순한 엔터테이너가 아닌 아티스트로 대접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스페이스 공감>의 정신은 한국대중음악상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지금까지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한 많은 음악인들이 <스페이스 공감>을 통해 대중과 만난 바 있다는 사실이 그 점을 말해준다.

신영옥·이루마·유키 구라모토·밥 제임스·잭리·바이날로그...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득에 집착하는 천박한 시장 논리 속에서 황폐화되어가는 한국의 음악 상황에서 한국대중음악상이 마치 살얼음판을 걷듯 어렵게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듯이, <스페이스 공감>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한국의 방송문화가 상업주의와 시청률주의의 압박 속에서 공익적 가치와 기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교육방송조차 그런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교육방송을 그저 수능방송, 과외방송 수준으로 묶어두려는 기도도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진정한 교육의 의미는 수능이나 과외 따위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대중의 문화적 삶의 질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교육방송이 진정 추구해야 할 교육의 참뜻이다. <스페이스 공감>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그나마 어렵게 지켜온 교육방송의 진정 교육적이고 공익적인 기여가 그저 눈앞의 손익계산이나 따지는 반교육적 논리에 의해 위축되거나 사라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스페이스 공감>의 3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한국대중음악상과 더불어 이 땅의 대중음악이 다시 창조적 활력을 되찾을 때까지 함께 노력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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