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한 할아버지가 15년째 운영하고 있는 구멍가게 모습. 그는 '신자유주의'란 학문적 용어는 몰랐지만, 누구보다도 현실에서 느끼는 서민들의 어려움과 아픔에 대해 잘 설명해 주었다(최영한 할아버지 사진은 본인이 극구 촬영을 사양한 관계로 기사에 담지 못했습니다).손기영
지난 5일 찾아간 최영한 할아버지의 구멍가게는 그 흔한 간판도 없는 10평 남짓한 공간의 소규모 슈퍼마켓이었다.
할아버지는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정정했고 평소 가게에서 시간이 날 때 틈틈이 독서를 한다고 했다. 요즘 장사는 잘 되느냐고 질문하자, 할아버지는 자신의 구멍가게를 '낙엽'에 비유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한때는 나름대로 입에 풀칠을 하며 살 수 있었지. 그런데 IMF란 풍파가 닥치고 대형할인마트와 편의점들이 들어서면서 내 처지와 비슷한 구멍가게들이 생명력을 잃어갔어. 결국엔 주변의 구멍가게들은 떨어지는 낙엽과 같이 장사를 접게 됐고, 내 가게가 마지막 잎새처럼 간신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지.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 내 심정은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과 같아."
실제로 할아버지의 이름없는 구멍가게 주변엔 '이마트'와 'GS25', '바이더웨이' 등 각종 대형유통업체와 대기업 편의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는 영세 점포들의 몰락에 대해 이렇게 하소연하듯 말했다.
"IMF 때부터 동내 곳곳에 편의점들이 들어서게 됐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시 금리가 낮은 은행에 돈을 넣어봤자 이익이 안 생기니깐 일부 여유있는 사람들이 종자돈으로 이곳에 와 체인점 형식의 편의점들을 여기저기 세웠더군. 지금 동네에서 목 좋은 곳은 그 사람들이 운영하는 편의점들이 다 차지해 그나마 찾던 오랜 단골들도 이제는 거의 찾아오지 않아."
게다가 대량으로 물건을 주문해 싸게 파는 이마트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자신과 같은 구멍가게들은 원체 물건을 조금씩 사와서 가격을 맞출 수 없어 주변사람들에게 '비싼 가게'로 인식된다고 한다.
결국 동네 편의점에 둘러싸인 채 이마트에 한 방 먹고 나가떨어진 꼴이 됐다며, 소규모 점포의 몰락은 '경쟁과 시장 논리'를 앞세운 대형할인마트와 편의점들이 부추겼다고 할아버지는 강조했다.
"나갈 구멍 없기에 구멍가게 인생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