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여! 여성 장준혁이 되어라!

[드라마는 내 인생3]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문희>

등록 2007.04.06 11:45수정 2007.04.0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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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주말드라마 <문희>는 강수연이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화려한 신고식을 치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시청률 면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여성성과 모성애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고전적인 여성의 피비린내 나는 암투를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새로운 드라마로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가능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는 미완성 드라마다.

주인공 문희가 사생아로 태어나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게 되고 시련을 겪게 된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아내 즉 새엄마로부터 갖은 구박을 받으며 복수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중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 남자는 들러리∼

a 극중 문희와 최상미는 야망과 능력을 겸비한 여성으로 서로 견제한다.

극중 문희와 최상미는 야망과 능력을 겸비한 여성으로 서로 견제한다. ⓒ imbc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문희>는 철저하게 여성이 극을 이끌어 가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극의 반전을 일으킬 만한 사건들에 대해서도 남자들은 전혀 모른다. 극 중에서 문희(강수연)가 아이를 가지고 출산한 뒤 입양을 보낸 사실을 자신의 아버지인 문현철(이영길) 가족들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문희의 아이를 입양한 장한나(김해숙)가 진짜 임신을 하고 낳은 자식처럼 가족들에게 속여 그녀의 남편 김영철(박상면)은 모른다. 이러는 사이 전장에 나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것은 여자들이다.

당연하다. 남자들은 그저 밖에서 일하는 분주하고 가정에서는 군림하는 왕처럼 그려지고 있다 보니 조선시대를 보는 듯하다.

예를 들어 장희빈을 보자. 숙종대왕은 장희빈의 미모와 애교에 반해 중전인 인현왕후를 내친다. 그리고 장희빈은 세력을 키워 간신배들이 세력을 키우고, 숙종대왕은 간신배에 휩싸여 제대로 된 정치를 하지 못한다.


이처럼 <문희>에 나오는 여성들은 남자의 권력에 기대어 서로 싸움을 시작한다. 문희는 문현철 가족의 집에 들어가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지만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늘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욕망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는 없는 여자로 단지 남편에게 배신을 당할 뿐인 문현철의 아내 방숙희(김영란)는 문희를 내쫓고자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하고 남편이 들어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남편이 식사하는 옆에서 서서 시중을 든다.


가장 교활한 캐릭터라 할 수 있는 문희의 올케 최상미(이승연)은 언뜻 보기엔 방숙희 편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기업의 안주인이 되고 싶은 욕망 하나뿐이다. 그것은 문희와 술자리에서 이미 최상미 스스로 밝혔다. 그래서 머리 좋고 야망이 있는 문희를 견제하고 늘 어린애 같은 문현을 슬쩍 비웃기까지 한다.

이처럼 문희, 방숙희, 최상미 세 여성은 끊임없이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른다. 그리고 그것은 늘 남자들이 없는 집안에서 벌어지고 서로 물고 할퀸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들의 전쟁을 알지 못하고 늘 주변만 서성일 뿐이다. 이렇듯 <문희>는 기존 사극에서 여성들이 궁궐 내에서 암투를 벌이는 모습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서슴없이 거짓말을 한다.

능력과 야망이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

a 본부인 방숙희와 친딸 문현은 능력이 없는 이유로 몰락할 가능성이 있다.

본부인 방숙희와 친딸 문현은 능력이 없는 이유로 몰락할 가능성이 있다. ⓒ imbc

하지만 <문희>란 드라마는 이러한 구태의연한 캐릭터를 답습하지만 그 안에서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주말드라마라는 성격에서 벗어나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이 바로 그러하다. 비록 그것이 여성들의 암투 이야기로 치닫고는 있지만 온전히 여성들의 야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반전을 시도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단지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의 대립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어머니에 대한 복수와 낳은 정 길은 정의 모성애를 극의 모티브로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변주에 불과하다. 그것으로 문희의 야망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장한나의 거짓말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가장 중심에 선 것은 능력 좋은 여자다. 천대받는 문희지만 능력만 좋고 야망이 있다면 언제든지 한 기업의 경영권을 차질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냥 철없는 어린애 같은 문현은 유진(조현우)에게 기대는 것이 유일한 능력이기 때문에 아무리 친딸이지만 언제든지 도태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또 처녀 시절의 과거가 있는 듯한 올케 최상미 또한 아이가 없음에도 그녀의 야망과 능력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무능력한 남편을 기업의 경영자로 탈바꿈시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반면 자신의 편이라 굳건히 믿고 있는 시어머니 방숙희 또한 문현철이라는 한 남자에 기대어 산 나머지 언젠가는 문희와 최상미에게 뒤통수를 맞을 것이 뻔하다.

이렇듯 <문희>는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의 대립이 주요 쟁점이 아니다. 능력 좋은 여자와 능력 없는 여자의 두뇌플레이를 다루고 있다. 또 이것은 그동안 여성의 야망을 솔직하게 그려내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낡은 테두리 안에 반전을 시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희를 여자 장준혁 캐릭터로 변신

이것은 <문희>에게 있어 최고의 장점이며,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낡은 스토리를 극복하고 신선한 드라마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드라마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

사실 문희는 '여자의 적은 여자'와 '능력 있는 여자 대 능력 없는 여자'라는 식상함과 새로움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여기서 발을 어느 방향으로 들여 놓느냐에 따라 드라마의 질이 천지차이로 바뀔 것이다.

즉 계속해서 방숙희와 문현의 어이없는 구박과 언어폭력이 지속한다면 분명히 이 드라마는 '여성의 적은 여성'으로 피비린내나는 암투를 그린 드라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선악 구도가 아닌 여성의 야망과 능력에 초점을 맞춰 디테일한 묘사가 더해진다면 흥미진진한 드라마 한 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방송에서 자신에게 잘해 준 오빠(문호)를 무너뜨리고자 허점을 포착해 방송사에 제보한 상황이다. 따라서 야망을 좇는 문희의 모습과 그것을 이뤄나가는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한다면 분명히 이 드라마는 새로운 여성상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또 가장 중심에 선 문희의 캐릭터가 단지 어머니의 복수가 아닌 자신의 야망을 위해 불도저처럼 앞으로 밀고 나가는 모습으로 그린다면 분명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은 <하얀거탑>의 장준현에게 버금갈 수 있는 캐릭터로 재탄생될 수 있다. 그리고 여성 장준혁 캐릭터로 그려야만 그녀의 복수에도 진정한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부하에게 모든 것을 의존한 채 오빠의 비리를 폭로하고, 유진과 결혼해 성공을 잡으려는 모습은 여성 장준혁이 될 수 없다. 또 이와 반대로 여성이 실권을 잡은 장한나의 집 통주상회의 모습을 문현철 가족과 대비시켜 극의 흐름을 주도한다면 다양한 여성의 모습이 그려져 내용이 훨씬 더 풍부해 질 것이다.

아직까지는 장한나의 가족의 일상과 모습이 극의 흐름과 겉돌고 있는 듯한 인상마저 줄 만큼 그들의 존재성을 부여해 줄 만한 확고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지 못하다. 즉 이러한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좀 더 장한나 가족의 모습을 문현철 가족의 모습만큼만 그려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재미난 드라마가 될 것이다.

물론 아직 방송 초반이기에 충분히 드라마 스토리와 캐릭터를 재정비하여 재미있는 드라마로 만들 수 있다. 아직 늦지 않았기에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드라마가 아닐까 생각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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