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융합문화 꽃피운 고대도시

[룩소르에서 다마스커스까지 29] 다마스커스의 역사와 종교

등록 2007.04.06 14:12수정 2007.04.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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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커스의 구시가지에 있는 성문
다마스커스의 구시가지에 있는 성문이승철
"저 성벽과 건물들을 보니 정말 오래된 고대도시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요."

다마스커스 시내로 들어가 직가라는 구시가지 거리에 들어서자 고풍스러운 성문과 낡은 건물들이 이 도시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작은 건물이지만 이 건물도 아마 수천 년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건물이 낡으면 헐어버리고 다시 짓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조금씩 보수해서 계속 쓴답니다."

좁은 골목 안에 있는 작은 건물들도 자세히 살펴보니 고대의 골동품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도시의 신시가지와 새로 지은 건물들을 제외한 구시가지의 대부분은 어쩌면 도시 전체가 몽땅 골동품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마스커스는 중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도시다. 아랍어로는 '디마수끄'라고 하는데 옛날엔 '샴 카브르'라고 불렀다. 이름에 관련된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마스가 이곳에서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술을 담는 자루인 스캔을 준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다마스와 스캔을 합친 합성어인 다마스캔이 다마스커스로 불리게 되었다는 말이다. 또 다른 어원은 물신의 아내 '다마키나'의 이름과 연관시켜 '물을 댄 땅'이란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디마수끄'는 고대 셈족의 언어 '디마쉬카'의 음사란 주장도 있는데 그리스신화나 고대 셈족의 언어에서 유래를 찾을 정도로 이 도시의 역사는 깊고 깊은 것이다.

시가지 대로변의 옛 성벽
시가지 대로변의 옛 성벽이승철

직가의 거리풍경
직가의 거리풍경이승철
거리의 풍경을 둘러보노라면 오래 된 성벽이 둘러쳐져 있는가 하면 빌딩과 아파트도 보인다. 다마스커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답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었다. 아주 오랜 역사만큼이나 고풍스러운 풍경과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이질감과 함께 묘하게 융화되어 어우러지는 도시였다.


이 도시는 지리적으로 동서양을 잇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성산이라는 카시윤산 자락의 '에메랄드 오아시스'라고 불렸던 구타 오아시스에 자리 잡은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아주 오랜 옛날부터 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이 땅을 거쳐 가며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다.

해발 700여 미터의 고지대에 위치한 이 도시는 최초의 나라로 알려진 기원전 2천년쯤에 아랍인들이 소왕국을 세운 이후 앗시리아와 페르시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1484~1450년에는 이집트의 투트모스3세에 의하여 정복당했는데 아케나톤(BC 1372~1354)의 통치 때까지 백여 년간 이집트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87년에는 셈족이 나바티아 왕국을 세웠으나 오래 견디지 못하고 로마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한다. 그 후에도 로마의 뒤를 이은 비잔틴제국에 복속되어 기원 전후 수백 년 동안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기독교 문명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다가 서기 635년에 이슬람군에게 정복되어 우마이야왕조가 세워져 이슬람제국의 수도로 초기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로 자리 잡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뒤를 이은 아바스왕조 시대에는 수도가 바그다드로 옮겨가면서 이슬람의 중심부로서의 지위를 잃게 된다. 10세기 후반에는 다시 이집트에서 일어난 파티마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400여 년 동안 기독교제국의 십자군과 칭기스칸의 후예 몽골군, 그리고 티무르군의 침략을 받아 파괴와 재건을 거듭해왔다.

구시가지의 골목풍경
구시가지의 골목풍경이승철

기념품을 파는 상가거리 풍경
기념품을 파는 상가거리 풍경이승철
16세기 초부터는 터키 오스만제국의 속주가 되어 있다가 제1차 세계대전 뒤에는 다시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했는데 1943년 시리아의 독립과 함께 수도가 되었다.

"그럼 이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숱한 외침으로 시련을 많이 겪은 나라네요."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문득 많은 외침에 시달린 우리 조상들과 역사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그렇습니다. 이 도시는 무려 4천 여 년 동안이나 줄곧 숱한 외침을 받았으면서도 맥이 아주 끊어지거나 폐허가 되어버린 적이 없는 도시지요."

이 도시도 아주 끈질긴 생명력이 강한 도시였던 것이다. 그런 역사의 과정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비롯하여 페르시아와 헬레니즘 문명,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 비잔틴의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프랑스 문명까지 소화하고 융합시킨 이 도시만의 아주 특별한 복합 문화를 꽃피웠다. 그래서 혹자는 이 도시를 가리켜 시대의 동반자라고 칭송을 하기도 한다.

다마스커스에서 우리 일행들이 맨 먼저 둘러본 곳은 바울기념교회였다. 교회는 대로변에 있었는데 옛 성벽과 쭉 이어져 있는 것 같아서 마치 성벽의 큰 성문처럼 보였다. 교회 안에는 바울이 바구니를 타고 피신하는 그림 등 그를 기념하는 몇 점의 성화가 눈길을 끌었다.

바울기념교회 전경
바울기념교회 전경이승철

교회 뜰안에서 만난 이상한 모양의 나무열매
교회 뜰안에서 만난 이상한 모양의 나무열매이승철
바울은 신약성경의 중심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이스라엘에서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던 지식인이며 상류사회에 속했던 사람이다.

그는 초기에 기독교도들을 극심하게 박해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기독교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 결국 로마에 잡혀가 순교를 당하기까지 기독교 전파에 가장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 그가 아닌가.

"사람이 어떻게 한 순간에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지?"

인간적인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바울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바울은 정말 불가사의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마음을 바꿔 기독교도가 된 사연은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아직 사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그는 이 다마스커스에 거주하는 기독교도들을 잡아들이기 위하여 길을 가는 도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사도행전 9:4) 공중에서 울리는 예수의 부름을 듣는 순간 그는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

그는 결국 예수가 지시한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찾아가게 된다. 성경 사도행전 9장 10절부터 12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교회안에 있는 성화, 길에서 예수를 만난 바울
교회안에 있는 성화, 길에서 예수를 만난 바울이승철

교회안에 있는 성화, 매맞는 바울
교회안에 있는 성화, 매맞는 바울이승철
바울은 아나니아를 만나 안수를 받고 다시 시력을 회복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마음을 바꾼 그는 로마로 끌려가 순교할 때까지 가장 독실한 사도요 기독교인으로 전도자의 길을 걷는다. 다음에 들른 곳이 바로 그 아나니아의 집과 기념교회였다.

아나니아의 기념교회는 직가의 거리 비좁은 골목 안에 있었다. 거리가 일직선으로 곧다는 의미를 가진 직가의 거리는 성벽과 성문뿐만 아니라 골목 안에 있는 작은 건물들까지 아주 고풍스러운 모습이었다. 이 지역이 바로 시리아 인구의 13%인 기독교인들의 중심 거주구역으로 고대도시의 중심부였던 것이다.

아나니아 기념교회는 기독교를 가장 악랄하게 핍박했던 바울이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에 예수를 만나 마음을 고쳐먹고 바로 이곳에서 전도자로 다시 태어난 신앙적 탄생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비좁은 돌계단을 밟고 지하에 내려가니 작은 교회가 자리 잡고 있는데 벽에는 바울의 역정을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성화는 다마스커스로 오는 도중에 공중에 나타난 예수의 음성을 듣고 눈이 멀어 무릎을 꿇는 모습과, 전도여행 중에 로마 병사들에게 매를 맞는 모습 등 사도 바울이 겪은 주요 사건들을 보여주는 그림들이었다.

다마스커스 거리풍경
다마스커스 거리풍경이승철
이슬람의 나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 그러나 이 고대도시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 등 이질적인 요소들이 조화롭게 융화되어 아름다운 복합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다.

길에서 만난 주민들도 하나같이 순박하고 친절한 모습이다. 근처의 현지인 식당에서 맛있고 멋진 점심을 먹은 다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슬람의 성지이며 종교적 중심인 우마야드 모스크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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