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70회

등록 2007.04.10 08:21수정 2007.04.1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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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했다. 벌써 반 시진 동안 신문을 했지만 대답이 나온 것은 '비녀는 모르는 일이옵니다'라는 말 한 마디였다. 허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홍교의 태도에서 분명 무언가 알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연근참맥법(撚筋僭脈法)이라고 알고 있나?"


참다못한 풍철한이 불쑥 설중행을 보며 말을 던졌다. 두세 사람의 얼굴색이 약간 변화를 일으켰지만 설중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은 같소. 허나 나 역시 서른여섯 가지 고문 방법을 알고 있지만 연금참맥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오."

그 말에 설중행의 옆에 앉아있던 능효봉이 입술 끝을 말아 올리며 미소를 지었는데 그 미소는 매우 특이해서 보는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주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매우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다는 듯한 호기심 어린 표정처럼 보였지만 신문을 받고 있는 홍교에게 있어서는 매우 섬뜩한 느낌을 주는 미소였다.

"아주 몹쓸 고문법이지… 풍대협 같은 분이 그런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야."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능효봉과 풍철한의 얼굴을 오고갔다. 허나 풍철한의 입에서 연근참맥법이란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되도록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내리깔고 있는 홍교의 눈 깊숙한 곳을 스치는 두려움을 본 사람은 오직 혈녹접 한 명 뿐이었다.


"시전하기가 매우 까다롭지. 고문을 하는 목적은 상대를 죽이지 않고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지. 문제는 연근참맥법을 자칫 잘못 시전 하다가는 아예 죽게 만들어 버리게 되거든. 그것이 문제지만 완벽하게 시전하게 되면 몸이 강철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도 모든 것을 토해내게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지."

지금 능효봉은 아주 여유롭게 말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사람은 없었다. 사람에게 있어 두려움은 고통을 받는 것보다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에 더욱 커지게 되고, 죽는 것보다 죽을 것이란 사실에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능효봉은 풍철한이 연근참맥법을 거론할 때부터 의도했던 목적을 굳이 자신의 입으로 말하게 하기 전에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역시 같은 동료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어떠한 것이기에 그렇게 자신하오?"

설중행 역시 눈치가 빠르다. 은근히 장단을 맞추어 풍철한이 의도하고 능효봉이 만들어가는 효과를 더욱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역시 능효봉과 설중행은 손발이 잘 맞는 동료임에는 틀림없었다.

"우선 일각 정도는 참기 어려운 고통이 오지. 온 몸의 근육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틀린다고 생각해봐. 그냥 비틀리는 정도가 아니야.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지 못할 방향으로 손과 발이 꼬이지. 얼굴이 완전히 뒤로 돌아갈 수도 있어.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해."

홍교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듯 했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들어도 소름끼치는 고통이 충분히 느껴지는 듯한데 정작 자신의 몸에 가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끔찍한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할 것이었다.

"혈맥이 세맥(細脈)까지 어긋난다고 생각해봐. 혈(穴)이 뒤바뀌고 피가 제 멋대로 혈관을 따라 돌게 되면 처음에는 찌르르한 느낌과 함께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미가 물어뜯는 듯한 지독한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구…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산지옥을 경험하는 것이야. 더구나 문제는…."

모르고 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연근참맥법을 알고 있던 사람들도 낯을 찡그렸다. 능효봉의 설명은 너무나 생생해 마치 자신이 당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고 보면 능효봉의 말솜씨는 매우 뛰어난 것임에 틀림없었다.

"연근참맥법이 시전 되고 반 시진 정도 흐른다면 아무도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 없다는 점이야. 해혈(解穴)을 한다 해도 평생 온몸의 근육이 뒤틀린 상태로… 또한 때에 따라서는 혈(穴)이 뒤바뀐 상태로 평생 지독한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 결국 모든 것을 토해낼 수밖에 없고, 오히려 몸만 철저하게 망가지는 것이지."

그러니 당하기 전에 순순히 말하는 게 좋다는 말이다. 풍철한이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자세히 아는 것을 보니 자네는 연근참맥법을 시전할 줄 아는 것 같군. 아주 다행이야. 사실 나는 방법은 알지만 한번도 시전해 본 적이 없어 자칫 걱정이 되었거든. 유일한 실마리를 내 손으로 죽일까봐 말이야."

한 술 떠 뜨는 셈이었다. 홍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그 표정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두려움에 떨고 있는 듯 했다.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아무리 담대한 사람이라 해도 공포를 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러한 고통과 죽음 앞에 의연한 사람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 말씀 마시오. 나 역시 듣기만 했지 제대로 시전할 줄 모르오. 아마 내가 시전 한다면 저 아이는 반드시 죽고 말 것이오. 그러니 제 손을 빌릴 생각이란 아예 하시지 않는 게 좋소. 내 뭐 하러 나섰다가 이 많은 사람들의 욕을 먹겠소… 에… 전혀…."

능효봉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손을 홰홰 내저었다. 그의 말마따나 시전 하다가 잘못해 홍교를 죽이는 날에는 모든 비난을 감수해야 할 판이다. 능효봉의 말에 모두들 어이없는 표정과 다소는 얄밉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잘 아는 척 하더니 정작 할 줄 모른다고 딱 잡아뗄 것은 무언가? 그의 말이 상당한 위협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그런대로 역할을 인정해 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능효봉의 태도는 얄미울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풍철한에게 쏠렸다.

말을 꺼낸 사람도 풍철한이고 한번도 시전해 보지는 않았다고는 하나 할 줄 아는 사람은 이 자리에서 풍철한 뿐이다.

"빌어먹을… 저 자식은 언제나 저런 식이란 말이야… 분명 알고 있으면서도…."

풍철한은 입맛을 쩍 다시며 투덜거렸다. 능글맞게 웃고 있는 능효봉을 보니 더욱 울화가 치미는 것 같았다. 그 때였다. 밖에서 말소리가 들리며 현무각으로 몇 사람이 들어오는 기척이 들렸다.

"조금 늦었소. 저녁식사를 벌써 하신 거요?"

좌등의 목소리였다. 반효가 자리에서 일어나 좌등의 목소리가 들린 입구 쪽으로 향하며 소리쳤다.

"기다리고 있었소."

"시간을 주는 것도 괜찮을 듯싶군. 자신은 없지만 내가 나서야 한다면 할 수 없지."

풍철한 역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말에는 어쩔 수 없이 연근참맥법을 시전 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있어 홍교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유독 혈녹접만이 홍교를 바라보다가 다가갔다.

타타탁---!

그러더니 홍교의 혈도를 몇 군데 빠르게 짚었다.

"선화 언니가 혈도를 짚긴 했지만 사정을 봐주어 움직일 수 있도록 해놓았으니 도망갈 수도 있지 않겠어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던 좌중의 시선을 받으며 혈녹접이 요사스럽게 웃었다. 그런 점에서는 보기와 달리 매우 철저한 성격인 것처럼 보였다. 혼자 남겨진 홍교의 얼굴에 더욱 그늘이 짙어졌다. 이상하게도 연근참맥법이라는 고문방법보다는 자신을 자세히 살피는 듯한 혈녹접의 태도가 마음에 더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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