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도 무서워 할 '학교폭력'의 실체는?

[주장] 학교폭력의 진짜 원인과 대책은 무엇인가

등록 2007.04.10 15:08수정 2007.04.1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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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청소년과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관계자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분수대광장에서 학교폭력이 근절되기를 바라며 구타 사례를 재연하고 있다.

청소년과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관계자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분수대광장에서 학교폭력이 근절되기를 바라며 구타 사례를 재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요즘 미디어에 보도되는 '학교폭력'을 보면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한 초등학생이 자신의 집으로 피해 학생을 데리고 와 "왜 너만 선생님한테 예쁨 받느냐"며 몇 시간 동안 구타를 한 뒤 피해 학생에게 끔찍한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계속 보내는가 하면, 어느 중학생들은 후배의 여자 친구를 사귀자고 했다는 이유로 피해 학생을 밤 10시에 불러내어 무려 4시간 동안 집단 구타한 뒤 인근 야산에(조폭들도 함부로 하지 아니하는) 머리만 내놓은 채 땅 속에 파묻어 버리는 등 학교폭력이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후배에게 성매매나 원조교제를 강요하여 자신의 용돈을 마련하거나 아파트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시켜 금품을 강요하고, 급우에게 3년간 300만원의 금품을 갈취하는 등 폭력의 실태를 들여다보면 벌어지는 입을 도저히 다물 수가 없다.

학교폭력 연구자들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요즘 학교폭력은 고등학생이나 중학생 보다는 초등학생 피해자가 많아지는 소위 저연령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나이로는 도저히 상상을 뛰어넘어 성인 폭력조직의 수법을 뺨치는 흉포화, 초·중·고 학교 급별의 소위 일진(회)에서 성인 폭력조직에로의 재생산 통로로 보이는 연계화·조직화·집단화, 단순한 폭력이나 금품 갈취가 아니라 언어폭력·사이버 폭력·성폭행·집단 따돌림/괴롭힘 등 각양각태의 다양화, 학교폭력 신고에 대비하여 동영상을 찍은 뒤 피해 학생을 위협하여 심리적으로 옭아매는 등 고도로 지능화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학교폭력 예방·대책법'에 의해 각 단위학교별로 학교장이 위원장인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가 존재하지만 교육부와 교육청으로부터의 문책을 두려워하거나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알량한 논리로 피해 학생과 학부모의 신고에도 적당히 넘어가거나 무마하기 일쑤라고 한다.

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학교폭력 사례를 직접 학교 자치위원회에서 다루고 조치를 취한 경우 현격히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보건대,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에서는 학교폭력이 있었음에도 축소·은폐한 학교는 엄단해야 마땅할 것이다.

구조화 된 폭력, 학생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교육당국

a 지난해 8월 16일 참교육학부모회 경남지부가 경남도교육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폭력예방대책을 촉구했다.(자료사진)

지난해 8월 16일 참교육학부모회 경남지부가 경남도교육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폭력예방대책을 촉구했다.(자료사진) ⓒ 윤성효

'한 생명을 천하와도 맞바꿀 수 없다'는 금언은 인간의 존엄에 관한 우리 사회의 가치 척도이다. 하물며 인간을 가장 소중히 다루어야 할 교육기관과 교육자들이 학교폭력을 앞에 두고 자신들의 안위와 보신을 추구함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가해 학생이든 피해 학생이든 학교폭력의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피해자들일 수밖에 없고 함께 치유 받아야 할 중요한 교육의 대상이며 학교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폭력은 예방이 우선이다. 그러나 말은 그렇지만 학교폭력을 유발하는 모든 사회구조적 요인을 일거에 바꿀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사후 약방문이라도 제대로 하도록 하는 것이 학교와 교육청, 교육부의 현실적 방책임을 부인할 수 없다.

대구의 한 실업계 여고는 최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 제도인 '천사(1004) 도우미'를 실시하여 학교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획기적 대안을 개발한 학교로 유명해졌다. 이는 학생들이 학교 안팎에서 청소년 비행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하거나 이로 인한 피해를 볼 경우, 학생들 각자의 휴대 전화에 미리 입력되어 있는 학생부장의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 신고하는(제보자의 보호를 위해 발신번호가 나타나지 않는) 제도라고 한다.


매스컴에 알려지기도 했지만 참으로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하루라도 빨리 교육부와 교육청에서는 이를 도입하여, 이 제도를 정착시켜 나가면 학교폭력을 감소시키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청소년들이 다른 나라 청소년들에 비해 특별히 더 성질이 악하여 학교폭력이 기승을 부린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교폭력의 이면에는 묵과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요인이 도사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 이런 구조를 바꾸어 나가지 않는다면, 학교폭력은 점점 더 격화되지 말란 법도 없다. 학교폭력을 정확히 표현하면 '사회의 폭력성이 학생들을 통해 표출되는 현상'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군부정권의 폭력성을 30년 가까이 겪으면서 만연하게 된 군사주의, 서구의 자본국들처럼 역사적으로 생성된 자본주의가 아니라 국가에 의해 급조되는 과정에서 천착된 소위 우리식 자본주의의 천민성,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물질만능주의와 출세·업적주의, 그런 것들에서 필연적으로 배태될 수밖에 없었던 폭력적이고 타락한 인간관계, 서울대에서 3류대·전문대로 이어지는 학벌 서열사회.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온통 입시공부에만 몰아 부치며 갈수록 적어지는 특별활동과 개발활동 시간으로 파생되는 끼와 젊음을 발산할 통로의 봉쇄, 경제 양극화로 말미암은 가정 파탄과 가족 유대감의 상실, 학교에서 사회에 이르기까지 건전한 청소년 놀이문화의 부재, 조폭과 폭력을 미화하는 퇴폐적 미디어 영상의 범람 등 우리 학생들은 어디 한 군데 몸과 마음을 붙일 곳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유를 줄 순 없을까?

하루 16시간 동안 학교생활을 해도, 6년, 12년을 학교에 다녀도 단 한 번도 재미를 붙이거나 인정받거나 사랑받아본 적이 없다면, 아이들은 삷의 의미와 존재 가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어른이라도 탈선과 일탈을 꿈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학습노동에서 소외와 삶의 무의미를 함께 느끼지만 도대체 탈출구가 없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런 사회적 유해 환경과 절망의 늪에서 조금만 마음이 풀어져도 폭력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할 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이런 학교폭력의 사회구조적 요인들을 제거해 나가는데 진지한 자세로 노력을 해 나갈 때만이 학교폭력이 대폭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필자가 10년 전 현지 연수차 유럽에서 두 달 동안 머물 때의 일이다. 사회복지와 안전망이 튼실한 그곳의 청소년들은 겉모양이 거칠어 보일 뿐이지 대화를 나눠보면 의외로 너무 순수하고 착하기 그지없었다. 유스호스텔 같은 데서 대화를 나누어 보거나 같은 시설에서 숙식을 함께 해보면 도무지 남에게 해코지하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물론 그 사회 청소년들의 일면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하나같이 느긋하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물론 그들은 우리나라 아이들처럼 혹독하게 공부 문제로 닦달을 받거나 다그침에 시달리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에게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도록 해주고, 자신이 하고 싶을 때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삶의 체험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보면 어떨까.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그곳 아이들처럼 느긋하고 착해지지 않을까. 한 나라의 제도와 환경이 인간의 심성 형성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자들은 인간은 저마다 가슴 깊숙이 마성(魔性)이란 게 존재한다고도 하고, 지구상에 폭력 없는 인간 사회는 있을 수 없을 테지만, 우리 사회의 청소년 폭력은 이제 도를 넘은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아이가 학교폭력의 당사자가 아닌 경우 자꾸 남의 일로만 생각하여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는 모두 학교폭력의 잠재적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당장 내 동생이나 자식들이 학교폭력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을 없애 나가는데 진지한 관심과 열정을 쏟을 때 더 나은 교육, 지속가능한 우리 사회를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정도원 기자의 카페는 http://cafe.daum.net/dowon2017입니다.

덧붙이는 글 정도원 기자의 카페는 http://cafe.daum.net/dowon2017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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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해직교사 詩人·한국작가회의회원 전교조 대구교육연구소장 교육민주화동지회 부회장 저서 : 『교단으로 돌아가면』 『우리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겨울나무는 외롭다』 『더 나은 교육은 가능하다』 『교육보다 교사가 먼저다』 『삼백예순날 하냥 외롭고 순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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