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군자'들이 만든 초록빛 운동회

전남 고흥 도덕 면민의 날

등록 2007.04.10 20:58수정 2007.04.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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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유채와 마늘밭, 다랭이논 사이로 봄이 무르익어 간다.

유채와 마늘밭, 다랭이논 사이로 봄이 무르익어 간다. ⓒ 장선태


남녘의 봄소식을 가장 빨리 틔워 내는 곳, 산골 오지는 아니지만 땅끝이라는 해남보다 더 땅끝이라며 주장하는 사람들. 전남 고흥군 도덕면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a 벚꽃과 마늘밭이 어우러진 고흥만 길

벚꽃과 마늘밭이 어우러진 고흥만 길 ⓒ 장선태

지척에 소록도가 있어 외지방문객들에게 많이 열린 곳이지만 서울에서 예닐곱 시간, 한반도의 끄트머리를 지루하게 내려와 다시 고흥반도의 끝에 자리한 도덕면은 이름만큼 순박한 사람들의 고향입니다.

1983년 녹동을 포함하고 있는 도양읍에서 분면되어 1770가구 인구 3780명에 고흥군 16개 읍·면 중 인구수에서 여덟 번째 면세에 불과하지만 유일하게 국회의원(손문경, 박형근, 김수, 장성민)을 4명이나 배출한 자긍심 속에 소록도 한센병 환우들의 애환이 담긴 오마 간척지, 정부의 무분별한 간석지 파괴의 전형인 고흥만 간척사업으로 광활하고 비옥한 토지를 가진 곳입니다.

또한, 총 600여헥타르의 밭 면적 중 참다래, 유자, 기타 채소작물이 200헥타르 나머지 400여헥타르는 마늘작목이라 혹한기에도 면내 들판에는 온통 푸르름이 가득합니다. 난지형 조기출하가 경쟁력인 도덕 마늘은 전국최대의 단일품목 집단재배지로도 명성이 나 있습니다.

드넓은 간척배후지와 전국최고의 마늘 집산지 명성을 지켜 가는 일은 혹독한 노동의 강도가 수반되는 것, 주민들은 4월 중순 마늘쫑(주아) 뽑기 작업부터 마늘수확, 모내기, 병충해 방제, 마늘 파종, 벼수확, 마늘피복, 볏짚조사료 확보 작업 등 11월까지 평야지대 사람들보다 농사일에 있어서만큼은 몇 배의 이골이 나있어 상대적으로 관절계통의 농부증 환자도 많은 편입니다.

규정된 면민의 날은 2월 15일이지만 일상의 삶이 그러하기에 주민들은 본격적인 농번기를 앞두고 다른 곳보다 빨리 마을행사와 효도관광 등을 진행하며 그 연장선에서 한식날인 지난 6일 면민의 날 행사를 열었습니다.


민속, 생활체육이 확산되어 과거처럼 스포츠경기는 줄었어도 백인철(권투·전 동양미들급챔피언), 오광수(권투·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선수의 고향이며 박지성, 김태영(월드컵 스타) 선수가 소년기 축구의 꿈을 키웠던 태생적 인연과 함께 체육행사는 아직도 빠질 수 없는 관심거리입니다.

며칠 전부터 마을별로 음식 장만과 종목별 연습으로 부산하게 움직이던 면민들, 대회 당일, 대회장 주변 학동마을은 주민들을 태우고 나온 차량들로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오전 9시, 축구경기를 시작으로 개회식 시간인 10시까지 모여든 2000여명의 주민들로 초등학교 운동장은 70년대 운동회같이 북적이며 저마다 리별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실로 모처럼만에 보는 정겨운 자리였습니다.


a 자리는 불편하지만 모처럼만의 외출에 건강한 기운이 넘친다.

자리는 불편하지만 모처럼만의 외출에 건강한 기운이 넘친다. ⓒ 장선태

a 도덕면 부녀풍물패'한꾸네'

도덕면 부녀풍물패'한꾸네' ⓒ 장선태

도덕면 부녀 풍물패 '한꾸네'의 식전 공개행사를 시작으로 각색의 트레이닝복으로 통일한 6개 리별 선수단이 연출한 독특한 입장식과 함께 진행된 개회식은 출향향우들이 함께해 열기가 더했으며 진행에서도 모처럼의 파격을 경험한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a 가야리 선수단- 졸속, 굴욕협상 한미FTA 국회비준 저지의 결의를 만장에 새기고..

가야리 선수단- 졸속, 굴욕협상 한미FTA 국회비준 저지의 결의를 만장에 새기고.. ⓒ 장선태

a 개회식 선수단 도열

개회식 선수단 도열 ⓒ 장선태

a 재경 도덕면 신정호 향우회장님의 짧지만 훈훈함이 담긴 축사

재경 도덕면 신정호 향우회장님의 짧지만 훈훈함이 담긴 축사 ⓒ 장선태

과거, 권위와 말의 성찬으로 이어지던 대회사, 내빈축사 등을 연사 당 2분 이내로 끝내며 박수를 받았고 얼굴 알리기와 자화자찬으로 변질돼 군정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행사참석 지양을 선언한 면 출신 박병종 군수의 축사가 없음도 서운해 하지 않는 성숙함과 함께 한층 향상된 민도에 너도 나도 흡족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a 가야리 건강체조 시연

가야리 건강체조 시연 ⓒ 장선태

지루함 없이 개회식이 끝나고 이어진 가야리 주민들의 건강 체조 율동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틈이 준비한 것을 선보여 건강한 삶에 대한 큰 관심을 집중하게 해 주었으며 운동장 여기저기엔 출향 향우들과 주민들의 상견례로 화기애애함이 만발했습니다.

a 육상 400 계주는 선수와 관중의 심장박동을 요동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육상 400 계주는 선수와 관중의 심장박동을 요동치게 하는 마력이 있다. ⓒ 장선태

실내경기장에서 배드민턴이 열리는 동안 운동장에선 스포츠의 꽃인 육상, 400m계주가 펼쳐졌고 어릴 적 운동회의 추억을 되새기는 듯 모두가 트랙을 주시하며 열광했습니다.

스포츠는 집단을 하나로 엮여주는 마력을 가진 것이 분명합니다. 승리 속에 가슴 뭉클함을 느끼고 환호하며 패자 측에선 아쉬움과 탄식을 쏟아내지만 곧 웃음으로 격려하고 최선을 다했다는 박수로 화답하며 뿌듯함을 재생산합니다.

a 맛있게 차린 점심으로 마음에 점을 찍고...

맛있게 차린 점심으로 마음에 점을 찍고... ⓒ 장선태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경품권 추첨이 진행되었고 마을별로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모처럼 만의 나들이에 노동의 힘겨움도 온데간데없습니다.

a 어이! 비도리성님! 이 번호 좀 봐봐!

어이! 비도리성님! 이 번호 좀 봐봐! ⓒ 장선태

갈퀴같이 앙상한 손에 경품권을 꼭 쥐고 사회자의 육성에 따라 맞춰보는 주민들의 풍경에서는 소박함이 묻어나옵니다.

a 경로잔치

경로잔치 ⓒ 장선태

경기가 끝난 실내체육관은 어르신 위안잔치가 한창입니다.
a 유연성은 내가 최고! 훌라후프

유연성은 내가 최고! 훌라후프 ⓒ 장선태

a 마음따로 몸따로-연로한 어르신들을 위한 공굴리기

마음따로 몸따로-연로한 어르신들을 위한 공굴리기 ⓒ 장선태

계속된 줄다리기, 게이트볼, 단체줄넘기, 공굴리기, 바구니 터트리기, 훌라후프 경기가 열리고 결과엔 일희일비합니다.

a 젖먹던 힘 까지, 영차 영차...줄다리기

젖먹던 힘 까지, 영차 영차...줄다리기 ⓒ 장선태

a 단체줄넘기는 체력과 팀웤이 승리의 관건

단체줄넘기는 체력과 팀웤이 승리의 관건 ⓒ 장선태

a 대박을 터트려라!

대박을 터트려라! ⓒ 장선태


이날 마지막 경기의 압권은 "황금돼지를 잡아라!"

a 이동 중 지쳐 꼼짝않는 돼지가 진행자들의 애를 태우고..

이동 중 지쳐 꼼짝않는 돼지가 진행자들의 애를 태우고.. ⓒ 장선태

600년 만에 돌아온다는 황금돼지해를 맞아 올해 처음 기획한 20kg 돼지 2마리가 운동장에 나타났습니다. 남녀가 한 차례씩 참여하기로 하고 시작했으나 주최 측에서 우려했던 '동물 학대 논란'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사육 우리에서 화물차에 실려와 정신이 없던 돼지를 풀어놓자 보는 이들의 흥미는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징이 울리자 순간의 횡재에 과욕이 앞선 나머지 한꺼번에 달려들었고 돼지 위로 몇 겹의 인간 피라미드가 생겼습니다. 우려와 함께 폭소가 만발합니다.

a 돼지살려! 과욕이 부른 돼지위의 인간피라미드.

돼지살려! 과욕이 부른 돼지위의 인간피라미드. ⓒ 장선태

a 승패의 과열을 막기위해 종합시상제를 없앴지만 찬물도 상이라면...

승패의 과열을 막기위해 종합시상제를 없앴지만 찬물도 상이라면... ⓒ 장선태

동물 학대에 대한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연세가 많은 분들의 안전사고에 대한 걱정도 앞섭니다.

다행스럽게도 잡은 돼지에 집착한 사람들을 가까스로 말려 돼지를 구출했으나 돼지는 온몸이 상기된 채 어리둥절했고 승부를 가릴 수 없어 "행운권 추첨으로 대신하겠다"고 하자 허탈감들을 감추며 참여자, 관중들 모두가 또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결국, 주최 측이 의도했던 매끄러운 진행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진풍경에 큰 볼거리로는 대박감이었습니다.

a 노래자랑의 단골 고객은 어디가나 아줌마 부대가 대세다.

노래자랑의 단골 고객은 어디가나 아줌마 부대가 대세다. ⓒ 장선태

a 박자가 안 맞아도 무희들은 즐겁다.노래자랑

박자가 안 맞아도 무희들은 즐겁다.노래자랑 ⓒ 장선태

a 우리동네 부녀회장 노래솜씨도 짱이네

우리동네 부녀회장 노래솜씨도 짱이네 ⓒ 장선태


마지막 부대행사로 열린 마을별 노래자랑에선 진행자의 입담에 웃고 숨겨두었던 저마다의 노래실력을 뽐내며 저물어가는 운동장 한편에서 하루의 행복과 긴 여운의 추억을 만들어 갑니다.

어느 해 보다 많은 주민들이 참여했지만 만취자의 꼴불견도 사소한 시비의 작은 불상사도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민관이 함께 만들어낸 초록빛 가득한 면민의 날 행사에 모두들 흐뭇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뒤로하고 준비에 애쓴 체육회 임원들과 공무원, 마을이장, 부녀회장들은 행사장 청소를 끝으로 굵은 땀방울을 훑어내며 서로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고생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인구 분포, 감소추이로 볼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 신자유주의 농업개방 여파는 농촌의 활력에 큰 장애입니다. 언제까지 이나마도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하나 잘 사는 도덕"의 기치로 대회를 성공리에 개최한 김정태 면장님, 장수환 체육회 상임부회장님, 김석태 이우회장님, 신여자 부녀회장님 그리고 먼 길 달려오신 재경향우회 신정호 회장님을 비롯한 향우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인구 분포, 감소추이로 볼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 신자유주의 농업개방 여파는 농촌의 활력에 큰 장애입니다. 언제까지 이나마도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하나 잘 사는 도덕"의 기치로 대회를 성공리에 개최한 김정태 면장님, 장수환 체육회 상임부회장님, 김석태 이우회장님, 신여자 부녀회장님 그리고 먼 길 달려오신 재경향우회 신정호 회장님을 비롯한 향우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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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부터 지역 언론매체에 종사해 왔습니다.오마이뉴스 출범과 함께 독자회원으로 가입했었고 80년대에 창간된 한겨레신문 이상 벅찬 감격으로 오마이뉴스와 함께하고 있습니다.다양한 정보와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온라인매체 혁명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신자유주의로 폐해로 신음하는 농촌의 모습과 인간미 넘치는 시골사람들의 향기를 담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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