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친 키스' 그리고 세탁기 광고

광고에 이용된 명화이야기 2

등록 2007.04.10 15:28수정 2007.04.1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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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친 키스/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캔버스에 유채
훔친 키스/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캔버스에 유채cgfa.sunsite.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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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시에 키스를 당한 젊은 아가씨의 표정과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훔친 키스' 또한 마찬가지여서, 프라고나르는 젊은 연인들의 가벼운 연애를 훔친 키스 연작으로 그렸다. 이 그림 속의 남자는 애인일 수도 있겠지만, 놀라 당황한 여자의 표정에서나 활짝 열고 들어오지 못하고 문턱에서 키스를 하는 것으로 볼 때 왠지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하게 한다. 여인의 숄이 걸쳐져 있는 의자를 치우고 세탁기를 그려놓은 광고의 상상력은 예술이라 불러도 좋을 듯싶다.

신고전주의의 창시자이자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선사한 다비드 이후 프랑스 미술계는 신고전주의의 대가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와 낭만주의의 수호자 외젠 들라크루아의 각축장이 되었다. 다비드의 수제자인 앵그르는 스승보다 더 고전에 충실하여 전통적인 회화기법을 옹호하면서 "소묘야말로 진짜 미술이다"라고 강조한다.

당시 들라크루아와 제리코는 회화의 기본요소로서 지성과 사생법 대신에 감정과 색채를 중시하며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에 앵그르는 당시 낭만주의자의 영웅 루벤스를 "플랑드르의 푸주간 주인"으로, 들라크루아를 "인간의 탈을 뒤집어 쓴 악마"라 혹평하며 낭만주의에 대항하여 보수주의자의 대변인을 자처한다.

대 오달리스크/앵그르/캔버스에 유채
대 오달리스크/앵그르/캔버스에 유채cgfa.sunsite.dk
여성 누드화의 대가이기도 한 앵그르는 피카소, 마티스, 드가 같은 거장들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는데, 이는 그가 강조한 선, 즉 소묘의 중요성을 따른 화가들이다. 그럼에도 '대 오달리스크'(할렘의 후궁을 뜻한다) 같은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누드는 르네상스 적이라기보다는 마니에리즘에 가깝다. 이를 보를레르는 "내면 깊숙이 숨겨진 관능적인 욕망에서 나온 작품들"이라 말한다.

발팽송의 욕녀/앵그르/캔버스에 유채
발팽송의 욕녀/앵그르/캔버스에 유채cgfa.sunsite.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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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빌 부인/앵그르/캔버스에 유채
오송빌 부인/앵그르/캔버스에 유채cgfa.sunsite.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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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에 등장하는 '발팽송의 욕녀'라는 제목은 이 그림을 최초로 소유한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빛나는 피부결과 윤곽선이 분명한 형태에서 앵그르 회화의 진수가 엿보인다. '오송빌 부인'에서 앵그르는 빳빳한 옷감, 결이 고운 머리칼, 섬세한 피부 등을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의 주의력으로 붓 자국 하나 없이 묘사해내고 있다. 부분으로 자른 '발팽송의 욕녀'는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는 현실의 그녀 같다.

카바넬(Cabanel, Alexandre)이 활동할 당시에는 살롱이 미술 활동의 주무대였다. 살롱은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단체나 개인의 주문 같은 판매권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런데 이 살롱은 전통적인 소재와 회화 기법에 대해서는 관대하였지만 개혁적인 화가들과 그들의 화풍은 배척하였다. 이른바 아카데미 회화라 불리는 신화적 소재나 역사적 소재를 그린 회화들이 살롱에서 우대 받는 회화였다.

화가들의 아뜰리에/쿠르베/캔버스에 유채
화가들의 아뜰리에/쿠르베/캔버스에 유채cgfa.sunsite.dk
현대회화의 문을 연 사실주의의 거장 쿠르베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살롱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쿠르베는 만국박람회의 심사위원들이 거부한 자신의 그림(화가의 아뜰리에, 예술가로서의 7년 생애의 한 단면을 결정짓는 실제 알레고리)을 알마 광장에 위치한 사실주의 화실에 내걸으며 아카데미 회화와 격렬하게 대립한다.


비너스의 탄생/알렉상드르 카바넬/캔버스에 유채
비너스의 탄생/알렉상드르 카바넬/캔버스에 유채cgfa.sunsite.dk
마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적수 중의 한 명이 카바넬이다. 즉 그가 아카데미 회화의 대표적인 화가라는 말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에 근거한 현대 회화의 흐름에 대항한, 또 다른 아카데미 회화의 수호자인 윌리엄 부그로는 "나는 예술에서 아름다운 것만을 보며, 나에게 예술은 아름다움이다. 무슨 까닭에 자연의 추함을 재현한단 말인가?"라며 자신들의 화풍만이 예술이라 주장한다.

카바넬이 그린 '비너스의 탄생'은 신화를 빌미 삼은 이상적인 누드화로 지금으로서는 흔히 에로틱한 몽상의 지주로 여겨지고 그의 나체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에 쿠르베나 마네가 그린 옷을 벗거나 나체인 여인들은 외설적으로 평가 받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독약을 죄수에게 시험 중인 클레오파트라'는 카바넬이 역사적 소재를 그린 그림에 걸맞게 화려한 문양의 의상과 사람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클레오파트라의 냉정함을 대조시켜 중성적이고 아카데믹한 느낌을 이끌어낸다.

독약을 시험중인 클레오파트라/카바넬/캔버스에 유채
독약을 시험중인 클레오파트라/카바넬/캔버스에 유채cgfa.sunsite.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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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넬과 마네의 대립은 현대 회화가 추구하는 일상성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술 비평가 카스타냐리는 "19세기 프랑스 회화의 발전과 탈선을 묘사하기를 원하는 그날, 카바넬을 제쳐두고 마네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라고 그의 평론에서 적고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냉엄한 시선이 닿는 곳에 죄수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지고 현대 문명의 이기인 벽걸이 TV가 걸려 있다. 광고 제작자는 카바넬의 시선이 머무는 그 곳이 바로 편리와 속도로 상징되는 현대의 출발점이었던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객쩍은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지면의 제약 상 마네와 드가, 그리고 고흐와 고갱의 그림들은 다음 기사로 미룬다. 광고와 함께 생활에서 만나는 명화 속으로의 여행, 어찌 즐겁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광고에 이용된 명화이야기 1'에 이어진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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