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문화와 대학가 '부자학' 열풍

소비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 자본주의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로 이어져

등록 2007.04.12 10:55수정 2007.04.1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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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쇼윈도의 투명한 유리 뒤로 발산되는 '몽롱한 유혹'은 소비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쇼윈도의 투명한 유리 뒤로 발산되는 '몽롱한 유혹'은 소비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 손기영

11일 오후 서울 명동의 한 백화점 명품관에는 평일임에도 쇼핑 나온 사람들로 제법 붐볐고, 곳곳에는 봄을 알리는 신상품들이 소비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화려한 조명을 받는 명품들이 진열된 쇼윈도 앞에서는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곧잘 멈춰졌으며, 외마디 감탄사와 함께 부러움의 시선들이 스쳐갔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명품관 쇼윈도는 올봄 새로운 유행이 전파되는 공간이며, 새로운 욕구가 창출되는 공간이었다. 또한 반복되는 일상과 평준화된 대중 속에 파묻혔던 사람들이 투명한 유리 뒤에서 발산되는 '몽롱한 유혹'으로 빠져들기에도 충분했다.

이런 유혹의 마술은 그곳에서 멈춘 사람들의 발길을 결국 명품관 안으로 옮겨놓았다. 명품관 안에 들어서자 가득 차 있는 값비싼 물건들과 상냥한 점원들, 그리고 이국적인 내부 장식들이 발길을 옮긴 사람들을 맞이했고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특별한 사람으로 그들을 대접했다.

대중 깊이 파고든 명품 선호 현상

어느새 명품관을 찾은 사람들은 남들과 같은 그저 그런 존재가 아니라, 명품의 잠재적 소비자로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게 되었다. 하지만 고급 제품을 소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일 뿐, 대다수 사람들은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격차를 느끼며 다시 평범한 나 자신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기서 그들이 가진 '욕망이란 창고'에 빈 구석은 더욱 늘어나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비에 대한 욕구불만에 시달리게 된다. 명품관을 찾은 윤경희(27)씨는 "여기에 있는 물건들 중에 정말 마음에 드는 명품 핸드백이 있었는데 값이 너무 비싸 오늘은 구경하는 것에 만족했다. 나중엔 꼭 돈을 모아 구입하겠다"며 이곳을 찾은 뒤 느낀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명품 문화에 빠져들고 얽매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대중적 감수성의 탄생> 저자 강심호씨는 "도토리 키재기와 같이 평준화된 대중들로부터 자신을 떼어내어 차별화시키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면서, "명품문화는 단순한 사용가치보다는 제품이 가지는 고유한 '기호가치'가 중시된다"고 말한다.


또한 "명품소비에 대한 욕망은 사람들의 지갑이 두툼해지는 것을 요구하며, 이는 욕구 충족을 위한 끊임없는 노동과 자본주의에 대한 무비판적인 충성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무뎌지고 있는 모습 중 하나로, 대중 속에 깊이 파고든 '명품 선호 현상'을 꼽았다.

대학가엔 '부자학 강의' 열풍


a '명품'은 소비지상주의 문화의 정점이며, 우리가 자본주의에 무비판적으로 길들여지는 달콤한 최면이다.

'명품'은 소비지상주의 문화의 정점이며, 우리가 자본주의에 무비판적으로 길들여지는 달콤한 최면이다. ⓒ 손기영

'명품문화'는 이처럼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점점 바꿔놓고 있으며,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20~30대 젊은 층의 소비심리를 자극해 돈을 많이 벌고 쓰는 것을 인생의 이상점으로 여기게 만들고 있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는 대표적 현상이 몇 년 전부터 대학 캠퍼스 내에서 큰 반응을 얻고 있는 '부자학 강의'다.

지난 2004년 서울여대 한동철 교수의 '부자학개론'을 시작으로 '부자학 강의'는 현재 단국대 등 전국 주요 대학에서 개설되고 있다. 세간의 우려에도 수강신청 2분 만에 강좌가 마감되고 학교 측에서 기존 정원을 크게 늘리는 등 학생들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현상은 학생들의 심각한 취업난과 맞물려, '경제적 자유'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벌이와 씀씀이'란 소비지상주의의 단순한 등식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지고 있는 '진리와 신앙 그리고 진실한 사랑' 등 인문학적 가치가 캠퍼스 내에서 밀려나고 있는 현실은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를 '이브를 유혹하는 뱀'에 비유하고 싶다. 즉 자본주의가 뿜어내는 상품경제의 매혹은 세상의 이브들을 소비의 욕망으로 끌어들이며, 그들의 '심장과 뇌수'를 보너스와 월급에 팔아버린 기계인간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명품문화'의 화려한 유혹과 이를 채우기 위한 끊임없는 욕망의 쇠사슬…. 그 속에서 우리가 빠져나오기란 '쳇바퀴 속 다람쥐'처럼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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