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언제까지나 엄마는 그냥 엄마일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이제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장희용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엄마가 위 내시경과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기 위해 어제 저녁 밤새 설사약을 드셨다. 검사받는 것보다 설사약 먹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하더니 약 드실 때마다 표정이 일그러진다. 더 이상 못 먹겠다는 엄마, 너무 괴로워하는 엄마를 차마 볼 수 없어 아내에게 자리를 맡기고는 병실을 나왔다.
4ℓ나 되는 설사약을 4시간에 걸쳐 드셨다. 설사를 계속해서 그런지 기운도 없고 얼굴도 창백해진 엄마. 누워 있는 엄마 손 잡고 물끄러미 얼굴과 손 바라보는데, 그런 부모님 모습 보고 어떤 자식인들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
너무도 많은 세월의 흔적이 하나씩 하나씩 내 가슴으로 밀려올 때마다 마음이 아렸다. 돌아누운 엄마 얼굴을 바라보다 가만히 엄마 손잡아 봤다. 우리 엄마 손 잡은 지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한참 있다가 "엄마 많이 늙었네" 했더니 그냥 웃으셨다.
엄마는 아내하고 나가서 밥 먹고 오라고 했다. "엄마가 금식하는 데 우리가 어떻게 먹어?"했더니 자꾸만 먹고 오라고 한다. 기운 하나 없으면서도 당신 며느리와 자식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밖으로 나와서는 차마 밥 먹기가 그래서 빵하고 우유 하나 사 먹었다.
오전에 내시경 검사를 위해 마취에 들어갔다. 초조하고 불안한 그 순간의 시간들. 혹여 큰 병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생각나 차마 큰 병이면 어쩌니 하는 말은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엄마가 나왔다. 의사는 대장 쪽에 혹 같은 것이 여러 개 있는 데 걱정할 만한 것은 아니라면서 괜찮다고 했다. 퇴원해도 좋다고 했다. 기분 좋았다.
수면 내시경을 하기는 했지만 많이 힘들었나 보다. 엄마 얼굴이 아까보다 더 창백해 보였다. 엄마 손이 많이 꺼끌꺼끌 했다. 엄마에게 많이 죄송했다. 오랜 세월 지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 대신 힘든 농사일을 하셨고, 그 힘듦 속에서도 아프다는 말씀 한마디 안 하신 엄마.
그래서 엄마는 늙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을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엄마 그대로 늘 그 자리에 계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 마취가 덜 깬 탓에 기운 없이 누워 있는 엄마를 바라보니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병실 침대에 붙어 있는 74라는 숫자가 할머니라는 것을 알려주고는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단 한 번도 엄마가 할머니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엄마가 할머니라는 사실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