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업 면접 떨어지면 알바라고 하지 뭐

<그래요 다 제 탓입니다, 하지만!>(2)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에 본 첫 면접

등록 2007.04.12 16:21수정 2007.04.1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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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겨울 대학 생활 마지막 학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취업에 대해 아주 심각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기업에 원서를 써넣으려니 그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는 듯했다. 모교에 대해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리 높지 않은 인지도 때문에 때로는 차라리 지방 국립대에 가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했다. 아무리 학벌을 예전만큼 중시하지 않는다지만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그래 하지만 뭐 어떤가! 다른 걸로 그 차이를 극복하면 되는 것이니. 그 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토익 점수를 높이는 일이었다. 허허,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토익 900점이 넘어도 탈락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가 언론을 통해 간간이 보도되었다.

토익이 입사 시험에서 중시되고 고득점자가 속출하니 토익은 그야말로 시험을 볼 수 있는 조건이 되어 버린 셈이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현실만 믿는다고 참으로 어리석게도 그런 언론 보도를 보고 일정 수준에 오르지도 않은 토익 공부를 접어버렸다.

계속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토익 대신 다른 무기를 장착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택한 것이 중국어 시험이다. 2004년 반년이나 베이징에서 어학연수를 했다. 영어보다 배우는 게 재미있으니 중국어를 공부하면 분명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 걸, 역시 난 시험에는 약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흥미 있고 자신 있었던 중국어도 시험 성적이 기대만큼 나와 주지를 않았다. 점점 암담해지기 시작했다.

a 여전히 책상 한 편을 가득채우고 있는 중국어 책

여전히 책상 한 편을 가득채우고 있는 중국어 책 ⓒ 양중모

그래서 결국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이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미리 경험을 많이 쌓자는 것이었다. 무엇이라도 해서 돈도 벌고 경험도 쌓으면 취직할 때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대학교를 졸업해서 '묻지마 취업'을 하면 무시당할 것 같아 못할 것 같았지만, 학창 시절에 하는 것은 경험을 쌓기 위해서라는 그럴 듯한 명분이 있으니 그 얼마나 좋은가.

한 시가 급했기 때문에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그동안 공부했던 것을 살리는 길로 나가고 싶었다. 그 때 눈에 띈 것이 바로 '중국어 학습지 교사'였다. 중국어를 사용할 수도 있고, 고객과 일대일 만남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니 분명 후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원서를 냈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속으로야 대단한 회사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첫 면접인데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서 참 우습게도 이런 다짐을 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야!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떨어진다고 뭐 어떻게 되는 거 아냐. 그래 그냥 경험 삼아 면접 본다고 생각해.'


알량한 자존심에 남들이 알만한 기업도 아닌 조그만 회사에 가 면접을 보는 것은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것이라고 몇 번이나 스스로를 세뇌했다. 그렇게 세뇌를 하고 그 회사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역시 면접을 보러 가는 것 같은 한 여자가 눈앞에 보였다.

정장을 입긴 했지만 학생 티가 역력한 나를 보더니 그 여자는 코웃음을 쳤다. 그 표정은 마치 '이런 풋내기랑 같이 면접을 봐야 하다니, 아 자존심 상해'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순간적으로 불쾌한 감정이 생겨 같이 노려보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혹시라도 같이 일할 때, 불편한 관계가 되면 안 되지 않는가.

드디어 회사 사무실 문에 들어섰다. 그리고 면접실에 가기 전에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꽤나 떨렸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까 나를 무시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여자가 눈에 띄었다.

무언가 열심히 보고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여자인가 싶어 그 여자가 보는 책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이고, 세상에. 그녀가 보는 책은 중국어 시험 중 가장 기초에 해당하는 것에 대해 설명이 나온 책이었다. 그런 주제에 나를 무시하다니.

내가 이런 데까지 와서 무시당해야 하나 하는 서러운 생각을 한 번에 날려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 과외 하는 학생 때문에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당시 내 주제는 대기업에 원서를 내보아야 99.9% 인사담당자 책상에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것이 분명한 수준이었지만 자존심만큼은 대기업 입사 지원자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껏 이어졌다면 나 역시 계속해서 취업준비생이라는 꼬리를 떼지 못했을 것이다.

"양중모씨 들어오세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내 면접 차례가 왔다. 온 몸이 빳빳하게 굳어지며 긴장을 했지만 그 와중에도 절대로 나는 이런 데서 썩을 인물이 아니야! 라는 그 자존심의 꼬리를 떼지 못하고 면접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또 한 번 다짐을 했다.

'난 면접 경험을 쌓기 위해서야. 이 정도에서 머무르기 위해서가 아니야!'

그리고 드디어 면접이 시작되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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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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