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에 위치한 양돈농가. 지난 5일 이곳엔 한미FTA 타결에 대한 우려가 가득했다.오마이뉴스 강성관
"지금 그만 두는 것이 경제적으로 낫겠다 싶기도한데 정리하자니 그동안 투자한 것이 못내 아쉽기도하고…, 그만 둔다고 딱히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막막하다"
지난 5일 찾은 전남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 양돈농장 단지. 마을에서 돼지 1000여마리 이상씩을 기르고 있는 여덟 농가가 집단 단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정부는 지난 2일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체결 직후 "가장 큰 피해는 농업분야"라고 하면서도 "양돈농가들은 큰 피해가 예상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양돈농가들이 느끼는 위기감과 불안감은 '존폐'를 고민해야 할 만큼 컸다. 기자의 질문에 정아무개(43)씨는 한숨만 쉬면서 좀체 입을 열지 않고 먼 산만 바라봤다. 담배를 한 대 피우던 정씨는 "지난해 축사에 불이 나서 이제 겨우 복구해 놨는데 한미FTA 체결 소식을 들으니깐 죽을 지경"이라며 "미국산 돼지와 우리 돼지는 생산 비용부터가 경쟁이 안된다, 싼 미국산 삼겹살이 들어오면 가격 경쟁이 도저히 안된다"고 체념하듯 말했다.
'예상보다는 차분한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차분이 아니고 그냥 멍하다, 폐업보조금도 어떻게 줄지 모르지만 빚이라도 없어야 그만 두기도 쉬울 텐데 그것도 아니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삼중고에 시달리고 샌드위치될 것"
양돈산업은 농업 부문 중 그 생산액에서 쌀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문으로 지난 2002∼2004년 평균 2조4978억원(한국농촌경제연구원 추정치·양돈협회는 연평균 3조8000억여원으로 추정)에 이르며 축산분야에서는 그 규모가 가장 크다. 또 국내 육류 소비량의 50%가량이 돼지고기가 차지할 정도다. 양돈농가 수는 1만3000여호로 한우농가 수(20여만호)에 비해작다.
한국은 그 동안 돼지고기에 대해 22.5%(냉장육)∼25%(냉동육)의 관세율을 적용해 왔다. 그러나 한미FTA 타결로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부위인 삼겹살·갈비·목살(냉장육)은 10년에 걸쳐 관세를 폐지하고 세이프가드를 적용하기로 했다. 또 도체와 이분도체 등 냉장육과 냉동육·식용설육·돼지고기 가공품 등은 2014년 1월 1일부터, 소시지는 5년 후 관세가 폐지된다.
전남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에서 1500여 마리를 기르고 있는 임중기(57)씨는 "정부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고 모두 한우농가에만 신경쓰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하다"면서 "왜 양돈농가의 피해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도 안쓰고 느긋한지 모르겠다, 농가 수가 적다고 무시하면 안된다"고 섭섭함을 드러냈다.
양계 등 축산업만 35년 째인 임씨는 "전두환 시절에는 소를 키우다가 미국 쇠고기 폭탄을 맞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면서 "생산비는 높고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가격경쟁력에서 도저히 미국산에 견디낼 수 없다, 줄 도산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1500여 마리를 기르고 있는 박병섭(50·전남 함평)씨도 "함께 양돈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한숨만 쉬고 있다"고 전했다. 박씨는 "그렇지 않아도 미국에 비해 생산원가가 높은데 원료자체가 거의 모두 수입에 의존하는 배합사료 값이 옥수수 가격 상승으로 올해만 해도 벌써 3번이나 올랐다"면서 "생산비는 오르는데, 지금까지는 괜찮았던 가격하락은 뻔하다, 불안심리 때문인지 벌써 1Kg당 600원정도가 떨어졌다"고 우려했다.
신규태(59·전남 무안) 전남양돈협회 회장은 "양돈농가로서는 이번 한미FTA 타결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쇠고기 가지고만 이야기하면서 상대적으로 관심있게 보지 않았던 양돈산업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대처했다"고 지적하면서 "향후 5년 이내에 5000여 농가는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돈 피해는 높지 않을 수 있다'는 정부의 다소 대소롭지 않다는 예상에도 양돈농가들이 존폐까지 언급하고 나선 것은 한국 양돈산업이 현재 처한 경쟁력 부실에 원인이 있다. 양돈업계는 ▲국제 옥수수 가격 상승에 따른 사료 비용 상승(미국 : 한국 대비 마리 당 생산비 68%∼51%) ▲생산성 저조(폐사율 18%) ▲수입육 가격하락에 따른 소비층 이동 ▲값 싼 미국산 쇠고기 수입시 돼지고기 소비층 이동(소비성향·교차탄력성) 등으로 3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도 생산비와 가격에서 경쟁력이 부족한데 돼지고기와 교차탄력성이 강한 미국산 쇠고기가 대량 수입될 경우, 가격 하락은 물론 소비층을 쇠고기 부문으로 잃게돼 이로 인한 간접피해도 크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부위인 삼겹살·목살의 경우, 가격경쟁력에서 한국산 대비 미국산 가격은 1Kg 당 각각 32%, 38%에 그치고 있다.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전문가들은 미국산 돼지고기에 대한 관세가 완전철폐될 경우 가격 차이가 더 크게 나고, 수입육의 가격 하락이 한국산 돼지고기 가격 역시 동반 하락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쇠고기·돼지고기 관세철폐시 최고 1조원까지 피해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