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 접수한 김수현의 불륜 드라마

[드라마는 내 인생 5] 4회만에 시청률 1위 차지한 <내 남자의 여자>

등록 2007.04.13 11:44수정 2007.04.16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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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불륜의 애정행각의 선정적인 장면만 난무하고 있다.

불륜의 애정행각의 선정적인 장면만 난무하고 있다. ⓒ SBS

월화드라마 안방극장은 불륜이 접수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SBS <내 남자의 여자>다. 단 4회 만에 시청률 1위였던 MBC <히트>를 눌렀다. 이것은 언어의 연금술사 김수현 작가와 무서운 연기를 보여준 김희애, 배종옥, 하유미 등 네 명의 여자 덕분이 아닐까 싶다.

실제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하며 불륜녀로 등장하는 김희애 연기는 예전 '폭풍의 계절'을 다시 보는 듯한 시니컬한 웃음과 조소 담긴 표정은 그야말로 착한 아내로만 인식되던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배종옥도 마찬가지다. 지고지순한 현모양처보다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으로 등장하던 그녀가 현모양처로 둔갑했다. 아직은 극 초반 비중이 높지 않아 그녀의 연기력이 제대로 나오지는 않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잔소리를 하며 가정적인 여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훌륭히 연기해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에 늘 조연으로만 인식되던 하유미는 불륜 사실을 알고 시원하게 내뱉는 대사 하나하나가 어록으로 등장할 만큼 대한민국 쿨한 아줌마의 모습을 보여주며 물이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극 초반에 이들의 연기력은 인기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김수현 작가도 기존 불륜 드라마와는 확실하게 차별성을 두며 서릿발이 선 대사들을 써내고 있다. 역시 연륜이 묻어나는 그녀다.

하지만 김수현 작가하면 떠오르는 아름다운 보수주의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더욱이 불륜을 미화시키는 인상마저 남기고 있어 더욱 궁금해진다. 물론 아직 극 초반이기에 어떻게 전개되어 설득력을 얻어낼지 주목이 되고는 있지만 아직은 불륜을 미화시키는 수준에 머무른 것이 사실이다.

내 불륜은 달라!


a 연기자들의 연기력이 드라마를 살리고 있다.

연기자들의 연기력이 드라마를 살리고 있다. ⓒ SBS

우선 기존 불륜 드라마와 차별성을 살펴본다면 단연 김수현 작가의 저력이 나온다. 그동안 기존 불륜 드라마는 불륜을 저지르는 두 남녀의 일거수일투족이 등장하다. 반면 그러한 사실을 모른 아내 혹은 남편의 가정적인 모습이 대비된다.

물론 <내 남자의 여자>도 마찬가지다. 화영(김희애)과 준표(김상중)의 밀애 장면을 보여주고, 가정에 홀로 남겨진 착한 아내 지수(배종옥)의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루며 불륜남녀의 모습이 도드라진다. 하지만 그러한 장면들이 <내 남자의 여자>에서는 속전속결이다.


대부분 불륜 드라마는 시간을 끌고 끌어서 그들의 불륜이 발각되고 하늘이 무너지는 아내와 남편의 모습이 등장한다. 또한 대부분 불륜은 발각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김수현 작가는 역시 대사만큼이나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했다.

은수(하유미)와 격투를 벌인 다음 날 지수를 찾아가 직접 지수에게 불륜 사실을 알린다. 이 또한 기존에 볼 수 없던 장면이다. 그뿐이 아니다. 불륜 사실을 안 은수가 화영을 찾아가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흔히들 여자들끼리 싸우면 머리를 잡거나 뺨을 때리는 것이 전부다. 조금 과격하면 애꿎은 살림을 부수는 것. 그러나 <내 남자의 여자>에서는 주먹과 프라이팬 등 보통 여자들이 싸움하는 것보다 과격하게 그려냈다. 이 장면은 시청자들로부터 '속 시원하다'는 평을 듣기까지 했을 정도다.

지금까지 김수현 작가는 기존 불륜드라마의 공식을 철저하게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법칙을 새롭게 쓰기라도 하는 듯 차별성으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자신의 주특기인 '따따따 대사'는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은수의 입을 통해 나오는 대사는 서릿발이 날리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가 생각하는 공감대를 건드린다.

가령 불륜 사실을 안 은수가 화가 나 내뱉는 대사는 대략 이렇다.

"기름에 튀겨 죽일 년" 이라고 퍼붓거나 은수에게 거짓말하고 몰래 숨어 불륜관계를 지속하는 화영에게 "너 18단이면 난 36단이야!"라고 외친다. 혹은 "내가 두 것들 죽이고 사형당할까? 차라리 폭탄 우편물 보내? 기집애집 냉장고 소주병에 농약 바꿔 죽여 버리고 홍 서방인지 청 서방인지 자동차로 밀어버릴까"

독기 품은 한 여성의 입이라 할지라도 그 서슬은 다른 것보다 더하다. 그렇지만 은수의 활약은 불륜에 경종을 울리게 하고픈 시청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그렇다. 일단 <내 남자의 여자>는 연기자의 연기력과 김수현 작가의 저력에 힘입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김수현 작가처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래! 불륜이지만 재미있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불륜 모습만 다를 뿐이야!

a 하유미의 열연은 통쾌함을 주는 동시에 폭력만이 남게 된다.

하유미의 열연은 통쾌함을 주는 동시에 폭력만이 남게 된다. ⓒ SBS

그런데 문제는 불륜을 다루는 모습과 전개 방식만 다를 뿐 불륜은 불륜이다. 극중에서 동서지간으로 나오는 준표와 은수의 남편 달삼(김병세)에 나오는 대사를 보더라도 그것을 인정한다.

준표는 외도가 아닌 사랑에 빠졌다고 강조하지만 달삼은 "그것도 외도야! 외도가 별거냐?"라고 응수한다. 이처럼 <내 남자의 여자> 또한 불륜은 불륜이다. 하지만 그러한 불륜을 어떻게 그려내느냐에 따라 다르다.

예전 노희경 작가의 <거짓말>은 불륜을 노래했지만 그 불륜은 달랐다. 인간의 욕망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거짓말>은 마니아층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스 조화일까? 언어의 연금술사라 불리는 김수현 작가임에도 4회까지만 본다면 너무나 가볍다.

가볍다 못해 인간의 욕망은 사라지고, 욕정만 남아 있다. 화영과 준표가 벌이는 애정행각과 김희애의 스타일리시한 패션 감각 중에서도 가슴이 깊게 파인 속옷 감각만 난무하고 있다. 또한 불륜 사실을 안 은수 혼자서 고군분투 할 뿐이다.

배종옥은 방송 초반 우리 주변의 40대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사실 김수현 작가가 써내려가는 것이기에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선정적인 장면만 있을 뿐 화영과 준표가 왜 사랑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등장하지 않는다. 즉, 사랑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나누어 볼 때 <내 남자의 여자>는 정신적 사랑이 배제되어 있다.

단지 화영이 아프로디테의 신화이야기를 하면서 아프로디테의 마술에 걸린 것이 아닐까, 아프로디테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들의 불륜이 면죄부를 받기는 힘들다.

화영이 자신의 남편이 죽고 시집에 돈을 쏟아 붓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남들과는 다른 사상을 가졌다고 이야기해도 그것은 그들의 불륜 행각의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것만으로 이들의 정신적 교감을 다 표현해 내기엔 역부족이다.

물론 조금 더 진행되면 욕정의 이유가 밝혀지겠지만 이미 드라마는 자극의 강도가 기존 불륜 드라마보다 높다. 연기자들의 연기력이 없다면 '4주 후에 만나시죠'라고 말하는 <사랑과 전쟁>과 다를 게 없다.

불륜으로 인한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그려낼 것이라는 기대를 여지없이 깨고 있다. 오히려 '돈 많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불륜을 하는 구나' 혹은 '무엇이 부족해서 불륜을 저지르는가' 하는 의문만을 남길 뿐이다.

이처럼 끝내 치정극으로 몰아간 뒤 인간의 욕망에 대해 성찰한다 해도 그때는 너무 늦었다. 이미 선정과 자극으로 버무려 40대의 중년의 바람. "자나 깨나 남편 조심!"이라는 신조어만 남을 것이다. 정말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그려내고 싶다면 둘의 정신적인 사랑. 육체적인 것을 뛰어 넘은 그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길 바란다.

과거 가부장제의 폐해가 아닌 아름다운 보수주의를 부활시켰던 <부모님 전상서>처럼 인간의 욕망을 파헤치는 멋진 드라마로 변모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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