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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은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만 16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모진 독감에 걸려 골골거리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집 뒤 영운마을을 찾았습니다. 오리고기가 맛있는 참나무 장작 오리불고기집에서 외식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나오는 길목 돌담 아래에는 풀이 많이 자라있었습니다. 불현듯 어릴 적 봄이 되면 꼴망태를 짊어지고 쇠꼴을 베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파릇파릇 돋아난 쇠꼴을 베어와 쇠죽을 끓여주면 우리집 소는 큰 눈망울을 두리번거리며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릅니다. 13마리나 새끼를 낳아 내 공부 밑천이 되었고, 몇 마지기 농사일을 도맡아 해주던 우리집 보물 1호였던 고마운 그 소가 뇌리에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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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담아래 햍볕 받아 자란 쇠꼴 ⓒ 강재규
돌담 밑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아 자란 풀이 아직은 연두빛을 띠는 이른 봄입니다. 풀빛이 짙은 녹색으로 변해갈 때 쯤 우리네 농부들의 시름 또한 깊어 가겠지요. 마음이 아려옵니다. 가녀리게 자란 풀을 보면서도 한미FTA 시름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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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 깬 병아리를 닮은 무 배추꽃 ⓒ 강재규
무꽃인지 배추꽃인지 남새밭은 알에서 갓 깬 병아리같은 노란 꽃을 피웠습니다. 아마 무나 배추꽃이라면 토종임이 분명할 것입니다. 토종은 꽃이 지면 씨앗이 여물어 올 가을에 밭에다 다시 뿌릴 수 있어 지속가능한 품종입니다. 1년 농사만을 위해 개량된 다국적 기업이 생산한 수입 씨앗은 지속성이 없습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밀, 보리, 콩, 무, 배추 씨앗들은 다국적 기업이 생산한 것에 밀려 점차 이 땅에서 사라져갈 것입니다. 미리 씨앗 박물관이라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우리네 후손들은 그 흔적조차 느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래저래 철학 없는 지도자를 모신 백성들은 아린 마음속으로 속으로 움켜 삼킵니다.
아마 시간이 많이 흐른 어느 날 문득 우리네 후손들은 옛날의 어리석은 선조를 목 놓아 통곡하며 원망하는 날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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