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그림 속에서 역사가 손짓하네

[서평] 이주헌의 <생생한 역사화에 뭐가 담겨 있을까>

등록 2007.04.15 18:36수정 2007.04.1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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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표지

책 표지 ⓒ 다섯수레

언제였던가. 그 희미한 기억 속에 ‘이주헌의 미술기행’이란 프로그램이 자리 잡고 있다. 미술에 관심이 별로 없던 내가 쏙 빨려들 만큼 맛깔스럽게 설명해주던 프로였다. 그 기억이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생생한 역사화에 뭐가 담겨 있을까>란 제목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역사화는 이름 자체로만 보면 역사에 남는 사건이나 그와 관계되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 같습니다. 하지만 역사화 가운데는 실제로 벌어진 적이 없는 사건이나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그린 그림들이 있습니다. 서양 미술에서는 역사화의 의미가 역사를 그린 그림(history painting)이라기보다 그냥 이야기를 그린 그림(story painting)에 가깝습니다. - 6쪽


역사란 기록을 통해서만 전해지는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내게 그림도 문자 이상으로 생생한 역사를 전할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준 게 이 책이다. 그림을 통해 한 시대의 가치와 도덕을 표현하고, 피 비린내 나는 학살과 전쟁, 혁명과 처형, 신화와 전설 등을 생생하게 재현했던 역사화의 세계에 푹 빠져 들었다.

인간에 대한 재발견

역사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일용할 양식도 구하지 못해 도둑질을 하다 죄인이 된 사람도 있고, 칼과 창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제 몸처럼 부리며 광활한 대륙과 해양을 넘나들며 영토를 넓힌 영웅도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어간 이들도 많고, 기쁠 땐 웃고 슬플 땐 울며 살다 간 사람들도 많다.

역사화 속에 등장하는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이주헌의 안내를 따라 그 세계로 들어가 보자.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눈 먼 아비 눈을 뜨게 해준 심청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로마에는 젖을 먹여 아비를 살린 페로가 있었다. 큰 죄를 짓고 수감되어 굶어 죽을 운명에 처한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날마다 감옥에 찾아가 자진의 젖을 먹여 살렸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루벤스가 그림으로 부활시켜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a 페테르 파울 루벤스 그림, 로마의 자비(시몬과 페로)

페테르 파울 루벤스 그림, 로마의 자비(시몬과 페로) ⓒ 다섯수레

우리 의식 속에 남아 있는 인간에 대한 생각은 때로는 편견에 의해 잘못 각인되기도 한다. 말로는 인종 차별이 잘못되었다고는 하지만 무심코 지나치다 흑인과 백인을 보게 될 경우 느끼는 감정이 다른 것은 백인 중심의 시각으로 잘못 각인된 의식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도 아닌 사람을 먹는 식인종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무심결에 아프리카 오지의 야만인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오지에 살았던 인류가 아프리카에만 있었던 건 아닐진대 어째서 그런 생각이 우리 머리에 잠재되어 있을까. 누가 그런 생각을 우리에게 심어주었을까.


사람이 사람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극한의 상황이 되면 인종에 상관없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우리 역사 속에서 굶주림에 지친 백성들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발견되고 있다.

다른 나라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프랑스 군함 메두사 호가 난파된 뒤 생존한 이들이 구조된 후 죽은 동료의 주검을 뜯어 먹었다고 증언했다. 이 이야기에 충격을 받은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는 ‘메두사 호의 뗏목’이란 그림에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a 테오도르 제리코 그림, 메두사 호의 뗏목

테오도르 제리코 그림, 메두사 호의 뗏목 ⓒ 다섯수레

학살, 그리고 전쟁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학살이 자행되었다. 종교란 이름으로, 정복이란 명분으로, 국가와 민족이란 이름으로 당대에는 학살이 정당화되고 미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광기가 걷히고 나면 그 참혹했던 과거를 되돌아보며 몸서리치곤 한다. 그 광기의 역사를 화가들은 역사화를 통해 소름끼치도록 생생하게 되살려 놓고 있다.

1882년 그리스의 독립 전쟁 당시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학살당하는 키오스 섬 주민들을 들라크루아는 그림으로 남겨 놓았다. 약탈과 방화, 진압과 처형 장면, 그리고 처형을 기다리는 포로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a 외젠 들라크루아 그림, 키오스 섬의 학살

외젠 들라크루아 그림, 키오스 섬의 학살 ⓒ 다섯수레

전쟁은 수많은 인간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한다. 부패하고 욕심 많은 정치인들에 의해 일어나는 전쟁은 부풀린 애국심으로 꽃다운 젊은이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사랑하는 아들과 손자를 잃은 게테 콜피츠는 죽는 날까지 전쟁과 정치적 억압에 반대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의 그림을 보면 금방이라도 그의 처절한 외침이 들려올 것만 같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평화롭게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도 학살도 없는 사회, 억압도 수탈도 없는 사회, 소박하지만 소중한 인간의 꿈과 희망이 살아있는 사회를 위해 혼신의 힘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a 케테 콜피츠 그림, 전쟁은 이제 그만

케테 콜피츠 그림, 전쟁은 이제 그만 ⓒ 다섯수레

덧붙이는 글 |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이주헌의 주제별 그림읽기 중에서 역사화에 대한 책입니다. 풍경화를 주제로 한 <아름다운 풍경화에 뭐가 숨어 있을까>, <신비로운 인물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가 더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이주헌의 주제별 그림읽기 중에서 역사화에 대한 책입니다. 풍경화를 주제로 한 <아름다운 풍경화에 뭐가 숨어 있을까>, <신비로운 인물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가 더 있습니다.

생생한 역사화에 뭐가 담겨 있을까 - 역사화

이주헌 지음,
다섯수레,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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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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