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무엇으로 사는가?

[서평] 데이비드 에드워즈&데이비드 크롬웰, <미디어렌즈>

등록 2007.04.18 14:57수정 2007.04.1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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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사랑"이라고 대답했다. 조금은 이상론처럼 들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전쟁, 핵무기, 환경파괴, 사회적 소외 등과 같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인류를 구원할 원동력은 역시 사랑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미디어(언론매체, 대중매체)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경우처럼 형이상학 또는 이상론에 가까운 대답을 할 것인가? 이를테면 사회정의, 인류 평화, 객관성, 중립적 태도 등과 같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미디어가 사는 방법은 결코 형이상학적이지도 않고, 이상론과도 거리가 멀다. "미디어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답은 바로 "자본(돈)"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광고" 되겠다.

알고 보면 미디어처럼 세속적이고 자본주의적인 것도 없다. 흔히 사람들은 미디어가 사회정의나 인류 평화 같은 거창한 이상을 추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착각일 뿐이다. 미디어가 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돈"이다. 오늘날 대다수 미디어기업들은 돈을 벌기 위해 설립한 기업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만약 어떤 신문사가 별다른 수입을 거두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두말할 것도 없이 그 회사의 신문은 시장논리에 따라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도태될 것이다.

"신문의 제작비용을 대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광고를 끌어들이고 유지해야만 한다. 만약 광고가 없다면 신문 값은 하늘로 치솟을 것이고 그것은 시장에서의 퇴출을 의미한다. 영국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하는 대중지인 <가디언>과 <옵서버> 그리고 <인디펜던트> 역시 전체 수입의 75퍼센트 이상을 광고에 의존하고 있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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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얼미디어

이처럼 미디어는 자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고, 미디어 그 자체가 자본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미디어를 일컬어 "언론자본"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주류미디어가 주로 누구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선 거대기업들이 광고를 이용해 언론사를 관리, 통제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미디어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100년 전엔 대중을 계도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미디어의 역할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자본가들이 미디어를 장악하고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선전시스템으로 활용하면서 미디어의 기능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하여 오늘날 미디어는 더 이상 중립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 비유하자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고양이가 생선을 먹지 않고 신선하게 관리하길 바라는 것이 무리인 것처럼 자본(거대기업)에 미디어를 맡기고 객관성, 중립성, 도덕성을 담보하길 바라는 것 역시 무리다.


1900년 이전에는 미국에 존재하지 않던 공식적인 저널리즘 스쿨 교육을 강화함으로써 부유한 소유주는 교육을 받은 에디터들이 소유주나 광고주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닌 그들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전문적인 편집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미디어기업의 소유주들은 자신들의 미디어 독점을 공동체에 대한 중립적인 봉사라고 떠들어 댈 수 있었다. 그러나 맥체스니에 의하면 이러한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본문 중에서)


이라크와 북한에 대한 접근 방식의 유사성

데이비드 에드워즈 & 데이비드 크롬웰의 <미디어렌즈>는 세계적인 탐사저널리스트 존 필저가 "저널리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극찬한 책이다. 적어도 주류미디어의 본질을 파헤치는 측면에선 노엄 촘스키와 에드워드 허먼의 역작 <여론조작 : 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와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인 '미디어렌즈'는 데이비드 에드워즈와 데이비드 크롬웰이 공동 설립한 세계적인 미디어비평 그룹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언론에 가려진 진실을 파헤치는 일이다.

그들은 이 책에서도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여론조작을 일삼는 주류미디어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동티모르, 아이티, 중앙아메리카, 지구온난화 등과 같은 굵직굵직한 사례들을 동원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이라크 전쟁에 관한 부분을 읽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만약 당신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2~4장에 걸쳐 언급되는 이라크 관련 부분을 주의 깊게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라크"란 단어를 "북한"이란 단어로, "사담 후세인"을 "김정일"로 바꿔서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그러면 당신은 이라크와 북한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주류미디어와 전쟁을 주도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라크"를 "북한"으로, "사담 후세인"을 "김정일"로 교체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만큼 쉽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얘긴 아니다. 동북아 정세와 중동 정세는 엄연히 서로 다른 메커니즘 속에서 작동하므로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미국 정부와 주류미디어의 이라크에 대한 접근 방식을 보면 북한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사담 후세인만 제거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얘기한다든지, 두 차례의 전쟁과 경제제재(이 책은 경제제재를 "은폐된 학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로 이라크인들에게 인종 말살적인 피해를 입혀 놓고도 무책임한 변명으로 일관하며 모든 책임을 사담 후세인에게 돌린다든지,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여론 조작과 데이터 조작을 서슴지 않는다든지….

김정일과 사담 후세인이 독재를 일삼는 한 그들을 지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에서 알 수 있듯이 때론 한 명의 독재자보다, 교묘하고 은밀하게 여론과 데이터 조작을 일삼는 주류미디어와 권력집단이 더 무섭고 끔찍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각종 미디어들이 쉬지 않고 작동하고 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객관적 저널리즘' '중립성' '도덕성' 등을 추구하는 척하면서 그 이면에선 여론 조작, 데이터 조작, 기업 홍보, 권력 추구, 광고 끌어오기 등에 몰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을 한 순간도 놓치지 말고 감시, 견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만이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영혼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때 만약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하다면 데이비드 에드워즈와 데이비드 크롬웰의 <미디어렌즈>, 노엄 촘스키와 에드워드 허먼의 <여론조작 : 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 등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데이비드 에드워즈 & 데이비드 크롬웰, <미디어렌즈>, 한얼미디어, 2006, 복진선 옮김.
415쪽. 가격 18,000원.

덧붙이는 글 데이비드 에드워즈 & 데이비드 크롬웰, <미디어렌즈>, 한얼미디어, 2006, 복진선 옮김.
415쪽. 가격 18,000원.

미디어렌즈 - 언론에 가려진 진실을 읽는 코드

데이비드 에드워즈.데이비드 크롬웰 지음, 복진선 옮김,
한얼미디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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