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체결되면 양극화 해소?
정부는 정치경제 소양부터 갖춰라

[기고] 백종국 경상대학교 교수

등록 2007.04.19 21:01수정 2007.04.2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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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오마이뉴스 권우성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는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을 정당화하는 글로 가득 차 있고 또 이 글들은 사회의 여론주도층에게 전자우편으로 송부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정책을 주도하는 정부로서 이 문제에 관한 심도있는 연구와 함께 이 협정의 타당성에 대한 신념이 있었을 터이고 또한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계는 있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해당 정책에 유리한 발언을 게재하거나 설명을 곁들이는 것은 좋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주장이나 무리한 논지로 해당 정책을 정당화하는 태도는 심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정책은 장단점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태도이고 국민을 오도하는 행위이다. 그 정책의 진실성조차 의심케 하는 행동이다.

가장 두드러진 예를 들자면 "한미FTA는 양극화 해소의 기회"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한미FTA는 수출과 투자 증대를 초래하고 이는 중소기업 등에서 일자리 창출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양극화의 최대 주범은 실업이므로 일자리가 창출되면 양극화도 해소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치경제학적 소양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처럼 단순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 논리의 매 단계마다 다양한 전제가 필요하고 각 사례에 대한 경험적 검증도 이 주장을 지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미FTA이 양극화 해소라고 주장하는 이 글의 첫머리에 벌써 "산업연구원의 실증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개방과 양극화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체결지원위원회'가 인용한 삼성경제연구소의 추산을 보면 표준 양극화지수에서 자유무역의 기수격인 미국의 양극화 현상이 현재의 우리보다 훨씬 심하다.


도리어 역사상 많은 경우에 약소국의 무분별한 자유무역은 현실에서 극단적 양극화 혹은 내부식민지 현상을 초래하였다. 양극화 해소는 자유무역협정 체결이 아니라 이 협정체결이 초래할 양극화를 완화시키려는 노력에 의해 가능하다.

정부는 이러한 노력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다국적기업의 대정부 제소권 보장이 이러한 노력에 걸림돌로 작용될 수 있다. 예컨대, 현재 정부가 강조하는 협정이후의 119조원 농업지원정책이 내국민대우를 주장할 다국적농산품회사들의 이익과 충돌할지 안할 지는 구체적인 협정 문안을 검토해 보아야 알 일이다.


정부의 '양극화 해소' 주장, 정치경제학적 소양도 없다

우리의 지난 성장이 마치 개방의 산물인양 호도하는 주장들이 정부의 문서들에 자주 발견되고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세계은행의 일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던 바이다.

다른 토론은 차지하고라도, 우리 체제가 그토록 개방되어있다면 무엇하려 이처럼 과격한 개방이 또 필요한가?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정부의 자료에서라면 최소한 앞뒤의 논리라도 맞는 주장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한미FTA의 체결을 복음인양 찬양하는 자들이나, 이의 체결 자체가 비극인 것처럼 선전하는 자들이나 다 국민을 호도하는 자들이다. 진실은 자유무역협정의 체결 자체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자유무역협정이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 협정의 정확한 내용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공정하게 말해서 이 문제에 좀 더 책임을 져야할 자는 이 협정을 복음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추진하는 자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이 논쟁에서 먼저 주먹을 내민 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FTA가 그 자체로 선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의 이익이 증진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체결하려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정치지형은 이 점에서 매우 뒤틀려있다.

청와대의 문서가 지적하듯이, 수구파들은 이 협정을 친미와 반공의 또 다른 상징으로 여기고 있고 급진파들은 이 협정을 매국의 상징처럼 호도하고 있다. 이러한 뒤틀림은 이 문제 자체의 진실 보다 차기 정권을 누가 장악할 것이냐 하는 권력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해당 정파의 이익에 논의의 초점이 있다.

진정한 핵심은 자유무역협정을 할 것이나 말 것이냐가 아니라 그 협정이 어떤 종류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일반적 외교 관계를 체결할 때 평등한 협정이 될 것이냐 불평등한 협정이 될 것이냐 하는 것과 같다. 을사보호조약처럼 강제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이익 계산은 매우 중요하다. 대체적으로 불이익이라는 판단이 서면 취소하거나 중단하는 게 옳다. 이 판단이야말로 대통령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두는 게 민주국가의 기본이다. 정부가 주도한 국제협정을 국회가 비준을 거부하여 무산시키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신인도가 낮아지지는 않는다.

김종훈 한미FTA수석대표이 4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종훈 한미FTA수석대표이 4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미FTA를 보는 시각이 뒤틀린 이유... 대선과 맞닿아있기 때문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협정체결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이다. 체결 과정에서 전략상 자세한 사항을 공개하긴 힘들었겠지만 이제는 국민적 합의를 통한 국회비준을 받아야할 때이므로 당연히 협정 전문을 공개해야 한다.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발췌한 소개는 정당하지 못하다. 방대한 협정문을 비전문가들이 대다수인 국회의원들에게만 개방한다는 태도도 매우 의심스러운 일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협정을 통과시키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협정 비준이 좀 늦어지더라도 협정 전문을 공개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하는 게 모두를 위해 좋다.

총리를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이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협정 전문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혹자는 국제적으로 협정 문안들이 공개된 적이 없다거나 상대국과의 약속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타당치 않다. 협정작성 과정에서는 협상전략이므로 공개할 수 없고, 협상초안이 작성되고 난 후에는 국제적 관례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면 국민은 오로지 몇몇 통상관료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라는 주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타 민주적 국가와 달리 우리는 협상 착수 이전에 충분히 토론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비준 과정에 있어서라도 투명한 토론이 필요하다.

이러한 투명성을 기초로 한 국민적 토론을 거치고 난 후에 이루어지는 국회비준이 아니라면 노무현 정부는 정략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야당 혹은 일부 계층과 야합하였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된다. 설사 대통령의 순수한 의지와 결단이 기초라 할지라도 이 과정은 필요하다. 이 나라는 대통령 혼자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1997년의 외환위기를 통해 이 점에 대해 충분히 학습한 바 있다. '부산지역의 삼성자동차 캠페인-나이키 사건-세계화 선언-외환위기'로 이어지는 김영삼 정부의 허무한 에피소드는 개방만이 최선이라고 부르짖던 대책 없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의 지지를 받았었다. 문제는 이 이데올로기적이고 독선적인 리더십으로 인해 온 국민이 파멸적 고통을 맛보았다는 점이다. 동일한 실패를 노무현 정부가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협정에 반대하는 입장에 선 사람들도 민주시민의 교양을 지켜야 한다. 현 정부는 합법적 절차를 거쳐 선출된 정통성 있는 정부이다. 그러므로 반대를 하는 일에 있어서도 법적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예컨대 과거처럼 토론장을 물리적으로 봉쇄하고 이 일이 성공했다고 만세를 부르는 행위는 민주주의와 자신들의 이익을 해치는 태도이다. 이들이 무질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무질서한 사회가 되면 언제나 강자들이 일방적 이익을 얻게 마련이다. 사회적 약자들일수록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가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한미FTA 저지 범국본 주최로 열렸다.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가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한미FTA 저지 범국본 주최로 열렸다.오마이뉴스 권우성

투명한 한미FTA 협정 문안 공개 시급히 이뤄져야

간곡히 당부하건대 정부 자신이 자유무역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다. 자유무역이 미래의 추세이기 때문에 무조건 참여해야한다는 주장은 국가이익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 당국자가 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다.

자유무역에 참여하면 모두가 이익을 얻게 된다는 믿음은 마치 공산주의 체제를 이룩하면 계급없는 사회가 나타난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이고 오도된 이데올로기이다.

공산주의가 전위정당에 걸려 넘어진 것처럼, 자유무역주의도 주권에 걸려 넘어지게 되어있다. 만일 어떤 종류의 자유무역이 있어서 상품이나 서비스뿐만 아니라 노동까지 자유롭게 교환하게 된다면 이 자유무역의 이상은 달성된다.

그러나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주권의 소멸을 상정하는 것이다. 주권의 소멸에 기초를 둔 자유무역을 상정하는 것은 매개의 변증법을 극복한 공산당을 상정하는 것만큼이나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멕시코와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미국이 멕시코와의 국경지대에 1130㎞ 길이의 새로운 장벽을 쌓고 있는 현실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도덕적 인간들로 구성된 비도덕적 사회라는 모순은 아마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인간들이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한미FTA에 대한 절차적 해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일단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적 논의를 거치고, 법적 절차를 거쳐, 어느 쪽이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면 된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물론 합리적 설득이 불가능한 이데올로그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적 합의가 달성되면 이들의 반대는 관용할만한 다양성으로 남게 된다. 정부 자신은 최대한 이데올로기적 태도를 배제하고 왜 이것이 국가이익에 부합되는 지만을 최선을 다해 합리적으로 설명하면 된다. 정부의 보다 건전하고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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