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오마이뉴스 권우성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는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을 정당화하는 글로 가득 차 있고 또 이 글들은 사회의 여론주도층에게 전자우편으로 송부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정책을 주도하는 정부로서 이 문제에 관한 심도있는 연구와 함께 이 협정의 타당성에 대한 신념이 있었을 터이고 또한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계는 있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해당 정책에 유리한 발언을 게재하거나 설명을 곁들이는 것은 좋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주장이나 무리한 논지로 해당 정책을 정당화하는 태도는 심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정책은 장단점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태도이고 국민을 오도하는 행위이다. 그 정책의 진실성조차 의심케 하는 행동이다.
가장 두드러진 예를 들자면 "한미FTA는 양극화 해소의 기회"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한미FTA는 수출과 투자 증대를 초래하고 이는 중소기업 등에서 일자리 창출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양극화의 최대 주범은 실업이므로 일자리가 창출되면 양극화도 해소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치경제학적 소양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처럼 단순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 논리의 매 단계마다 다양한 전제가 필요하고 각 사례에 대한 경험적 검증도 이 주장을 지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미FTA이 양극화 해소라고 주장하는 이 글의 첫머리에 벌써 "산업연구원의 실증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개방과 양극화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체결지원위원회'가 인용한 삼성경제연구소의 추산을 보면 표준 양극화지수에서 자유무역의 기수격인 미국의 양극화 현상이 현재의 우리보다 훨씬 심하다.
도리어 역사상 많은 경우에 약소국의 무분별한 자유무역은 현실에서 극단적 양극화 혹은 내부식민지 현상을 초래하였다. 양극화 해소는 자유무역협정 체결이 아니라 이 협정체결이 초래할 양극화를 완화시키려는 노력에 의해 가능하다.
정부는 이러한 노력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다국적기업의 대정부 제소권 보장이 이러한 노력에 걸림돌로 작용될 수 있다. 예컨대, 현재 정부가 강조하는 협정이후의 119조원 농업지원정책이 내국민대우를 주장할 다국적농산품회사들의 이익과 충돌할지 안할 지는 구체적인 협정 문안을 검토해 보아야 알 일이다.
정부의 '양극화 해소' 주장, 정치경제학적 소양도 없다
우리의 지난 성장이 마치 개방의 산물인양 호도하는 주장들이 정부의 문서들에 자주 발견되고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세계은행의 일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던 바이다.
다른 토론은 차지하고라도, 우리 체제가 그토록 개방되어있다면 무엇하려 이처럼 과격한 개방이 또 필요한가?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정부의 자료에서라면 최소한 앞뒤의 논리라도 맞는 주장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한미FTA의 체결을 복음인양 찬양하는 자들이나, 이의 체결 자체가 비극인 것처럼 선전하는 자들이나 다 국민을 호도하는 자들이다. 진실은 자유무역협정의 체결 자체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자유무역협정이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 협정의 정확한 내용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공정하게 말해서 이 문제에 좀 더 책임을 져야할 자는 이 협정을 복음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추진하는 자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이 논쟁에서 먼저 주먹을 내민 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FTA가 그 자체로 선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의 이익이 증진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체결하려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정치지형은 이 점에서 매우 뒤틀려있다.
청와대의 문서가 지적하듯이, 수구파들은 이 협정을 친미와 반공의 또 다른 상징으로 여기고 있고 급진파들은 이 협정을 매국의 상징처럼 호도하고 있다. 이러한 뒤틀림은 이 문제 자체의 진실 보다 차기 정권을 누가 장악할 것이냐 하는 권력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해당 정파의 이익에 논의의 초점이 있다.
진정한 핵심은 자유무역협정을 할 것이나 말 것이냐가 아니라 그 협정이 어떤 종류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일반적 외교 관계를 체결할 때 평등한 협정이 될 것이냐 불평등한 협정이 될 것이냐 하는 것과 같다. 을사보호조약처럼 강제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이익 계산은 매우 중요하다. 대체적으로 불이익이라는 판단이 서면 취소하거나 중단하는 게 옳다. 이 판단이야말로 대통령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두는 게 민주국가의 기본이다. 정부가 주도한 국제협정을 국회가 비준을 거부하여 무산시키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신인도가 낮아지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