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77회

등록 2007.04.19 08:11수정 2007.04.1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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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주의 명을 받고 그것을 충실히 이행할 인물이라면 보주의 오랜 충복인 바로 무적신창 좌등을 말함이다.

"그렇지 않아도 좌등은 일단 손을 봐야해."


"또한 함곡과 풍철한을 내세워 적절하게 이용을 하고 있느니만큼 그 쪽도 적당히 손을 써 놓은 게 중요합니다. 문제는 우리 손으로 하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아봐."

"지금 태감께서 생각하시는 대로 한꺼번에 터트리면 효과적일 것입니다."

추태감은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차피 결론은 이미 내렸다. 다만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상대보다 더욱 빠르게 보다 복잡하게 헝클어 놓으면 더욱 효과적이라는 말인가?"


"물론입니다."

추태감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는 은근한 목소리로 중의의 의견을 구했다.


"중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결론을 다 내놓고 이제 와서 자기보고 어쩌란 말인가? 중의는 한편으로 마음이 불편했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빙그레 웃었다.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책 같소이다. 다만…."

추태감은 중의가 흔쾌히 동의하자 고개를 끄떡였다. 만족한 미소가 떠올리며 눈을 슬쩍 치켜 올렸다.

"다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한 명을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되오."

중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나가는 말투였지만 추태감의 얼굴에는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과 함께 호기심을 나타냈다. 추태감은 중의를 진정으로 인정하는 인물 중의 하나였다. 그의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있는 몇 명 안 되는 인물 중의 하나였다.

더구나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이렇듯 지나가는 말투로 툭 던지는 중의의 말이 매우 중요하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오랜 동안 생각한 사실일수록 이런 투로 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속하시지요."

추태감이 의자에서 등을 떼고 중의 쪽으로 약간 상체를 기울이자 중의가 부담스러운지 헛기침을 했다.

"허험… 운중보가 세워졌을 때부터 이곳에 있었던 인물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거의 없소. 허나 좌등 하나뿐이 아니오. 이곳을 직접 설계하고 건축한 인물이 아직도 이곳에 있고, 좌등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소."

"귀산…?"

상만천에게도 귀산노인을 만나보라고 말해주었다. 외부에서 들어 온 사람들은 귀산노인이 얼마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인지 모른다. 운중보 내의 일이라면 운중보의 실질적인 대소사를 관장했던 철담보다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 귀산노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소. 귀산노인은 아마 이 모든 일을 누가 벌이고 있는지 알고 있을 거요. 그가 모른다고 한다면 아마 그 역시 흉수에게 동조하고 있을지 모르오."

단정적인 말이었고, 듣기에 따라서는 약간은 귀산노인을 불러 만나지 않았던 추태감의 태도를 탓하는 듯한 말이었지만 추태감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중의는 귀산노인의 가치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고개를 돌려 천과를 보았다.

"왜 귀산을 부르지 않았지?"

"귀산노인은 운중보가 세워지기 전… 구룡과 친분이 있었다고 알려졌던 인물입니다. 그 노인은 불러 물어봐도 올바른 대답을 하지 않으리란 생각에 배제시켰습니다. 어차피 회유하거나 아니면 강압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입을 열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이는 것이 좋을 것이란 생각 때문입니다."

중의는 천과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그의 우려와는 다르게 천과는 이미 귀산노인에 대해 계산을 하고 있었다. 역시 삼재다. 그들이 가진 세 개의 두뇌는 아무리 똑똑한 사람의 두뇌 하나 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었고, 가장 적절한 판단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중의는 여전히 마음 속에서 갈등을 하고 있었다. 일을 완벽하게 진행하려면 자신의 속내를 모두 털어놓아야 하는데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능효봉과 설중행의 내력에 대해 말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능효봉의 위협이 그의 입을 닫게 만들고 있었다.

"천과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시오?"

추태감이 중의를 쳐다보았다. 자신은 간과했지만 삼재가 파악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중의 역시 고개를 끄떡였다. 그 점에는 안심이 되었지만 중요한 변수는 여전히 남아있다. 허나 그는 일단 보류하기로 마음먹었다.

"삼재는 귀산노인을 만나본 적도 없을 터인데 그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구려. 기우였는가 보오."

"허헛헛… 이런 일은 신중할수록 좋은 법이지요."

추태감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천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좋아… 더 이상 시간 끌 필요는 없겠지. 홍교란 년에 대한 손은 써놓았지?"

"손번(巽幡)이 저녁을 들고 나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손(巽)은 팔괘 중 바람(風)을 의미한다. 신체로 보면 다리(脚)에 해당하므로 팔번(八幡) 중 가장 빠른 인물일 것이다.

"빼 내와야 해. 그 년이 뭔가 알고 있을 것이야…."

추태감의 못마땅한 시선이 경후에게 향했다. 그 눈빛은 그런 계집까지도 빼앗겨 이리 귀찮은 일을 만드느냐는 책망의 기색이 서려있어 경후는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더 이상 탓하는 말 대신 지시를 내렸다.

"경첩형… 자네는 그 두 녀석 있지 않은가? 함곡 일행에 합류해 있다는 비영조 조장 두 놈 말이야…."

"능효봉과 설중행이란 자입니다."

과연 추태감이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 비중은 다를지라도 자신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슬쩍 흘려…. 철기문에 말이야…. 옥청문 그 자도 들어와 있으니 가만있지 않을 게야…. 그리고 혈간을 시해하도록 그들에게 지시를 내린 사람은 죽은 신태감인 듯하다고…. 애매모호하게 흘리는 것도 잊지 말고…. 신태감이 본관의 내심을 잘못 파악해 독단적으로 일을 벌였다는 듯 하란 말이야.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고 예도 갖추고…."

경후가 직접 가보란 소리다. 이 자리에서야 고양이 앞의 쥐 꼴이지만 첩형의 지위는 일개 문파의 문주가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감히 마주 쳐다볼 지위가 아니다. 말의 무게도 웬만한 관리보다 훨씬 묵직하다.

"그들에 대해서는 좀 신중히…."

중의의 입에서 무의식중에 말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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