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불어오는 바람에 유채꽃은 넘실거리고

등록 2007.04.19 13:23수정 2007.04.1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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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자

어제(18일),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대전 대동천변에 피어난 유채꽃들을 보았습니다. 유채꽃 때문에 늘 지저분하게 보이던 도심이 갑자기 한 폭의 수채화로 변해 있더군요.


거리마다 가득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지고 난 후 봄이 다 지나가버리기라도 한 듯 허전해하던 차였는데, 천변 양쪽 둔치를 꽉 채운 유채꽃들은 그런 제 마음에 왠지 모를 보상심리 같은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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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자

제가 유채라는 걸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 광주로 시집간 고모네 집에 놀러 갔을 때였습니다. 점심이 되자 이상한 맛이 나는 김치가 나왔습니다. 생긴 것은 열무 같은데 막상 맛을 보면 열무가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획 '땡기는' 맛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고모에게 물었더니 그것은 유채로 담은 김치라고 알려주더군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본격적인 김칫거리가 나오기 전인 5, 6월에는 무나 배추값이 아주 비쌌습니다. 그래서 배추꽃 같은 꽃을 달고 있는 유채를 비싼 배추나 열무 대신 김치를 담가 먹었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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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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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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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자

기다랗게 펼쳐진 유채꽃밭 옆에서 머리가 허연 할머니께서 나물을 캐고 계십니다. 할머니께선 저녁 반찬거리로 쓸만한 나물을 캐고 계신 걸까요? 아니면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따분해 심심풀이 삼아 나물을 캐고 계신 걸까요?


바람이 불자 유채꽃이 이리저리 쏠립니다. 할머니의 흰 머리칼이 노란 유채꽃에 휘덮입니다. 유채꽃은 꽤 발랄한 꽃입니다. 마치 노란 옷을 걸친 아동 같습니다. 유채꽃이 마치 나물 캐러 나온 할머니를 따라 마실 나온 덩치 큰 손자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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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자

끝없이 펼쳐진 유채꽃밭은 우리에게 암묵적으로 평화란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 줍니다.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다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무한한 동경을 불러 일으킵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뭔가를 받아들인다는 것과 내가 객체가 되어 거기에 동화된다는 것. 용인하고 용납한다는 것은 얼마나 너그러운 일인지요? 유채꽃과 할머니가 이루는 풍경이 무척 평화롭습니다. 유채꽃은 할머니가 곁에 계셔서 더욱 생생한 풍경을 보여주고 할머니께선 유채꽃이 곁에 있어 덜 심심하신 듯합니다.

풍경이 사람을 받아들이고 사람은 기꺼이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혼혈'을 바라보노라면 뭔가 모르게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평화스러운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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