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힘없는 사람 위해 데모했다"

[목사가 만난 교무] 원불교 서울외국인센터소장 최서연 교무

등록 2007.04.24 10:13수정 2007.07.08 19:40
0
원고료로 응원
사제, 목사, 불자인 시민기자가 타 종교 성직자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종교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기사를 통해 타 종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종교의 진정한 의미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고기복 시민기자(목사·용인이주노동자쉼터대표)가 원불교 서울외국인센터 소장인 최서연 교무를 만나 이주노동자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주>
a 환하게 웃는 최서연 교무

환하게 웃는 최서연 교무 ⓒ 고기복


최서연 교무는?

최서연 교무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아주대 화학공학과 장학생으로 진학한 그는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해 석사를 취득했으며, 포항공대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키스트 연구원 시절 불교 동아리 활동을 했던 그는 원불교 경전을 접하면서 개종을 결심했다. 특히 순수성을 상실한 과학에 실망감을 느끼던 그는 원불교대학인 영산 선학대를 졸업한 뒤 입교한다. 그 뒤 원불교 교도가 된 후 99년 출가를 하여 가톨릭 신부, 개신교 목사에 해당하는 교무가 되었다.

최 교무가 소장으로 있는 서울 강서구 화곡7동에 위치한 원불교 서울외국인센터는 돌아가신 최 교무의 부친이 직접 지은 3층짜리 건물이다. 어머니 이진임(72)씨는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을 하는 딸을 위해 이 건물을 내주었다.

최 교무는 건물 1층을 외국인센터이자 원불교 교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주노동자를 위한 컴퓨터 교실과 한국어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원불교 서울외국인센터 소장 최서연(50) 교무의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이고 여동생은 수녀다. 종교 간의 벽 혹은 갈등 가능성? 전혀 없다. 어머니와 여동생 수녀는 최 교무의 후원자이며 동역자이다. 종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비와 나눔, 사랑과 헌신을 실천하는 데는 동지일 뿐이다.

이주노동자 지원운동을 하는 목사인 나에게 그는 큰누님 같은 동역자다. 17일 저녁 그와의 만남은 인터뷰라기보다는 오랜 지인을 만나 즐거움을 나눈 대화의 시간이었다. 그는 이주노동자쉼터를 운영하는 기자에게 쉼터 식구들 몫이라며 쌀 한 포대와 고추장, 딸기잼까지 챙겨주었다. 사랑과 자비를 함께 나누며 나눔을 솔선하는 동행의 길에 종교 간 벽은 이미 허물어진지 오래다.


그는 이주노동운동가이자 환경운동가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고 믿는 그는 운동가이기 이전에 성직자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을 섬기며 살면서도 그 수고를 자랑치 않고 오히려 많은 분들의 보살핌으로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며 선하게 웃는다.

다음은 최서연 교무와 일문일답.

- 성직자가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키스트(KIST)에서 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포항공대에서 화학공학(공정제어, 컴퓨터 컨트롤)을 전공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어려서부터 과학을 좋아해서 과학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여겨 재미있게 공부했거든요.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과학이 세상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만들어 가는 경우가 많다는 데 의문을 품었어요.

과학이 세상에 유익을 주지 못하는 부분을 확인하던 순간 과학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더군요. 자본 논리에 의해 과학의 순수성이 상실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회의가 들었고 다른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때 짐 싸들고 학교를 나와 원불교학교인 영산 선학대에 입학했습니다. 그렇게 원불교에 귀의한 지 16년이 돼 가네요."

교무 언니, 수녀 동생... 그들은 동지


- 공학 박사의 길을 마다하고 교무가 되겠다고 했을 때 가족의 반대가 심했을 것 같습니다.
"원불교 교무가 되길 작정하고 무작정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가족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어요. 가족과 인연을 끊더라도 갈 길을 가야겠다고 각오를 하고 나섰던 것이죠. 그런데 정작 대학에서 저를 가르치시던 분들은 '부모의 한을 풀지 못하고, 어떻게 대종사(원불교 창시자)의 가르침을 베풀 것인가, 출가함을 통해 가족을 살펴야 한다'고 하셨어요. 많은 분들이 저를 살펴줘서 지금의 내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그래서 제가 좀 변했어요. 우리 집(원불교외국인노동자센터)엔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와 제가 살고 있는데, 제가 원불교 교무가 된 후 서로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혼자 똑똑해서 부모님을 무시했는데, 이젠 그렇지 않으니 어머님이나 다른 가족이 편안해하셔요."


- 채식주의자로 알고 있는데, 신앙 때문에 육식을 하지 않는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육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해요. 밖에서 먹는 음식으로 탈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되었거든요. 원불교는 먹는 음식에 대해 무엇이든지 감사함으로 먹으면 된다고 가르칩니다."

a 코리안드림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생명을 잃은 이주노동자를 위한 천도재. 우측 끝이 최서연 교무. (자료사진)

코리안드림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생명을 잃은 이주노동자를 위한 천도재. 우측 끝이 최서연 교무. (자료사진) ⓒ 최서연 교무

-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교무가 된 후 스리랑카로 갈 계획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출국하기 전에 스리랑카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좋다 여겨, 스리랑카 대사관을 찾아갔죠. 그 때 독립문에서 포교활동을 하는 스리랑카 스님들과 이주노동자들을 처음 만났어요.

그들과 첫 만남 이후, 5000명이 넘는 스리랑카인들이 한국에 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한국어교재를 들고 다니면서 이주노동자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죠. 당시 스리랑카에선 내전이 극심해서 출국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국내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 이주노동자 지원에 대한 원불교 내부의 시각은 어떤가요?
"원불교는 교단에서 '이걸 해라!'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뭘 아니까 해 보겠다고 하면 '그래 해 봐라!'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개신교에 비해 관심이 부족하지요. 개신교에선 이방인에 대한 개념이 있고, 그들을 돌보라고 하니까 많이들 하시잖아요. 그런데, 원불교에선 많이 하지는 않았는데 최근 지방의 교당 차원에서 이주여성들을 지원하는 분들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 이주여성들이 결혼해서 지방에 많이 사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네요.
"그런 셈이죠."

"노동운동과 종교단체,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죠"

-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종교기관 중심의 이주노동자 지원운동단체를 분파적, 개량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두가 자기 입장과 같길 원하는 것은 이상이죠. 현실적으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봐요. 성향이 다른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 속에서 주도권을 잡겠다고 하는 것은 허망한 거 아닌가요?"

- 노동운동단체와 종교단체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이라고 보세요?
"이주노동자 지원은 끊임없이 해야 할 일입니다. 시일을 정해서 끝낼 일이 아니잖아요. 결국 종교가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노동운동을 하시는 분들은 마음이 부해져야 한다고 봐요. (가진 자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것보다는 가진 자를 (자기) 편으로 만들어서 일하는 것이 좋지 않나요? 상대방을 미워하는 태도는 (운동을 함에 있어서) 오래 가지 못하거든요. 종교인들은 그들을 다독거리고 이해해야 합니다."

-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이주여성들이 의사소통 혹은 문화차이에 의한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이주여성과 한국 시댁, 양측의 입장을 들어보고 나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언어도 잘 통하지 않고, 또한 이주여성이 불쌍하다고 한쪽 말만 판단하면 오류를 범하기도 쉽고 문제 풀기도 어렵습니다. 시집온 며느리가 양말 한 켤레 집어넣고 세탁기를 돌리면 어느 시어머니가 좋아하겠어요. 그래서 '다음에 세탁할 때는 옷들을 모아뒀다가 세탁해라'고 했는데, 말귀를 못 알아들은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전기세, 수도세 아깝다고) 세탁기도 못 돌리게 하는구나 생각하는 경우가 있죠."

- 그래서 한 겨울에 (찬물에) 손빨래를 하라고 한다는 말이 나오는 군요.
"TV를 소리를 크게 하고 있으면 소리 줄이라고 하겠죠."
"그러면 TV도 못 보게 한다고 하고요. (웃음)"

- 최근 정부기관과 자치단체에서 이주노동자나 이주여성을 위한 지원방안을 내놓고 있잖아요. 좀 중구난방이라고 여기는데 어떻게 보세요?
"사실 이주노동자 상담지원 같은 건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민간단체가 하는 거잖아요. 지금 정부가 내놓는 것들은 마치 쓰나미 같아요. 대책이라고 막 내놓는데 다들 생색만 내려고 하고, 뭘 하자고 해서 가보면 이주노동자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도 없어요.

가령 이주노동자 한국어대회가 있다고 해서 가보면, '대상' 받는 사람들은 한국어학당 출신 외국인들이에요. 말은 서툴지만 원고를 달달 외워 와서 상을 독식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말을 훨씬 잘하는 이주노동자는 장려상 정도 받거든요. 그 사람들에게 이주노동자는 생색용이죠."

"부처님도 모실 수 있고 십자가도 걸 수 있죠"

a 이주노동자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최서연 교무

이주노동자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최서연 교무 ⓒ 최서연 교무

- 원불교에서는 부처님상을 모시나요?
"원불교에선 그런 거 안 가려요. 처한 상황에 따라 부처님도 모실 수 있고, 십자가를 걸어 놓을 수도 있어요. 저 부처님상은 태국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거예요."

- 원불교와 불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근본은 같다고 봅니다. 깨달고 널리 실천한다는 것은 타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 어떤 종교든 평화와 사랑을 가르치는데 막상 종교의 역사와 현실을 보면 전쟁과 권력다툼(교계 내외부에서)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종교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과학도였던 입장에서 보면 종교가 이렇게 된 것은 본래 가야 할 길을 못가서 그렇다고 봐요. '돈' 때문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구분을 잃어버린 것이 과학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했거든요.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튼과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아인슈타인이 돈이나 벌려고 과학을 했겠어요? 학문이 좋아서 공부한 것이겠지요.'종교'도 마찬가지거든요. 본래 가야 할 길로 돌아가면 된다고 봅니다."

- 종교계에도 물신숭배가 팽배합니다. 신앙적 삶보다는 성공과 욕망을 부추기는 경향도 있는데 자본주의 하에서 종교는 무엇이여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상생과 생명존중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렁이를 보세요. 지렁이는 암수동체이지만, 자신의 정자를 자신이 쓰지 않아요. 다른 개체에게 전달해 주거든요. 서로 싸우지 않으면서도 지구상에서 지금껏 살았다는 것을 보며 배울 것이 있다고 보지 않으세요?"

- 성직자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예수님은 당시로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위해 데모하셨는데, 요즘 일부 성직자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성직자들이 데모를 하려면, 그건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것이어야 하겠죠."

"여자 교무는 독신이어야 된다? 처음과는 다르다"

- 개신교에서는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수님께서 배타적인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시 환경에서 나온 '나 이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 등의 말씀은 다른 사람을 배척하라는 의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나요? 그런 면에서 보면 강남대 누구죠?"

- 네, 이찬수 교수죠.
"네, 그런 분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죠."

- 갈등과 대립문제가 적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해야 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깨달음을 실천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제가 불교도에서 원불교도가 된 부분도 어쩌면 불교가 부처님 말씀과 달리 남녀 차별이 있고 실천적인 면에서 부족하기 때문이었습니다."

- 여성계는 각 종교계 성차별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원불교도 여자 교무는 독신이어야 하고, 남자는 그렇지 않은데요.
"언제부터인가 원불교 여자 교무는 독신이어야 하고, 옷매무새는 이래야 한다고 하는 것 등은 처음과 다른 것이에요. 내부적으로 그런 말들이 나오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여성안수를 주장하시는 개신교 분들의 의식에 비하면 원불교는 의식이 좀 약하다고 봅니다. 종교계에서 남녀차별은 시정되어야 합니다."

a 최서연 교무는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다. 센터 옥상에 시민발전소를 만든 그는 이 에너지를 이주노동자에게 전수하려고 애쓴다.

최서연 교무는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다. 센터 옥상에 시민발전소를 만든 그는 이 에너지를 이주노동자에게 전수하려고 애쓴다. ⓒ 최서연 교무

#이주노동자 #예수 #성직자 #인터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