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가에 놓였는 삿갓과 지팡이최삼경
누구랄 것도 없이 사는 게 개똥밭 같이 어렵던 생활에도 삿갓의 허랑방탕을 받아 밀기울이라도 한 그릇 따로이 내어주는 민중의 너그러움은 또 무엇이었을까. 또한, 그 비루한 방랑중의 통음과 허기를 받쳐주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보다 조금 이른 영정조 시절의 문체반정을 있게 한 화백, 가객, 악사 게다가 강담사(講談師)라는 이야기꾼의 출현 등 사회전체가 기존의 사장(司章)을 뛰어넘는 파격과 새로운 미학의 열풍으로 술렁이고 있었다. 민감한 삿갓의 실핏줄에도 어찌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투영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설에는 고산자 김정호와 관북 칠보산을 배경으로 하여 다산 정약용, 허균까지 언급되거나 혹은 카메오로 직접 출현한다. 작가 고은은 그간 김삿갓에 대한 몇 권의 책이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참고하지 않고 자신의 결대로 써나갈 뿐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방랑이란 그것의 실질은 낭만적이기보다 아주 힘든 노동으로서의 행위이다. 방랑정신이야말로 사람들의 심성에 잠겨 있는 현실 탈출의 오랜 향수인지 모른다’라고 방랑에 대해 헌사 하였다. 많은 반항아들 역시 이 방법을 취했으나 대부분의 재주 가진 이가 모난 돌이 되어 정을 맞는 게 관습화된 사회였다.
그렇지만 군 시절 짧은 행군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많은 훈련 중의 마무리는 대부분 행군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행군이 자신의 신체로 ‘걸음’하는 것 외에는 다른 요령이 끼일 게재가 없는 정직(?)하고 힘든 과정으로서 공인됐음을 뜻한다. 그만큼 행군은 지루하고, 힘들고, 외로운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니 일생이 행군이었을 이들의 팍팍함과 헛헛함이야 어찌 짐작이나 해 볼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영월, 정선, 태백은 내륙의 오지로 많은 접근로의 개통에도 여전히 멀리 있는 것으로 느낀다. 다분히 심리적이다. 이젠 서울에서도 두 시간 반이면 충분한 거리로 당겨져 있고 교통 배후도 좋아졌다.
유독 처녀지의 비경을 많이 간직한 영월에서 동강, 서강을 따라 걷다보면 저절로 탄성이 쏟아진다. 강의 풍광에 취할 즈음 어라연 계곡이 나온다. 어라연(魚羅淵)은 물고기의 비늘이 비단처럼 반짝이는 계곡이라는 뜻으로 단종고사와도 관련이 있다.
열길 물 속을 알기 위해서는 그 물이 깨끗해야 함이 선결조건이다.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자연환경들을 이제 좀 더 체계적으로 철저히 보전되고 개발해야 할 것이다.
김삿갓은 산천을 떠돌다가 절이나 주막, 서당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테면 그 나름의 베이스캠프 같은 것이겠는데 마땅히 비빌 데 없는 입장에서야 얼마나 반갑고 요긴할 터인가.
그가 걸은 길이며, 그가 느낀 오만갈래의 감회며, 또 그가 지은 많은 시들이 온당하게 평가받는지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고라도 평생을 길 위에서 산 도사(道師)를 이렇게 대접해서야 하는 생각이다. 그리하여 그가 강원도 양구 어디쯤에서 지었다는 ‘주막에서’를 인용하며 봄철 나물을 안주로 하여 작은 잔이나마 한 상 그득히 올리고 싶은 마음이다.
주막에서 艱飮野店
천릿길을 지팡이 하나에 맡겼으니 千里行裝付一柯
남은 엽전 일곱 푼도 오히려 많아라. 餘錢七葉尙云多
주머니 속 깊이 있으라고 다짐했건만 囊中戒爾深深在
석양 주막에서 술을 보았으니 내 어찌하랴. 野店斜陽見酒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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