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징가 닮은 태권 V, 부끄러운 한계야"

[명작후일담 ①] 김청기 감독의 < 로보트태권V >

등록 2007.04.24 18:29수정 2007.07.0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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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을 맞은 한국 애니메이션. 40년 역사 속 손꼽히는 명작의 뒷얘기를 명장에게 들어봅니다. 첫 회는 '로버트태권V' 김청기 감독이며, 다음으로 '홍길동'의 신동헌 감독을 만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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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기 감독 ⓒ 홍지연


"모두가 백안시하며 '되겠느냐' 의심하던 때, '태권브이'가 가능성을 지폈던 것, 지금 또 애니메이션 산업이 힘들 때 30년만에 다시 가능성의 불을 피웠다는 것.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해."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꿈을 옮긴 화면 속에서 다시 느끼고 싶은 것은 무얼까.

그 명백한 해답 또는 가능성을, 지난 1월 김청기 감독은 새삼스레 다시 경험했다. 마음속 '울림'을 안겨주는 애니메이션의 힘에 대해.

'로보트 태권V', 이렇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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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보트태권브이

1975년 11월, 충무공 동상이 내려다보이는 광화문 한 스튜디오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애니메이터 열서너명, 선화 담당이 너댓명 그리고 컬러링 담당이 열두엇쯤. 성인·학생을 가리지 않고 한국의 디즈니가 되겠다는 열망 하나로 그들은 '작업'을 시작했다. 세계 최초 로봇무술 애니메이션 < 로보트태권V >의 시작이었다.

애니메이터가 되지 않았더라면 기계 쪽으로 나갔을 가능성이 있었을 만큼, 기계에 대한 '로망'이 컸던 김청기 감독. 그는 당시 선풍적 인기를 누리던 '그레이트 마징가'와 같은 슈퍼로봇에 우리의 전통 무술 태권도를 도입한 조항리 원작 만화에 마음이 끌렸다.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묘하게도, 그가 자신감을 일으키게 된 것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일본 애니메이션 때문이었다.

"일본 것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어. 단지 스토리에 삽화를 이어붙인 듯한 느낌이었거든. 하지만 풀 애니메이션, 다시 말해 한 동작만이라도 리얼하게 감정과 코믹을 전달하는, 만화영화만이 갖는 맛을 살려낼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겠다 생각한 거야."

그 유려한 테크닉의 모방대상은 디즈니였다. 김 감독이 애니메이션계에 투신하게 된 계기도 1960년대 봤던 월트디즈니의 <피터팬> <백설공주>였다.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움을 얻기 위해 디즈니를 연구했다. 동작의 리얼리티를 위해 유단자를 대련시켜 필름에 캐릭터를 직접 입혔다('로토스코핑' 기법).

집을 담보로 필름값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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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당시 디자인의 한계로 그레이트 마징가와 닮을 수밖에 없었던 태권V는 후에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더해, 다시 제작됐다 ⓒ (주)로보트태권브이

의욕과 욕심이 넘치는 만큼 밤샘과 합숙도 연일 이어졌다. 본래 1만2000매면 충분했을 필름작업이 3만8000매까지 늘어났다. 필름 비용만 전체 제작비의 10% 이상을 차지했다고. 투자에 대한 개념조차 요원했던 그 때, 김 감독은 집을 잡고 돈을 구했다.

"무모했지(웃음). 그렇지만 고맙게도 함께 시작한 사람들이 누구도 빠져나가지 않고 마지막까지 함께 했어. 사실 우리 모두에겐 희망, 확신이 있었어.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프런티어가 되겠다는 공통분모가 있었거든. 힘들었지만 무모하기만 한 도전은 아니었어. 지금 이렇게 태권V가 남아 있으니까."

단순히 있는 만화스토리를 움직이게만 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드라마, 퀄리티, 전반적 스토리텔링 등 어느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쏟아 부었다.

비슷한 색감을 가진 거대 로봇물 '마징가'와 유사하다는 평가를 들을 때면 속이 상했다. 설령 베낀대도 따져들 법령마저 없던 때였지만 '작가적 양심'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그 때 난 일본 문화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했어. 만들고 보니 아류작이니 하는 여러 말이 나왔는데 그게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한계야. 실력의 한계. 실력이 있었다면 완전히 다른 모습의 로봇이 나왔겠지. 그 때 우리 디자인 실력으로는 마징가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순 없어. 색채에 대해서도 당시 블랙이 셀에 가장 잘 묻어 유용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지."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6개월 간의 고된 작업이 끝나고 이듬해 7월 24일 개봉한 태권V를 보기 위해 대한극장과 세기극장(현 서울극장)에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대한극장으로만 관객들이 밀려드는 통에 버스를 동원, 학생들을 세기극장으로 실어 나르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뜨거운 성원 속에 서울 2개 개봉관에서만 18만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기름때에 절었던 태권 V, 다시 '달려라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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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전 개봉 당시 신문 광고 ⓒ (주)로보트태권브이

복사본을 만드는 일마저 부담으로 다가오던 그 때, < 로보트태권V >도 1~3편은 모두 원판이 미국에 건너가 버리고 없었다. 겨우 한 벌 남아 영화진흥위원회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인터네가(복사본 필름)가 2003년 발견돼 부활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이왕 발견된 거 다른 버전으로 해보자는 둥 얘기들도 많았지. 하지만 되도록이면 원형 그대로를 복원하는 게 가장 큰 숙제이자 난제였어."

이미 바랠 대로 바랜 색, 비와 기름때에 절고 흠집나 아무렇게나 방치된 필름이 3년간 약 10억 원의 지원을 받아 새 옷을 입고 31년 만에 부활했다. 7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동원됐다.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이다.

"모든 건 작품이 말해주는 것이지. 재조명을 받고 많은 관객이 들었다는 건 스토리텔링, 동작의 리얼리티 등에 대한 노력이 인정받고 있다는 뜻일 거야. 그저 그 때의 환경과 수준에 맞추기만 했다면 지금 이렇게 다시 사랑받지 못했겠지. 30년 전 태권V를 봤던 관객이나 오늘날의 어린이들도 박수를 치고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단 사실, 그게 무엇보다 중요해."

태권V가 작은 기폭제가 돼 작금의 힘든 애니메이션 산업계를 일으키는 데 작게나마 일조하는 것…. 노감독의 작은 바람이다. 막대한 투자에 엄청난 홍보를 덧붙이고도 실패를 맛봐야 했던 일부 작품들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웠던가.

"기술은 좋아졌지만 연출의 힘이 부족해. 애니메이션 특유의 동작과 영화의 맛, 묘를 다 잃어버렸잖아. 동양것도 서양것도 아닌 얼치기들은 내놓지 말아야지. 관객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어. 세대의 단절 탓일까. 내 책임도 있겠지."

변방 벗어난 만화영화, 스크린 위를 날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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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트태권V는 캐릭터사상 최초로 로봇 등록증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주)로보트태권브이

애니메이션을 그저 변방의 문화, '코 묻은 세계'로 비하해버렸던 대한민국 문화계는 이제 분명 달라졌다. 문화콘텐츠가 나라를 먹여 살릴 차세대 신동력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고, 그 사실에 김 감독도 묘한 흥분을 느낀다. 무엇보다 태권V와 함께 자란 이들이 다시 자신의 자식들과 함께 극장을 찾는 모습에서 그는 희망을 발견한다.

태권V를 통해 "애니메이션은 영원하다"는 진리를 그 자신이 몸소 체험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결코 죽지 않는 캐릭터, 곁가지로 무한 확장하는 콘텐츠.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한 편의 영향력이란 이토록 위대하다.

"문화 콘텐츠를 받아들이고 있는 긍정적 시각이 있고, 문화적인 수익 창출을 할 수 있는 이때야말로 여기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놓쳐서는 안 될 때라고 생각해. 우리나라는 이야기가 풍부하고, 우리에겐 손재주와 기술력이 있잖아. 그 힘을 좋은 아이디어와 좋은 자본, 실력이 배양된 연출가가 받쳐준다면 분명히 미래는 있어."

세월은 흐르고 흘렀다. 꿈꾸던 장면을 기술이 달려 포기했던 그때도 지났다. 그래서인지 하고 싶은 것도 퍽 많아졌다. 한창 새 작품을 구상중인 김청기 감독의 눈빛은 여전히 꿈에 젖어 있다. 어른과 어린이 모두가 볼 수 있는 '고요하고 깊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낼 준비로 그는 요즘 분주하다.

"사람은 때론 무모해야 해. 도전하라는 말이야. 한 스탭씩 5년이면 충분해. '태권V' 시작할 때도 인프라·재료·투자도 없었지만, 그걸 채워줄 열정이 있었어. 생각만 말고 도전해봐. 꼭 이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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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판 애니메이션 스틸컷 ⓒ (주)로보트태권브이


'태권V' 똑 닮은 56층짜리 테마파크 온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전방위 OSMU 시작한 '태권V'

ⓒ(주)로보트태권브이
키 56m, 몸무게 1400톤, 보행속도 20~30㎞/h, 최대속력 300㎞/h, 비행속도 마하 1.2, 파워 895만㎞, 분사구 2개, 탑승인원 2명, 지상/공중/수중은 물론 우주에서도 활약하는 로봇, '로보트태권V'.

'태권V'에 대한 국내 인지도 파워는 최소 900억 원 이상의 마케팅 비용 결과와 맞먹는 것으로 종종 언급되곤 한다.

국기원으로부터 받은 공인 4단증, 산업자원부가 수여한 로봇등록증, 다시 태권V를 찾은 70만 명의 관객들. 각종 진기한 기록과 전례 없는 흥행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오르고 있는 < 로보트태권V >가 이제 그 막강한 브랜드 파워로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의 모범적 '원소스 멀티유즈'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애니메이션부터 뮤지컬, 완구, 게임까지 태권V가 간다

현재 (주)로보트태권브이는 그 준비로 여념이 없는데, 첫 번째가 2009년말께 선보일 극장용 장편 3D애니메이션이다.

로보트태권V사는 2년마다 새 시리즈를 만들어낼 계획으로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에 있다. 물론 영·유아를 타깃으로 한 TV시리즈도 함께 구상중이다. 태권V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을 계획. 다만 관절의 부드러운 느낌을 살려내는 등 디자인적 보충은 따를 것이다.

완구사업 역시 빠질 수 없다. 오는 7월 24일(31년전 최초 개봉 날짜)에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고품질의 완구와 오리지널 피겨, 최고급 레진키트 피겨 등을, 내년초 안에는 피겨형 USB와 같은 리빙 제품이 출시된다.

태권V가 나오는 게임은 어떨까. 리니지와 스타크래프트를 합친 듯한 게임은 현재 엔진 개발이 완료된 상태. 내년말쯤 테스트 게임이 시행될 예정이다.

또 과학퍼포먼스와 태권군무퍼포먼스가 결합된 대형 쇼 형식의 뮤지컬, 고급 아트북부터 유아용 학습만화에 이르는 다양한 출판물 등도 곧 선을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태권V 테마파크'다. 태권V의 모습을 꼭 빼닮은 56층 규모 도심형 비밀기지. 아직 부지조차 결정되지 않았지만 태권V의 고향이 되고자 각 지자체들의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최첨단 건축 기법으로 완성될 이곳은 헤드 부분에는 전망대가, 각층별로는 각각의 테마별 공간이 연출될 것이다. 태권V의 몸체와 똑같은 테마파크. 현실과 상상이 그대로 이어진 전혀 새로운 꿈의 공간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 New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4월 19일 (주)로버트태권브이 사무실에서 진행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 New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4월 19일 (주)로버트태권브이 사무실에서 진행했습니다.
#로보트태권V #김청기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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