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구례공공도서관 주최로 매주 목·금요일 오후에 열리는 한글교실(교사 김성현)은 동남아에서 한글에 대한 교육도 전혀 받지 못한 채 시골총각에게 시집 온 외국인여성들에게 무료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은 필리핀에서 온 여성이 아이를 안고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안현주
둘째로는, 바로 이런 일이 비단 미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개인이나 가족의 관계 방식을 결정짓는 사회적 관계가 문제의 핵심인 이상, 한국 사회도 미국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배경을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도 아이들은 조승희 이상으로 점수와 성적이 짓누르는 압박 속에 하루하루 허덕거리며 산다. 나아가 한국 사회는 이미 결혼식의 13%(약 8쌍 중 1쌍)가 국제 결혼일 정도로 다양한 국적과 민족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이미 이주노동자는 40만에 이르고, 국내 거주 '외국인'은 100만 명이라고 한다.
국제 결혼 가정까지 포함하면 이제 한국 사회도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로 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미 한국도 먼 옛날부터 이런 저런 피(오늘날의 중국·몽고·일본·유럽·미국 등지)가 섞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렇게 현실은 쏜살같이 변해 '다문화 가정'이 급증함에도, 통상적 한국인들의 의식은 아직도 '단일 민족' 신화나 '순수 혈통' 신화에 젖어 있어, 많은 사회 갈등을 스스로 초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례로, 보건복지부에서 행한 '결혼이주자 실태조사'에선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가운데 17.6%가 집단따돌림(왕따)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결혼이주자 가정은 가구 소득이 최저 생계비 이하인 가구가 50%를 넘을 정도로 사회경제적 형편은 낮은 편이라, 대부분 학원 보충이나 과외를 시키기도 어렵다.
또 설동훈 전북대 교수의 '국제결혼여성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취학 자녀를 둔 국제결혼가정 중 자녀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는 비율은 14.5%로, 우리나라 미취학 자녀의 보육시설 이용률(56.8%)에 비해 현저히 낮다. 다문화 가정의 부모조차 한국어가 서툰 경우, 아이들은 더욱 갑갑하다.
이런 현실에서 다문화 가정의 부모와 자녀 사이에 원활한 소통과 교감이 이뤄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국제결혼 자녀들, 흔히 '혼혈아'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세계적 '교육열'을 자랑하는 한국의 각급 학교에서 점수따기 경쟁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좌절을 거듭하는 경우, 제2, 제3의 조승희가 연이어 나오지 말란 법이 있을까?
한복입히기, 사물놀이 가르치기, 음식축제...
바로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한편으로는 자녀들을 그 부모의 미실현 꿈을 대신 실현해줄 대리인으로 보는 시각을 당장 중단하고, 자녀와 부모가 모두 참 행복을 찾는 삶의 주체로 서도록 격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편으로는 말로만 '다문화 가정의 정착 필요성'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국제결혼을 통한 다문화 가정이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정책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각 지자체 등에서 하는, '외국인'에게 한복 입히기나 사물놀이 가르치기, 또는 외국인 나라별 '음식 축제'나 '노래자랑' 등과 같은 일회성 이벤트가 정책의 핵심이 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이 때 이상적인 것은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앞장서서 주도하고, 정부 당국은 그 자율성을 침해 않는 범위에서 측면 지원하는, '보조성' 원리를 지키는 일이다.
우리가 취할 구체적 대안은 이런 것이다.
첫째, 이주민들을 단순한 '노동력'으로 보기 보다는 더불어 살아야 하는 '생활인'으로 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이 해외로 가면 흔히 우리는 차별을 받을까봐, 인종주의적 편견에 피해를 입을까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막상 우리 사회 안의 이주민들에 대해서는 단순한 노동력 이상의 시각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이 지구촌에서 '모두가 주인이자 모두가 손님'이라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둘째, 이주민들도 인간답게 일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삶의 주체로 대우해야 한다. 따라서 영주권이나 노동권 보장을 위한 개방적 논의를 해나가야 한다. 이주민들이 한국을 침식한다는 식으로 편협하게 볼 것이 아니라, 그들도 삶의 주체로 살면서 잘못된 제도와 문화를 함께 고쳐나가는 주체라는 개방적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이주민들은 '노동력'이 아니다,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