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노태우 정권의 최후 보루?

[단독 발굴 - 청명계획 ③] 친위쿠데타 왜 기획했나

등록 2007.04.25 18:50수정 2007.05.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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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노태우 정권 당시 국군보안사령부에서 비상계엄에 대비해 '청명계획'을 수립하고 민주인사 923명에 대해 민간인 사찰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오마이뉴스>는 1987년 6월 국민의 민주화 열기를 무위로 돌이키려 했던 군 당국의 터무니 없는 시도를 4차례로 나눠 고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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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자료사진).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1989년 노태우 정권 시절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 아래 보안사)는 비상계엄에 대비해 반정부 인사 923명을 전원 검거한다는 청명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보안사는 왜 이 같은 계획을 세웠을까. 그 배경과 지휘라인, 즉 누구의 지시로 이 같은 작전이 계획됐는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여소야대의 정치적 불안을 친위쿠데타로 타개할 수 있다고 판단해 노태우 정권이 이 같은 작전을 모의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불발탄으로 끝나버렸지만 실제 행해졌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또 한 번 뒷걸음질 쳤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노태우 정권에서 비상계엄을 통한 친위쿠데타에 성공했다면, 1987년 6월항쟁으로 분출된 한국 민주화 운동이 또 다시 지하에서 숨죽이는 상황이 됐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민주항쟁·여소야대·광주청문회, 사면초가에 몰린 노태우 정권

1987년 6월 29일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는 국민의 민주화 요구와 직선제 개헌안을 받아들이는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6ㆍ29선언은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1987년 1월)으로 촉발된 국민적 민주항쟁에 군사정권이 항복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노태우 대통령은 그 후 권력을 잡았지만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1988년 4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면이 됐기 때문이다. 13대 국회 의석 분포도를 보면 민주정의당(대표 노태우) 125석, 평화민주당(총재 김대중) 70석, 통일민주당(총재 김영삼) 59석, 신민주공화당(총재 김종필) 35석, 무소속 9석, 한겨레민주당 1석 등이다. 야권 의석을 모두 합하면 '민주정의당(125)〈 평화민주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무소속+한겨레민주당(174)' 등식이 성립한다.

이뿐 아니다.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됐지만 전국의 소요 상황은 거의 매일 발생했다. 민주항쟁이 전국적 상황으로 번진 것. 1987년 6월항쟁 분위기가 파도처럼 전국을 강타했다. 1988년 7월 13일에는 국회에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가 설치됐고, 같은 해 11월부터 '5ㆍ17 비상계엄 조치'와 '5ㆍ18 광주민주화항쟁의 최초 발포 책임자 진상규명' 등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다.

정치권과 민중운동 진영에서는 5공 부패청산과 민주화 쟁취 열기가 좀체 식지 않았다. 오히려 1989년 1월에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을 출범시켜 1987년 대선 당시 갈라졌던 민주화 세력 규합에 나섰다. 6ㆍ29선언 이후에도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이 이어졌고 정부의 탄압은 계속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반외세 자주화ㆍ반독재 민주화를 목표로 정하고 국가보안법 철폐, 노태우 정권 퇴진, 토지 공개념 도입 등을 핵심 과제로 삼아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문익환 목사 방북(1989년 3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1989년 5월), 서경원 의원 방북사건(1989년 6월), 임수경 전대협 대표의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1989년 6월) 등 굵직한 사건이 터졌다.

의문사도 연거푸 발생했다. 수배 중이던 조선대생 이철규씨가 1989년 5월 10일 오전 11시 30분 전남 광주시 청옥동 제4수원지에서 변사체로 떠올랐고, 이내창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이 거문도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국가보안법의 정치적 악용과 공안합수부 탄생

노태우 대통령으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사건들이 연발탄처럼 터진 것이다. 이때 노태우 정권은 공안정국을 조성했다. 공안정국에서 국가보안법으로 민주인사들을 대거 구속하면 들끓는 민주화 열기를 식힐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실제 당시 노태우 정권은 연거푸 터진 방북사건에 대한 수사를 강화하면서 국가보안법 적용범위를 확대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대규모 검거에 나섰다.

또한 좌익용공세력 발본색원이라는 기치 아래 1989년 4월 안기부ㆍ경찰ㆍ검찰ㆍ보안사 등 관계기관 공동으로 '공안합동수사본부(아래 공안합수부)'를 꾸렸다. 공안합수부를 통해 당시 민중운동단체와 학생운동진영을 대대적으로 수사했고, 전민련과 전대협 지도부를 상대로 대규모 검거열풍을 일으켰다.

청명계획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때가 1989년 4월 27일부터 6월 20일까지다. 노태우 정권이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공안합수부를 만들어 대규모 검거에 나선 시기와 일치한다.

대외적으로는 공안합수부를 만들어 대규모로 구속하고, 대내적으로는 청명계획을 통해 유사시 비상계엄을 내리고 등급별로 분류된 반정부 인사들을 모두 검거한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는 야당 총재인 김대중ㆍ김영삼ㆍ김종필을 특별 관리하면서 '여소야대'를 '여대야소' 국면으로 만들기 위한 작전을 폈다. 이 같은 정치상황은 당시 대통령 정책보좌관이었던 박철언 전 의원의 증언에서도 확인된다.

박 전 노태우 대통령 정책보좌관은 지난달 16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1989년 4월 총선에서 민정당이 다수 의석을 빼앗겼기 때문에 여소야대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타협이 이뤄"졌고, 이에 따라 "1990년 민주정의당ㆍ통일민주당ㆍ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을 이뤘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인사 예비검속 계획, 그 자체로 끔찍한 일"

이와 관련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노태우 정권은 민선군부정권의 성격을 지닌 과도기적 정부였다"며 "당시 혼란한 정국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반헌법적 통제, 일종의 강경억압정책을 구상했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1987년 6월항쟁 이후 선거에서는 민주적 절차가 도입됐지만 국가권력이나 정당은 여전히 쿠데타적 방식으로 작동했다"며 "YS정부까지 민주주의와 쿠데타적 작동 방식은 해소되지 않은 채로 갈등하며 공존한 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6월항쟁 이후 조성된 민주화 분위기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는 온건파적 이미지 '물태우'가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친위쿠데타까지 사고해야 한다는 강경파적인 인식이 공존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이 당시 통치전략 중 하나로 강경한 계획을 세웠을 가능성은 있지만 실현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게 조 교수의 판단이다. 조 교수는 "당시 군부정권은 이미 대중적 기반을 상실한 상태였고 미국도 강경파 전략을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같은 전략을 실행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며 "제2의 광주항쟁이 발생할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강경파 노선을 수립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민선군부정권 아래서 혼란을 명분으로 권위주의적인 방식의 재안정화 경로를 선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지만, 군부정권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적 사태를 만들려고 했을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는 과도기적 혼란기였기 때문에 친위쿠데타 또는 친위쿠데타에 대한 역쿠데타 등도 정권 내부에서 심각하게 논의됐을 수 있다"고 본 조 교수는 "그 당시에 이 내용이 폭로됐다면 엄청난 일이었겠지만, 지금은 이미 민주화 흐름을 역류할 수 없을 정도의 불가역적 상황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덜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도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권의 불안정성을 우려하는 보안사 내부 일각에서 하나의 안으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노태우 정권이 추진했던 '3당통합'이 무산되고 정권의 불안정성이 심화됐다면 이 같은 강경 목소리가 힘을 얻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유 박사는 "노태우 정권도 6월민주항쟁에 항복한 후 정권을 잡은 상태였기 때문에 민주화를 역류하는 차원에서 친위쿠데타를 실행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태우 #박철언 #국군보안사령부 #박종철 고문치사 #이내창 거문도 변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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