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소골은 꽃의 나라

꽃의 나라를 만난 아들 '진형'의 신바람

등록 2007.04.26 14:39수정 2007.04.27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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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물방울 머금은 별꽃에 별이 빛나고 있는 것 같다.

물방울 머금은 별꽃에 별이 빛나고 있는 것 같다. ⓒ 최성수

일요일 아침(22일), 주섬주섬 짐을 꾸리고 출발 준비를 한다. 주말이면 고향 보리소골에 내려와 얼치기 농사를 짓고, 일요일 아침이면 일터인 서울로 떠나는 생활을 한 지 어느 새 6년이 넘었다. 늘 반복되는 일이지만 일요일 아침이면 괜히 마음이 무거워 진다. 그것은 보리소골을 떠나기 싫은 마음 탓이다.


"당신은 이 시간이면 꼭 신경이 날카로워진다니까."

아내는 일요일 아침의 나를 보며 그런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아마도 내 마음을 눈치 챈 것이리라.

출발을 앞두고 나는 더 미적댄다. 배추와 상추를 심은 밭에 가 모종이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 둘러보기도 하고, 막 싹이 돋는 야생화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벌개미취와 술패랭이 새 잎 피는 걸 들여다보기도 한다. 봄이 오니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이곳이 자연과 가장 가까운 땅이기 때문이리라.

보리소골을 떠나기 싫은 마음

a 양지꽃, 봄맞이 나온 꽃

양지꽃, 봄맞이 나온 꽃 ⓒ 최성수

"진형아, 우리 산책이나 하고 갈까?"


나는 출발을 미루고, 마당가에 나와 서성이는 늦둥이를 꾄다. 야생화 화단에 잎들이 피어나는 것을 보니, 뒷산 숲길에도 온통 봄꽃이 제 빛을 세상에 나누어 주고 있을 것 같아 도저히 그냥 출발할 수가 없다.

진형이 녀석이 강중강중 나를 앞서 숲으로 뛰어간다. 처음 보리소골에 올 때, 녀석은 돌투성이 길을 잘 걷지도 못하는 서울내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스팔트길보다 오솔길을 더 좋아하는 아이로 변했다.


건천이라 대부분은 말라있던 개울물도 봄이 되자 제법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른다. 돌나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개울가 바위 위에는 마른 솔잎이 가득하다. 솔잎 사이로 돌나물이 제법 어린아이 손톱만큼 자라나 있다. 다음 주말쯤이면 뜯어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a 둥근털제비꽃

둥근털제비꽃 ⓒ 최성수

돌나물과 이웃한 자리에는 현호색이 서너 포기 꽃을 피우고 있다. 지난주에는 그렇게 찾아 헤매도 잘 안 보이더니, 찾을 생각이 없는 오늘은 금방 눈에 띈다. 개울을 지나고, 숲길로 들어선다. 허리를 굽히고, 길가 풀 섶에 난 꽃들을 찾는다. 봄꽃들은 너무 작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보았던 둥근털제비꽃이 그리워 숲길에 쪼그리고 앉아 찾아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봄꽃은 쉽게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법인가보다. 꽃과 마음이 맞아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이 봄꽃이다.

a 둥근털제비꽃이 숲길에 숨어 있었다.

둥근털제비꽃이 숲길에 숨어 있었다. ⓒ 최성수

"진형아, 둥근털제비꽃 있나 찾아봐라."

내 말에 진형이는 사방을 둘레둘레 살펴보더니 중얼거린다.

"이건 현호색인데."

다가가 보니 현호색이 맞다. 처음에는 그저 노란 꽃, 붉은 꽃하며 색깔로만 알던 꽃을 녀석은 이제 제법 이름까지 댈 줄 안다. 꽃 이름을 종알거리는 녀석의 얼굴이 꽃을 닮아 있다.

숲길 여기저기를 살펴도 지난주에 꽃망울이 맺혀있던 둥근털제비꽃은 보이지 않는다. 다 져버렸나보다 생각하며 길을 돌아 내려오는데, 내가 아까 지나쳤던 자리를 뛰어 내려가던 진형이 녀석이 소리를 지른다.

"아빠, 여기 둥근털제비꽃 있어요."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풀 섶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또 소리친다.

"여기도 있어요. 어, 여기도 있네."

얼른 달려가 보니, 곳곳이 둥근털제비꽃 천지다.

"우리 진형이가 이제는 꽃도 잘 찾네."

녀석이 기특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녀석도 기분이 좋은지, 쨍한 소리를 낸다.

"여기는 온통 둥근털제비꽃 나라야."

꽃의 나라를 만난 아들

a 봄에 피는 꽃들은 작아서 더 아름답다. 개별꽃

봄에 피는 꽃들은 작아서 더 아름답다. 개별꽃 ⓒ 최성수

조금 내려오니 이번에는 개별꽃이 피어있다. 정말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 꽃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여기는 별꽃 나라네요."

진형이가 환하게 웃는다. 그러더니 별꽃을 들여다보며 내게 묻는다.

"아빠, 얼마 있으면 이 꽃도 다 지겠지요? 그런데 꽃이 져도 꽃 나라는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별꽃 나라, 둥근털제비꽃 나라, 현호색 나라는 그대로 있을 거예요. 왜 그런지 아세요?"

a 별꽃 피어 낯에도 보리소골은 반짝이는 별나라가 된다.

별꽃 피어 낯에도 보리소골은 반짝이는 별나라가 된다. ⓒ 최성수

꽃의 나라라고 하는 녀석의 말이 너무 고와 나는 질문에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한다. 녀석은 늘 그렇듯이 제가 묻고는 제가 대답을 한다.

"왜냐하면, 내년 봄에는 또 꽃이 필 테니까요. 그러니 꽃 나라는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내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녀석은 노래하듯 소리 높여 중얼거리며 숲길을 뛰어 내려간다.

"둥근털제비꽃 나라, 현호색 나라, 별꽃 나라."

녀석의 말에 보리소골이 그대로 꽃의 나라가 되는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마당가를 살펴보니, 거기 알록제비꽃이 돌 틈을 비집고 곱게 피어있다. 보리소골의 봄은 온갖 작고 여린 꽃들과 함께 온다. 그리고 그 꽃을 마음으로 느끼는 늦둥이 진형이의 마음에서 오는 것 같다.

아, 봄은 봄이다!

a 마당가 돌틈을 비집고 피어난 알록제비꽃.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마당가 돌틈을 비집고 피어난 알록제비꽃.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 최성수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사진은 제가 운영하는 카페 http://cafe.naver.com/borisogol.caf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더 많은 사진은 제가 운영하는 카페 http://cafe.naver.com/borisogol.caf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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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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