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그렇게 기뻐하는 건 처음 봐"

김홍업, 여의도 입성 첫 행보는 동교동 '부자상봉'... 'DJ 메신저' 벗어날까?

등록 2007.04.26 16:55수정 2007.04.2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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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5일 무안.신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김홍업 후보가 개표 결과 압도적인 표차로 앞서 나가자 무안읍 사무소에서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환호하고 있다.

25일 무안.신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김홍업 후보가 개표 결과 압도적인 표차로 앞서 나가자 무안읍 사무소에서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형민우


a <font color=a77a2>[왼쪽] 김대중 전 대통령. <font color=a77a2>[오른쪽]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족사진. 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차남 홍업씨다.

[왼쪽] 김대중 전 대통령. [오른쪽]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족사진. 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차남 홍업씨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청와대 홈페이지


4·25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김홍업씨(56, 무안·신안)의 첫 행보는 '부자 상봉'이었다.

김씨는 26일 오전 7시께 지역구를 출발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저인 서울 동교동으로 향했다.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으로 첫 행선지였다.

오전 10시께 동교동에 도착한 김씨는 김 전 대통령과 어머니 이희호씨가 배석한 가운데 30여분 환담을 나눴다. 당초 김홍업씨 측에선 오전 민주당사에서 환영식을 마친 뒤 오후께 동교동을 방문할 것이라고 공지했지만, 취재진을 의식해 일정을 바꾸고 동교동을 먼저 찾았다.

"아버지가 그렇게 기뻐하시는 것 처음 봤다"

아버지를 만난 뒤,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 여의도 민주당사에 도착한 홍업씨의 표정은 밝았다. 환영식에 앞서 박상천 대표 방에서 의원들과 환담을 나누는 가운데도 DJ 얘기가 많았다.

신낙균 민주당 부대표 "고생하셨는데 괜찮아 보인다."
김홍업 당선자 "남들은 (선거운동 하면 살이) 많이 빠진다는데, 저는 배도 별로 안 들어갔다."
신낙균 부대표 "선거 체질이다. 아버님을 닮았나 보다. 선거 때 (김대중) 총재를 쫓아다니다보면 우리는 지치는데 당신은 '이제 좀 길이 난다'며 여유를 보이시더라."
이낙연 의원 "DNA가 있나 보다."

그러나 이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신중식 의원의 "오늘 화제는 DJ가 아니라 김홍업으로 하자"는 말에 순간 서먹해졌다. 곧바로 '비공개'가 선언되었고 취재진은 퇴장해야 했지만, 대표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DJ에 관한 화제는 이어졌다.


한 의원의 '뭐라고 하시던가요?'라는 질문에 김홍업씨는 "자식들 일로 그렇게 기뻐하시는 건 처음 봤다"며 김 전 대통령의 반응을 전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그런 얘기 안하시는데…"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대통합' 외치는 아버지, 범여권 사이에 낀 아들

a 김홍업씨 측이나 민주당에선 'DJ의 메시지 정치'를 경계하만,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김심'의 영향력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김홍업씨 측이나 민주당에선 'DJ의 메시지 정치'를 경계하만,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김심'의 영향력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이종호

김홍업씨의 당선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지닌다. '명분'으로 따지면 지역주의와 권력 세습이라는 비난을 얻고 있다. 그러나 세력으로 움직이는 정치 '현실'로 보자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등 범여권 통합론에 일정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특히 범여권이 단일 정당을 만들어 한나라당과 양당 구도로 대선을 치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해 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중이 얼마나 관철될 지가 관심사다. 이 때문에 그의 당선은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각각 자당 중심론을 내세워 주도권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 '김홍업씨의 당선이 양당의 강경파를 압박하고 통합의 물꼬를 틀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은 그래서 나온다.

실제로 김홍업씨가 출마한 무안·신안 선거는 연대의 작은 실험대였다. 열린우리당은 후보를 내지 않고 김씨의 선거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정세균 의장을 비롯해 중진, 호남권 의원들은 '방문자 선거운동원'으로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열린우리당 소속의 무안 군수는 공개지지를 표명했고 당원협의회장 등은 아예 운동원으로 뛰었다. 공천에 불만을 품고 민주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나온 이재현 후보에 조직세가 밀렸던 김홍업 후보로선 반가운 일이었다.

25일 밤, 당선이 확실시되자 선거사무소에서 민주당 인사들과 축하 인사를 나눈 뒤, 김홍업씨가 곧장 향한 곳은 열린우리당 운동원들이 모여있던 무안군청 인근의 한 식당이었다. 그 곳에서 김씨가 자신의 '대통합' 의지를 확인시켜주었다고, 동행한 이낙연 의원이 전했다.

'평화'에서 '중도'로... 그러나 '하나의 통합'

a 김홍업씨에게 아버지의 이름은 정치적으로 힘이자 짐이다.

김홍업씨에게 아버지의 이름은 정치적으로 힘이자 짐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하지만 앞으로 김홍업씨의 처지는 그렇게 간단치는 않다. 당선되고 이튿날 바로 그의 말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선거운동기간 내내 김씨는 "평화민주세력의 대통합에 밀알이 되겠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당선자 신분이 되자 '중도개혁세력'이라 언명했다. 민주당은 지난 전당대회 때 당헌으로 중도개혁세력의 대통합을 선언한 바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후보쪽에 대통합을 말할 때 '중도'를 넣어줄 것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사실 범여권 통합론에는 갖가지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이름도 가지가지다. '중도' '평화' '개혁' '민주' 등의 단어를 어떻게 배열하느냐의 차이다. 열린우리당에선 '평화민주개혁세력'이라 부른다. 의미에선 큰 차이가 없지만, 통합과정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신경전이 함축되어 있는 터라 민주당 당적으로 당선된 김홍업씨로선 '중도'라는 단어를 배제할 수 없는 입장.

김씨는 이날 당선소감을 밝히면서 "중도개혁세력의 통합을 약속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에 단어 하나를 추가했다. "50년 전통의 민주당이 '하나의' 중심이 되어 통합이 이뤄지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중도개혁세력 통합론이 기존의 '민주당 중심론'으로 해석되는 것을 중화시키기 위해 통합 세력의 '하나'라는 점을 은근히 드러낸 것이다. 정치는 단어 하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통합론에 대한 입장이 바뀐 것이냐"는 질문에 김홍업씨는 "이제는 당인이 되었으니 책임있는 얘기를 해야 되고, 민주당 당헌에 따라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박상천 대표의 입장처럼 '중도개혁세력의 통합론=민주당 중심론'에 동조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도 직답을 피했다. "지금은 명확한 입장을 말씀드릴 때가 아니다"며 "많은 분들의 얘기를 듣겠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메시지 정치 피해갈 수 있을까

a 26일 오전 민주당사를 찾은 김홍업 무안·신안 국회의원 당선자가 박상천 당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26일 오전 민주당사를 찾은 김홍업 무안·신안 국회의원 당선자가 박상천 당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박정호

김홍업씨 측이나 민주당에선 'DJ의 메시지 정치'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번 선거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호남세가 확인되었고, 한반도 평화 구도에도 위상이 높아져 가는 상황이라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김심'의 영향력은 확대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본인(김홍업)이 직접 언명은 하고 다니지 않겠지만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DJ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김씨는 "DJ의 아들이 아닌 정치인 김홍업으로 봐달라"고 말했지만 주변이 그를 그렇게 놔둘 것 같지 않다. 아버지가 후광인 동시에 멍에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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