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는 숭실인문학포럼 첫 번째 대회에서 도올 김용옥 교수의 성서 이해를 비평했다. 이번 대회는 주최한 인문과학연구원 박정신 교수는 도올은 우리 시대의 '지적 방랑자 김삿갓'이라며, 인문학자들이 지녀야 할 덕목인 지적 자유함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뉴스앤조이 주재일
도올이 신구약의 철저한 단절을 논한 근거는 복음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강조였다. 김회권 교수에 따르면, 마르시온은 복음의 자유와 해방을 율법의 틀 안에서 심화시키기보다는 헬레니즘의 영지주의 안에서 구체화하려고 하려가 신구약의 급진적 단절을 초래하였다.
도올이 옹호하고 김회권 교수가 비판하는 영지주의적 중심 사항은 신과 인간의 본성을 연속적인 흐름으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신이라는 불꽃의 파편을 지닌 존재다. 그래서 신과 인간은 본원적으로 소통이 가능하다”라는 영지주의 주장을 도올은 긍정적으로 보고, 김회권 교수는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마르시온은 이러한 영지주의를 토대로 구원론을 새롭게 정립한다. 우리의 죄를 대속한 예수의 죽음과 이러한 예수의 사역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게 정통 기독교의 구원관이지만, 마르시온은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자의 도움을 받아 인간 스스로가 자신 안에 있는 불꽃의 파편을 발견해야 참빛인 하나님께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내 안의 파편을 발견해 신에게 이르는 길은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 한 단계를 뛰어넘는 관문마다 그노시스(영지)가 필요하다. 마르시온은 "예수는 우리에게 이 영지를 알려줘 거대한 빛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존재다"고 주장한다. 도올은 이런 마르시온을 지나치게 옹호하려는 점을 김 교수는 문제삼았다.
마르시온에 따르면, 구약에서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은 최고의 신보다는 조금 못한 하급 신(데미우르게)이다. 예수는 변덕스럽고 보복적이며 폭군적인 구약의 하나님이 아니라 무한히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신 자비의 하나님, 곧 최고의 신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예수가 참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세계에 속한 육신을 입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 점이 마르시온이 영지주의자로 몰리는 이유다. 마르시온은 육신의 가짜 예수가 십자가에서 신음할 때, 영의 진짜 예수는 옆에서 낄낄 웃었다고 주장했다.
도올은 이단으로 몰렸다고 그 사상 자체가 모두 무효화되는 건 아니라며, 정통 기독교가 배척한 마르시온을 마지막까지 동정한다. 그럼에도 도올은 구약-유대교적인 창조신학(물질과 육신의 세계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의 영향으로 요한복음이 이 영지주의의 극단적인 영(선)-육(악)이라는 이원론을 극복했다고 평가한 점을 김 교수는 인정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영지주의 구원론은 탈세계적 구원론, 엘리트주의적 구원론, 혹성탈출식 구원론이라고 비판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 활동하시며 그 역사 안에서 구원을 이루시는데, 영지주의는 구원과 역사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치부해 역사에 무책임한 기독교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탈세계적 기독교는 방탕하거나 금욕적인 형태를 띤다고 지적했다.
또 영지주의 구원론은 영지를 아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보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 구원론이므로,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에 입각한 구원론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마르시온이 구약과 신약을 철저히 단절시키면서 신약에서 구약에 우호적인 부분을 삭제하고 바울의 편지마다 자신의 서문을 덧붙였다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무시한 태도라고 질타했다.
김 교수는 도올이 말하는 영지주의가 기독교가 배척한 협애한 영지주의가 아니라 당시 희랍 사상의 핵심적인 흐름(오르페우스~피타고라스~플라톤~플로티누스)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요한복음이 영지주의 세계관(빛과 어둠의 이원적 세계관)을 활용하지 않았다면 영지주의로 무장한 당대 지식인들을 설득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기독교 복음이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얻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진단한 도올의 견해를 신선한 해석이라고 평가했다.
도올은 요한복음이 여러 종교와 사상을 지평 융합한 종교혼합주의적인 영지주의를 적절하게 창조적으로 활용하면서, 영지주의적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당대의 민중들에게 공세적인 복음을 전하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하면서, 오늘날 한국교회를 향해서도 불교와 동양사상 등의 좋은 면을 두려워 말고 공세적으로 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 교수는 이러한 도올의 주장을, 한국교회가 복음의 능력으로 무장되기만 한다면, 진지하게 논의해 볼만하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모든 종교가 다 하나이니까 전도도 선교도 필요없다는 식의 종교통합이나 다원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케리그마를 여러 세계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전파하기 위한 전략으로 타종교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마르시온주의와 함께 도올이 한없는 연민을 품는 계파는 아리우스파다. 철저한 네오플라토니스트였던 아리우스는, 예수는 인간일 뿐이고 오직 성부만이 절대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 도올에 따르면, 아리우스는 예수가 인간이라는 점을 부각해 사실은 하나님의 절대 유일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도올은 아리우스가 예수를 인간으로 설정해 역설적으로 예수를 인간과 신을 잇는 특별한 로고스적 성격을 부각했다고 긍정했다.
또 도올은 아리우스가 예수와 하나님을 동일한 분으로 여기는 서방의 황제 기독교에 의해 정치적으로 거세되었다며 아리우스를 옹호한다. 이와 함께 도올은 신약 성경 27권이 정경으로 채택되는 과정도 기독교와 로마 황제의 정치적인 유착의 우발적인 일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김 교수는 얼핏 보면 도올의 주장이 맞는 것 같지만, 367년 부활절 즈음에 아타나시우스에 의하여 발표된 신약 성경 27서 목록은 특정 정치권력을 옹호하는 목록이 아니라고 당시의 여러 교회들에게 일반적으로 공인된 책들의 목록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도올은 정통 기독교가 마르시온과 아리우스 등을 이단으로 몰면서 보인 배타성에 깊은 연민을 느끼고 27서 경전화 작업 전의 원시 종교혼융적 기독교에 대한 아련한 향수 때문에 치우친 평가를 내린다고 지적했다.
"지나치지만 참신한 면도 있다"
김 교수는 도올의 성서 이해에 대한 A4용지 24쪽 분량의 논문을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동안 토해내듯 설명했다. 도올의 몇몇 신학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냉혹하게 비평했지만, 몇몇 주장에 대해서는 "도발적이고 참신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김 교수는 도올이 가장 많이 비판 받고 자신도 도올을 비판하는 핵심 사항인 '구약과 신약의 과격한 단절'에 대해서도 "치우친 면이 있으나, 도올이 기독교 복음이 얼마나 새로운 문화 창조의 힘이며 역사 변혁의 에너지를 제공하는 엄청난 하나님의 선물인가를 강조하려고 했던 점에서 참신한 면을 드러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