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문 전 경찰청장, '보복폭행 수사' 무마하려 했나

올 1월 한화그룹 고문 영입... 수사 방어용?

등록 2007.04.27 20:34수정 2007.04.27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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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 27일 밤 10시 37분]

올해 1월 한화그룹 고문으로 영입된 최기문 전 경찰청장의 경찰청장 재직 당시 모습.
올해 1월 한화그룹 고문으로 영입된 최기문 전 경찰청장의 경찰청장 재직 당시 모습.오마이뉴스 권우성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 그룹 고문으로 재직 중인 최기문(55) 전 경찰청장의 부적절한 처신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올해 1월 한화그룹 고문으로 영입된 최 전 청장은 김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이 벌어진 며칠 뒤 장희곤 남대문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수사 여부를 물었다. 장 서장은 지난 25일 브리핑에서 "최 전 청장이 사건 발생 2~3일 뒤 한화그룹 폭행 건이 있느냐고 전화를 해와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경찰 설명에 따르면 최 전 청장은 사건 발생 나흘 뒤인 12일께 장 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때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로부터 이첩되기 전이라 수사 중인 사건이 없다고 답했다는 얘기다. 3월 20일 첩보를 얻은 광역수사대는 28일에야 남대문경찰서로 사건을 이첩했다.

최 전 청장은 경찰이 첩보를 얻어 내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 전화를 걸만큼 빠른 반응을 보였다. 최 전 청장이 수사를 무마하려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27일 < MBC >와의 인터뷰에서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경찰총수 출신 첫 그룹 고문... 정보력과 영향력 샀기 때문이란 분석도

사실 경찰총수가 대기업 고문으로 영입된 사례는 최 전 청장이 처음이다. 따라서 최 전 청장이 고문으로 영입될 때부터 그의 역할이 한화와 관련된 경찰의 수사 정보를 수집하거나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경찰총수를 지낸 영향력과 정보력을 한화가 높이 샀다는 얘기다.


하지만 경찰은 '외압설'을 부인하고 있다. 장 서장은 "전직 경찰총수와 동문사이고 인사청문회 때 준비팀장으로 일한 인연은 있지만 (문의전화 외에) 다른 전화는 일체 없었다"고 말했다. 또 "(전화를) 외압으로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장 서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 최 전 청장은 이후 언론과 접촉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외압설에 대해 한화그룹 관계자는 "지금 이 상황이 외압이 통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느냐"며 "외압을 하려고 시도하지도 않았고 (전화를 건 것도) 그럴 뜻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 전 청장이 관할 경찰서장에게까지 직접 전화를 한 사실은 경찰의 '늑장수사 논란'과 맞물리면서 의혹을 키우고 있다. 경찰은 지난 3월 9일 112를 통해 김승연 회장 아들이 폭행 당사자에 포함됐다는 신고를 받고도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시간에 김 회장과 아들은 문제의 룸살롱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첩보를 받고도, 일주일 동안 내사를 벌이다가 뒤늦게 관할 경찰서로 인계한 과정도 석연찮다. 경호원까지 동원된 조직적 폭력행위를 단순한 쌍방 폭행과 합의로 종결한 첫 조치에도 의혹의 눈길은 머물고 있다. 김 회장과 아들이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데도 해외에 나가 있는 것으로 파악한 경찰 정보력의 허점도 비판 대상이다.

김 회장 소환 여부 30일 이후로 미뤄질 듯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오마이뉴스 권우성
경찰은 첩보 입수 이후 한 달이나 넘게 걸린 내사로 인해 '늑장수사', '재벌 봐주기' 비판을 의식한 듯 뒤늦게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남대문경찰서 수사 인력(강력 2개팀)에 광역수사대 수사 인력을 추가해 모두 44명으로 수사팀을 새로 꾸렸다. 팀장도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이 직접 맡았다. 사소한 술자리에서 시작된 폭력행위 수사팀으로선 과도하다 싶을 정도다.

홍영기 서울경찰청장과 강희락 경찰청 차장도 '엄정수사'를 외치고 있다. 강 차장은 27일 오후 보복폭행 사건 보고를 받은 뒤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만큼 원칙대로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밝히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28일 오전 보복폭행 당사자인 김승연 회장의 차남을 소환할 예정이다. 김 회장의 차남은 김 회장이 보복폭행 당시 현장에서 폭력을 행사했느냐는 의혹과 야구방망이, 회칼 등 흉기 사용 여부를 집중 조사받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경찰청은 김 회장의 차남을 조사한 뒤 주말에 사건을 정리해 30일 오전 보복폭행 사건의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 소환조사는 서울경찰청 발표 이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일단 김 회장의 아들을 먼저 조사한 뒤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며 "김 회장 소환 여부는 30일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 MBC >는 27일 밤 뉴스데스크를 통해 "김승연 회장이 28일 오후 소환조사를 받을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26일 밤까지 경호원과 유흥주점 종업원을 조사한 뒤 진술이 어느 정도 일치하면 김 회장 아들을 부를 것"이라며 "김 회장이 28일 소환조사를 받을지는 알 수 없고 수사 진척 상황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 회장과 아들은 27일 예정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는 등 대책을 고민하는 분위기다. 이날 오후 김 회장의 가회동 집 앞에는 경비원들이 늘어서 취재기자 등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고 있다. 경비실 관계자는 "오늘 김 회장이 꽤 늦으실 것 같다"고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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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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