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코피흘린 아이 떼놓고 왔는데"
잔인한 4월의 끝, 피 마르는 엄마들

국회의원 전원이 공동발의했지만, '장애인교육지원법'은 2년 째 계류 중

등록 2007.04.29 11:54수정 2007.07.07 13:52
0
원고료로 응원
a

올해 4월... 장애인교육권연대 회원들이 24일 오후 국회 본청 1층에서 장애인교육지원법 4월 국회통과를 요구하며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난 24일 오후, 국회 본청이 한 무리의 아줌마들에게 뚫렸다.

50여명의 이 '불청객'들은 '장애인교육권연대' 소속의 장애아 부모들. 이들은 본청 뒤편 방문자 출입문을 통해 경비 직원들을 밀치고 들어왔다. 84년부터 국회에 근무했다는 국회 경위는 "기습 시위로 본청에 외부인이 진입해 시위를 벌인 건 처음 봤다"고 했다.

직원들에게 제지당한 일부를 제외하고 본청 진입에 성공한 이들 장애아 부모들은 국회 정론관 앞 복도에 주저앉아 장애인교육지원법의 4월 국회통과를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국회 본청 뚫은 아줌마 부대, 그들은 장애아 엄마였다

a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장애인교육지원법은 2006년 5월, 229명 국회의원 전원이 공동 발의한 법안으로, 장애인들에게 영아부터 시작해 생애 주기별에 맞는 평생 교육 시스템을 제공해 주는 내용이다. 즉, 장애 학생을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일반학교에 배치해서 교육받을 수 있게 하고 장애란 이유로 교육에서 배제되는 것을 막자는 법안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우리나라 3세에서 17세 장애 학생 24만명 중 1/4인 6만명만이 교육 받있는 현실이 개선될 수 있다. 장애란 이유로 교육에서 소외되고 그래서 가난해지는 악순환을 끊자는 취지다.

대부분 다운증후군과 뇌성마비 같은 장애아 부모들의 호소는 4월 임시 국회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 절박했다.

장애인교육지원법이 4월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5월엔 국회가 열리지 않고 본격적인 대선정국으로 들어가는 6월로 접어들게 되면 의원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자동 폐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법안 통과 안 되면 자동폐기 될지도

a

지난해 12월... 장애인교육권연대 소속 장애인과 가족들은 2006년 12월 22일 오후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세종로 중앙청사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당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날 6살 다운증후군 딸을 둔 서경주(40)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45일 동안 단식을 하고 국회 앞에서 삭발까지 하면서 장애인교육지원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국회의원들에게 호소했지만, 4월 내내 상임위원회인 교육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고 분노했다.

시위대 속엔 어린아이들도 눈에 띄었는데,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민준이는 어른들과는 떨어진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엄마 정희경(36)씨는 "다운증후군 민준이가 마포 집과 가까운 학교를 놔두고 매일 버스로 30분 넘게 걸리는 서대문구까지 통학하고 있다"며 "민준이가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기 위해서라도 이 법안의 통과가 절실하다"고 했다.

이들 장애아 부모들은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 갈 수 있길 바란다 했다. 언제까지 장애 부모의 소원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것이어야 하는지 반문했다.

이 법안의 대표 발의자인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은 "정부가 이 법안에 대한 대안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한나라당의 사립학교법 연계 처리 주장에 법안을 처리해야 할 교육위원회가 활동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난감하다"고 했다.

'과격' 시위가 효과를 봤는지, 장애인교육지원법은 지난 26일 교육위 상임위를 통과했고, 같은 날 법사위에 올라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란 이름으로 입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가 됐다. 하지만 입법을 기다리는 1000여건의 법률안 중에 하나로, 법사위 통과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우리같은 사람들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a

지난해 9월... 2006년 9월 14일 오후 장애인교육인권연대 회원들이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시 교육청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년 4개월간 정치권과 종교계의 최대 현안이 되어 온 사립학교법과 곧 닥칠 12월 대선 정국은 국회의원 전원이 발의한 법안까지도 무위로 만들 수 있다.

장애아 부모들이 국회 본청을 기습 점거한 이 날, 마침 의료법 개정안과 관련해 국회의원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혐의로 장동익 의사협회장이 출석한 긴급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의원들에게 뒷돈을 주고 의료법 개정안과 연말정산법안을 부결시켰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가난해서 의원들에게 돈 찔러주고 법안 통과시켜 달라고 로비 같은 거 못 합니다. 우리같이 힘도 돈도 없는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밤새 코피가 멈추지 않는 아이를 떼어놓고 울산에서 올라왔다는 한 엄마의 목소리가 넓은 국회 본청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4월 임시국회는 30일에 끝난다.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장애인교육지원법 #장애아 #최순영 #교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렇게 어렵게 출제할 거면 영어 절대평가 왜 하나
  2. 2 궁지 몰린 윤 대통령, 개인 위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나
  3. 3 헌재는 지금 5 대 4... 탄핵, 앞으로 더 만만치 않다
  4. 4 [단독] '키맨' 임기훈 포착, 채상병 잠든 현충원서 'VIP 격노' 물었더니
  5. 5 동네 뒷산 올랐다가 "심봤다" 외친 사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