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와 미선이 효순이가 무슨 상관이 있나

반미감정에 대한 피해의식과 미국에 대한 열등감이 낳은 상상력

등록 2007.04.30 14:53수정 2007.04.30 14:53
0
원고료로 응원
4월 25일자 중앙일보 오피니언 면에는 '조승희 사건과 미선이 효순이'란 제하의 기자칼럼이 실렸다. 기자는 처음 미국내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하여튼 미국이란 나라는'하고 혀라도 찼을 것 같은 마음에서 우리 교포인 조승희가 저지른 범행이란 걸 알고 모든 게 다르게 느껴졌다고 한다. 마음이 아프고 부끄럽고 덩달아 죄책감을 느낀데다가 이 사태를 헤쳐 나가는 희생자 가족들과 미국민, 그리고 그 나라 언론의 보도태도에서 적지 않은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가 2002년 미선, 효순이 사건 때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개운치 않았단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했던가'라며.

자, 다시 물어보자.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했나. 훈련중이던 미군 장갑차에 치인 두 명의 어린 여중생의 죽음 앞에서 기자의 말대로 수백개의 시민단체가 ‘범국민대책위’를 구성했다. 그리고 좋다. 끔찍하게 죽어간 두 아이의 주검 사진을 뿌려대며 터무니없는 유언비어가 떠다니는 속에 국민감정을 부채질하여 반미시위로 이어졌다고 치자. 그런데 그것하고 이번 조승희 사건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

조승희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나

두 아이의 죽음은 미군의 남한주둔과 그들의 군사훈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럼에도 두 아이의 죽음은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았다.(아마 당시 월드컵 열기에 파묻힌 탓도 있을게다) 처음부터 미군측은 불성실한 대응으로 일관하였으며 그리고 실제로 별 일 아닌 것처럼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일 게다. 이 전에 그래왔던 것처럼.

그리고 점차 사회적 이슈가 되고 국민감정을 들쑤시게 된 데는 이른바 소파협정이라고 하는 미국의 주둔지내 법적 지위 등에 대한 불평등조약으로 그 동안 저질러진 미군범죄행위와 이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이 땅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 크게 자리하였을 것이다. 그것이 어린 여중생들의 참혹한 죽음과 맞물려 걷잡을 수 없는 상승작용을 하지 않았겠는가.

이와 비슷한 예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일본의 오키나와에서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한 여학생이 미군들에게 강간당한 일이 벌어지자 오키나와 전 주민이(언론까지 포함하여) 들고 일어나 항의하였으며 끝내 미국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방지에 대한 실질적 조치를 취하고 마무리된 사건이다.(그럼에도 이 후 유사한 범죄행위가 있었지만)


그러니 가해자가 주둔지 내의 미국군인이라는 특수신분과 법적용에 있어 차별(또는 혜택)을 받는 위치에 있으며 사후 흐지부지 넘어갈려는 사안에 대해 주둔지 주민으로서 이에 항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 방법 또한 촛불시위라는 선진적 모습으로 기억한다.

그러면 조승희는 어떤가. 다인종 다민족사회인 미국에서 성장한 영주권자로서 일반 미국 시민과 똑같은 처지에서 일어난 개인적 범법행위 아닌가, 그러니 이에 대하여 인종차별적 시각이나 감정에 기대거나 비주류층에 대한 곱지않은 시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디 미선이 효순이 사건과 비교할 일인가.


굳이 비교하자면 미군의 장갑차 사건이 그 사회적 배경이나 법적 제도에 대한 항의나 시정요구에 다름 아니라면 미국내 총기참사 사건이 저질러질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법적 제도 즉 자유로운 무기매매나 무기 소지허용 등에 대한 비판과 항의가 되어야 될 거 아닌가.

미국내 사정을 알 수 없지만 우리네 같으면 언론부터 시작하여 온 국민이 연방 정부나 주 정부의 정책(무기제조업체의 강력한 로비덕분이라는)이나 무기제조판매업체에 대하여 한 목소리로 질타하고 항의했을 것이며 우리네 정서로는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닌가.(만일 이에 대해 미국 사회가 조용하다면 우리네 시각으로 그게 이상하지 싶다)

기자의 피해의식과 미국사회에 대한 선망의 눈초리

그런데 이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비단 두 사건의 비교가 아니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기자의 시각이며 그 내면에 도사리고 있을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보인다. 처음 총기사건이 날 때만 해도 ‘아무튼 미국이라는 나라는 ’하면서 혀라도 끌끌 찼을 법한 반응에서, 중국계라는 보도에 ‘덤으로’ 싸잡아 욕먹을 걱정을 하더니, 재미교포 조씨의 범행임이 드러나자 부끄럽고 죄책감마저 들었다 한다.

물론 사건사고를 대하는 기자의 직업적 시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졸지간에 목숨을 빼앗긴 33명의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나 이런 무지막지한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 들은 뒷전으로 보인다. 피해의식이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요즘 유행처럼 들먹이는 이른바 세계시민으로서의 성숙하고 균형잡인 시각으로 희생자에 대한 애도나 이번 사건의 본질을 바라보려는 시도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기자가 말한 대로 이 번 미국내 참극에 대하여 미국민이나 미국 언론으로부터 적지않은 교훈을 얻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기자의 미국사회에 대한 선망은 계속된다. 기자는 조승희 사건에 대하여 "(미국내) 어느 누구도 33명의 죽음을 '죽음 이외의 것'으로 해석하고 이용하지 않았다. 미국 사회가 그걸 용납하지도 않았다"고 적고 있다.

죽음이란 뭘까. 또 죽음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당시 비슷한 시기에 서해교전 사태가 있었다. 적절한 예가 될른지 모르겠지만 이 젊은 장병들의 죽음 앞에 기존의 언론과 일부 시민 단체들이 보여준 반응은 어떠했나. '지하에서도 억울해 한다'며 당시 북측에 대한 햇볕정책이나 정부의 저자세에 대해서 침튀겨가며 성토한 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굳이 이들의 반응이나 대응을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란 이렇게 산 사람들에 의하여 해석되게 마련이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고 기자의 말대로 "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기 때문"이며 죽은 자는 더 이상 말이 없기 때문이다. 설사 국민감정을 부채질하고 어린 여중생의 죽음을 이용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이 땅의 현실과 불성실하고 오만한 파트너에 대한 항의를 위한 것이지 않았겠는가.

그래 일부 반미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한 미선이 효순이를 위한 10만 명의 집회시위자들이 미군을 때려잡았나, 폭발물 테러를 저질렀나. 가장 성숙한 촛불시위의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지 않았는가. (굳이 우리 국민성을 탓하려 든다면 당시 반미감정을 앞세운 시민들이 전시작전권 환수에 반대하는 오늘의 모습을 탓해야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반미주의자들의 부추김에 휘둘려 생각없이 행동했다가 이제 제정신을 차렸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무슨 문제인가)

또한 ‘미국 사회가 이를 용납하지도 않았다’는 식의 말투도 마치 ‘미국 사회’란게 저 높은 시렁 위에 있어서 모든 걸 꿰뚫어보는 완결한 존재로 보이게 하는데, 용광로처럼 들끓는 한 사회를 그런 식의 매끈한 포장으로 감싸는 것은 보기에 좋을지 모르나 현실을 접근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9.11 뉴욕 테러’ 이후 머리에 터번 두른 무슬림들에 대한 편견과 인권침해에 대한 수많은 보고들은 무엇이며, 흑인 피의자에 대한 백인 경찰의 무차별 폭행에서 일어난 LA폭동, 약탈과 무법천지를 경험한 동네가 어느 나라일이었나.

결국 우리가 우려한 것도 미국내 보이게 보이지 않게 저질러지는 인종이나 민족적 편견과 차별에 대한 것들이며 유감스럽게도 미국사회는 아직 이런 현실을 용납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족은 그냥 민족이다

결국 기자는 외환위기때 금붙이를 꺼내들고 나와 ‘나라를 살리자’고 한 좋은 민족주의를 칭찬하면서 거기에 이성과 합리만 더해지면 금상첨화라고 한다. 아마도 기자는 기자의 입맛에 맞는 어떤 이상형의 ‘민족’이라는 걸 그리고 있는 듯한데 민족주의란게 아니 각각의 민족이라는 게 어디 그런건가. 따져 보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했다면 누가 금붙이를 들고 나왔겠는가.

그리고 그런 식의 캠페인 자체가 민족의 감성에 기대인 것 아닌가. 민족이란 어차피 좋은 점과 그렇지 못한 점을 함께 지니고 있으며 이는 비단 민족뿐 아니라 우리사는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니 기질이나 처해진 상황이나 타민족을 바라보는 처지가 다른 일을 함부로 얘기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끝에서 기자가 미안한 예로 드는 것이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인을 수십명 살해했다면 우린 어떻게 대응했을까?’이다. 이 또한 조승희의 처지나 미국 내의 조건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혹 제대로 된 기자나 언론인의 자세라면 어떠한 대응에 대한 기자의 단정적인 예상이나 상상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집하여 사는 지역내 범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흉포해지는 현실에 대하여 그 실상이나 대책을 알아보며 이런 일을 방지하는 데 애쓰는 쪽으로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어떠한 상황이든 우리의 민족감정의 특질이 반영될 터이고 그렇다고 이에 대한 기자의 단정적인 예상이나 상상은 별 도움이 되질 않아 보인다. 언론이 앞장서서 부추기고 설쳐대지 않는 다음에야 그리 걱정할 일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 글을 올리면서 관련사진을 찾아보다가 미순이 효선이의 현장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 서럽네요. 그 아이들의 죽음에 대하여 어찌 우리는 이리도 못난 짓만 하고 있을까요. 아이들의 명복을 빌 염치도 없어집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을 올리면서 관련사진을 찾아보다가 미순이 효선이의 현장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 서럽네요. 그 아이들의 죽음에 대하여 어찌 우리는 이리도 못난 짓만 하고 있을까요. 아이들의 명복을 빌 염치도 없어집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2. 2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3. 3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