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밭고랑에서 신이 난 아이들

4월의 마지막 주말, 아버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등록 2007.04.30 15:39수정 2007.04.3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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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녀석이 쟁기를 끌고 큰 녀석이 보습을 대고 있다. 재미있어서 힘든 줄도 모르는 가보다 ⓒ 김영래

"할아버지 내 쟁기 솜씨 좀 봐 주세요!"
작은 녀석이 할아버지를 향해 외쳤다.

무릎까지 오는 큰 장화를 신은 작은 녀석이 어깨에 쟁기 끈을 메고, 뒤에선 큰 녀석이 보습을 땅에 대고 밭고랑을 켰다. 아이들은 처음해보는 쟁기질에 신이났다. 다음엔 또 나름대로 역할을 바꿔서 고랑을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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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역할을 바꾸었다. ⓒ 김영래

"다 칠라!"
아버지는 걱정스럽게 말하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밭에서 일하시는 것이 싫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엄마도 아이들의 밉지 않은 재롱에 한 마디 거들었다.
"니 놈들이 오늘 일 다 하고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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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을 만드는데 소를 부릴 수 없을 때는 이렇게 사람이 끌고,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한다. ⓒ 김영래

투명하고 맑은 햇살이 대지의 잠자는 생명을 깨우는 4월의 마지막 주말에 온 가족이 시골집에 농사일을 도우러 갔다. 일흔이 넘으신 나이에도 일을 놓지 못하시는 아버지가 늘 마음에 걸렸었다. 그래서 아이들까지 데리고 가자 밭고랑이 시끌벅적 해졌는데 옆의 밭에서 일하는 이웃 노인들에게는 정겨운 풍경이 되었다.

처음엔 발에 묻는 흙이 불편하다고 했던 아이들이 신발을 모두 벗어버리고 흙 속에 발을 묻었다. 쟁기가 뒤집은 흙에서 나온 지렁이가 눈부신지 온 몸을 비틀며 꿈틀거리자 막대기를 가지고 이리저리 뒤척여 본다.

"이놈들 ! 지렁이한테 오줌 싸면 큰일 난다. 빨리 흙 속에 묻어줘. 그 놈이 있어야 땅이 좋아진다!"
할아버지가 아이들 놀이에 한마디 하셨다.

고구마 싹을 심을 땐 서로 물을 주겠다고 다투었다. 녀석들이 다툴 때 제일 좋은 방법은 가위 바위 보. 큰 녀석이 이겨서 5번씩 물주기를 먼저 하기로 한 뒤 교대로 하기로 했다. 이렇게 심은 고구마는 아이들과 같이 수확을 하기로 했다. 서너 시간 불량의 많지 않은 일이 오후 4시가 좀 넘으면서 거의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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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경운기를 타는 일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 김영래

짧은 농사체험이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체험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체험만큼 좋은 교육은 없을 것이며 앞으로 아이들에게 이런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 주어야겠다.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시골마을 한쪽엔 산 그림자가 덮고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밭 옆에 있는 산속으로 갔다. 4월의 꽃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하얗게 핀 조팝나무 꽃, 돌 틈새를 비비고 자리 잡아 앉은 제비꽃, 빨갛게 흙이 흘러내린 비탈의 노란 양지꽃, 잡초가 무성한 무덤가에 핀 할미꽃, 먼 산의 산 벚꽃까지. 신선한 연초록 잎새는 봄 향기를 쉴 새 없이 날렸다. 아이들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짚어가며 자연공부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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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이 정겹게 느껴진다. ⓒ 김영래

경운기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도 아이들의 입가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아마도 어떤 놀이동산보다 더 즐거웠던 듯싶었고, 이런 일을 싫어하지 않는 아이들이 대견스러웠다.

집에 들어와서 뒤 안에 난 두릅을 따서 전을 붙여 저녁을 먹고 어둑어둑해지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오늘도 언제나 그렇듯이 아이들이 떠나는 길 뒤에서 아쉬운 듯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을 가르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을 가르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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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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