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데이, 노동자들의 소원을 들어보다

[현장]117주년 세계 노동절 기념 대규모 노동자대회

등록 2007.05.01 21:27수정 2007.05.0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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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동절을 맞아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제117주년 세계노동절기념 노동자대회에서 민주노총 산하 단위노조 깃발이 입장하고 있다.

노동절을 맞아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제117주년 세계노동절기념 노동자대회에서 민주노총 산하 단위노조 깃발이 입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a 노동절을 맞아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제117주년 세계노동절기념 노동자대회에 다단계 하도급 철폐 등을 요구하는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노동절을 맞아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제117주년 세계노동절기념 노동자대회에 다단계 하도급 철폐 등을 요구하는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요즘 매일 죽음을 꿈꾸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악법이 통과되고, 앞이 보이지 않는 희망을 끌어 앉고 힘겨운 비정규직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함소란(53·르네상스호텔 노동조합 사무국장)씨는 1일 서울 종로 대학로에서 열린 노동자대회 도중 무대에 올라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았다.

함씨는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행사에서 여성연맹 등 여성 노조원 10여명과 무대에 올라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거리에서 맞은 노동절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함씨가 전한 그와 동료들의 처지는 점차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비정규직, '떨어질 수 없는 아픔'이 되다

함씨가 속한 르네상스호텔 노조는 지난 2002년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환된 것에 반발한 룸메이드 출신 여성들로 구성됐다. 거리로 나온 지 486일째다.

그는 "14년 동안 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몸은 힘들지만 매년 오르는 월급과 보너스로 딸을 교육시키며 하루하루 희망의 탑을 쌓았다"며 "하지만 호텔은 경영 악화를 이유로, 여성인 우리 부서만 구조 조정했고,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3/1로 줄어든 월급과 노동탄압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비정규직이라는 낯선 이름이 이제 떨어질 수 없는 아픔이 됐다"며 "파견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사측의 해고와 비정규직의 파견이 반복되면 이 나라는 비정규직으로 넘쳐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a 노동절을 맞아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제117주년 세계노동절기념 노동자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파견법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노동절을 맞아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제117주년 세계노동절기념 노동자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파견법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파견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용자가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근로자와 새로 계약을 체결하려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와 관련, 노동계에서는 "사측이 경비 절감을 위해 고용기간 2년이 되기 전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내보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함씨는 "빈곤층으로의 전락은 순식간이었다"고 말했다. 줄어든 수입 탓에 적금, 보험 등을 해약했고, 쌀통은 바닥나기 일쑤였다. 냉장고는 비어갔고, 고지서는 쌓였다. 함씨의 해직 이후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딸마저 류마티즘에 걸려 하던 일을 접어야 했다.

함씨는 자신의 행복지수를 '마이너스'라고 단언했다. 그는 "행복이 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호텔 룸메이드로 평범하게 살았던 것이 행복이었던 것 같다"며 "지금 내게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사치"라고 말했다.

행복지수를 '짜게' 매기는 것은 남성 노동자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노동자대회에 경기서부지역 건설노동자로 참석한 박아무개(53)씨는 "행복지수가 100점 만점이라면, 나는 20점 정도"라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묻자 박씨는 "돈 좀 많이 벌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자식들 공부시켜야 하는데, 지금 수입으로는 암담하다"고 답했다.

박씨의 수입은 아내와 함께 벌어 1년에 2500만원 정도. 매일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12시간 일해 받는 일당은 10만원. 이마저도 건설 현장이 없는 날은 집에서 쉬어야 한다. 한달 수입 200만원으로 네 식구가 안산에서 살고 있다.

그는 "건설 경기가 없는 겨울에는 한달 동안 수입이 없을 때도 있다"며 "노동환경이니 뭐니 해도 일이 꾸준히만 있어주면 감사하다"고 말했다.

노동절에 만난 이주노동자 "내 행복지수는 빵점"

a 노동절을 맞아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제117주년 세계노동절기념 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노동절을 맞아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제117주년 세계노동절기념 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a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제117주년 세계노동절기념 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 백기완 선생, 민주노동당 천영세 최순영 의원.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제117주년 세계노동절기념 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 백기완 선생, 민주노동당 천영세 최순영 의원.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노동자의 현실이 이와 같다면, 이주 노동자들의 삶은 어떨까. 행사에 참여한 마숨(방글라데시·이주노동자노동조합 사무국장)씨는 행복지수를 묻자 "0점"이라고 답했다.

마숨씨는 "이주 노동자들은 인종차별, 언어폭력, 문화적 차이 등으로 노동 현장에서 엄청난 스트레를 받고 있다"며 "고향에 있을 때에 비해 돈은 많이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행복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못한지 3년이 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소리도 듣지만, 이주 노동자들이 나같은 대우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우리는 한국 경제에 해를 끼치려는 사람들이 아닌데 우리를 나쁘게만 보는 한국인들을 만나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96년 입국한 마숨씨는 "장안평의 섬유공장 등에서 일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지만, 사기를 당하고 다 날렸다"며 "이주노동자가 40만명이 넘는 상황에서 우리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고쳐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a 노동절을 맞아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제117주년 세계노동절기념 노동자대회가 열렸다.

노동절을 맞아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제117주년 세계노동절기념 노동자대회가 열렸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이석행·이하 민주노총)은 117주년을 맞은 노동절(5월 1일)을 맞아 서울 대학로에서 대규모 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오후 1시부터 '비정규직 확산법 무효,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 노동자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오후 2시부터 1만여명(경찰 추산 7천명) 노동자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허영구 부위원장이 이석행 위원장을 대신해 낭독한 대회사에서 "오늘은 선배 동지들을 기억하고 숭고하고 아름다운 뜻을 기리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특히 올해는 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20주년을 맞는 해이자,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되는 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 노동자들의 현실은 너무나도 암울하다"며 "경제종속, 구조조정과 대량실업을 강요하는 한미FTA가 강행되고,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만에 최대의 경제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위원장은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버릴 비정규확산법 시행령이 7월 1일부터 강행되면 이제 대한민국 땅에서 온전한 일자리를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은 현 정부를 향해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무효 선언 ▲비정규직 법안 전면 개정 ▲특수고용 노동자 등의 노동3권 보장 ▲산별교섭 법제화 ▲사립학교법 재개정안과 국민연금법 개정안 중단 등을 요구했다.

이날 행사에는 미국 노동조합 관계자가 참석해 지난달 1월 체결된 한미FTA를 강하게 성토했다.

제프 보그트 미국노총 산별회의 대표는 연대사에서 "한미FTA는 양국의 노동자들에게 해악적인 것"이라며 "비밀스럽게 진행된 협상은 노조와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전혀 반영 못한 반노동자적인 협상"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오후 4시 45분 노동자대회를 끝내고, 대학로부터 이화동-종로2가-서린로터리까지 3.1km 거리를 행진했다.

한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과 함께, 이주노동자와 함께'라는 주제로 제2회 마라톤대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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