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여성발전센터의 문화교실시간표. 저렴한 비용에 알찬 내용이 가득하다.최육상
이날 22명 수강생들 중 유일한 청일점이었던 윤언병(68)씨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배우는 것은 창피한 게 아니다"며 컴퓨터 공부를 통해 남은 인생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3년 전 대기업에서 정년퇴직을 하고서도 작년까지 하루 8시간씩 일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일을 안 하다 보니, 산을 가도 운동을 해도 한두 시간뿐이더라고요. 컴퓨터를 배워서 뭘 한다기보다는 다시 삶을 열심히 살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랄까, 뭐 그런 거지."
이들의 컴맹 벗어나기는 이 날로 두 달째 접어들었다.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오전에 1시간 30분씩 진행되는 컴퓨터 수업은 3개월 일정으로 오는 6월 말까지 이어진다. 이들은 한결같게 3개월 수업을 마치면 상급반에서 계속 컴퓨터를 배울 계획이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수업 시간 내내 어머니 같은 수강생들에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언니"라고 부르던 민경랑(34) 강사는 어르신들이 컴퓨터를 잘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이내 특유의 명랑한 웃음으로 답했다.
"저는 항상 '글씨만 잘 읽으면 컴퓨터를 잘할 수 있다'고 말씀 드려요. 초등학생들은 겁이 없어서 이것저것 아무거나 막 눌러보다가 안 되면 선생님을 찾는데, 어르신들은 겁이 많아서 '컴퓨터가 고장 나면 어쩌지?'라고 시도조차 잘 못해요. 컴퓨터를 배울 땐 그런 걱정하지 마세요. 컴퓨터 고장이요? 고치면 되잖아요."
이어 민 강사는 "컴맹 탈출은 초등학생들에게도 쉬운 일"이라며 "컴퓨터가 안내하는 글씨를 잘 읽고, 마우스와 키보드를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도록 손가락 운동을 조금만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자리를 막 뜨려던 이들의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초등학교 1학년 공부보다 힘든 게 컴퓨터 수업이야!"(윤언병)
"연필을 처음 잡을 때보다 마우스 다루기가 더 어려워!"(김정희)
"왕초보반이지만 너무 힘들어!"(홍옥순)
잊고 지내던 '이름'을 되찾아준 이메일과 아이디
결혼해서 누구의 아내로, 자식을 낳고 다시 누구의 엄마로, 손자와 손녀를 보고 또 누구의 할머니로 불리고 있을 이들. 취재 질문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는 듯 머뭇머뭇거리던 이들은 또다시 자식들과 의사소통을 위해 배움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알고 있을까. 컴퓨터교육을 통해 만들 이메일과 아이디가 결혼 이전 OO씨라고 불리던 것처럼, 자신의 다른 이름을 찾아준다는 것을. 이래저래 왕초보반의 컴맹 벗어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