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오, 돈에 미쳐 당신을 이리 보내오"

자전거 사고로 실족사한 조선족 여인, 각지에서 온정 베풀어

등록 2007.05.04 07:17수정 2007.05.0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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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포시 석정리에 위치한 육군 제3957부대

김포시 석정리에 위치한 육군 제3957부대 ⓒ 김정혜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고향의 부모님 생각이 먼저 났습니다. 만약에 내 부모님께 그런 사고가 난다면 부모님이나 저나 얼마나 난감하겠습니까. 그래서 작은 도움이라도 보태 드리고 싶었습니다."


경주가 고향인 올해 23살의 류명신 상병. 좀더 많이 도와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모쪼록 완쾌돼 가족들 품으로 무사히 돌아가실 수 있기를 빌고 또 빌었건만 끝내 숨졌다는 소식엔 한동안 멍해졌었다고 한다.

"저 역시 부모님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고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사고 아닙니까. 내 부모님께도 또 제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렇게 생각을 하니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마음이라도 함께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경기도 광명이 집이라는 올해 21살의 김성범 이병. 군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부모님 이야기에 설핏 감정이 북받치는 듯했다.

이등병에서부터 병장에 이르기까지 아니, 전 부대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마음은 오직 하나였다. 사경을 헤매고 누워 있는 그 조선족 여인이 의식을 찾아 주기를, 그리하여 건강한 몸으로 딸자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빌고 또 빌며 그들은 사랑의 모금함을 채웠다.

그러나 그 조선족 여인은 무심하게도 그들의 애절한 바람을 뒤로 한 채. 홀로 쓸쓸히 눈을 감고 말았다. 마지막 가는 길, 눈물 흘리며 따스하게 손잡아 주는 이 하나 없이 너무도 쓸쓸하게 홀로 세상을 떠났다.


53살 K씨, 1월 병든 남편 위해 한국 땅 밟아

a 사고를 당한 조선족 여인의 남편

사고를 당한 조선족 여인의 남편 ⓒ 김정혜

53살의 K씨가 한국에 온 건 지난 1월. 11개월 전 미리 한국으로 온 남편이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남편이 머물고 있던 곳은 경기도 김포시. 막상 와 보니 상황은 생각보다 더 암담하였다. 돈을 벌어 오겠다며 빚까지 내어 한국으로 떠난 남편은 일을 하다 다쳐 거동조차 불편한 상태였다.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가 무엇보다 급급한 상황이었다.


제대로 된 직장 찾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식당일이며 일용 잡부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몸져 누운 남편, 그리고 심양에 두고 온 딸자식을 위해서.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녀에게 있어 그 두 사람은 힘겨웠던 지난 4개월을 그렇게라도 버티게 해준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지난 4월 19일. 여느 아침처럼 K씨는 일 나갈 채비를 하고 서둘러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날따라 다녀오마고 눈인사를 건네는 아내의 퀭한 두 눈이 남편 L씨는 유독 마음에 걸렸었다고 한다. 순간, 갑자기 북받치는 서러움을 느꼈단다.

그건, 가장으로서의 무능력함에 스스로 서러워졌음일 것이다. 아내가 출근을 하고도 한참 동안 그 서러움에 목이 매여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그 순간. L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내의 사고 소식이었다.

사나흘여, 인근 공장에 일당 일을 나가던 K씨는 그날 아침에도 자전거로 출근을 했다. 사고 지점은 공장 못 미친 내리막길. 경찰 조사에 의하면, 내리막길에서 자전거가 거꾸로 곤두박질친 것이라고 한다. 자전거 사고치고는 꽤 큰 사고였다.

돌에 심하게 부딪힌 것으로 추정되는 K씨의 머리는 그야말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고 한다. 병원에 도착할 당시엔 이미 아무것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고, 그나마 생명이 붙어 있는 것도 기적이었다고 하나성심병원 이순규 원장은 당시를 설명했다.

"119구급차에 의해 병원에 실려 올 당시, 수술이고 뭐고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어요. 심폐 소생술로 여러 번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게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전부였어요. 늘 그렇지만, 실오라기 같은 생명 줄을 부여잡고 마지막 사투를 벌이는 환자를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할 땐 의사로서 자괴감이 들어요. 특히 이번 경우는 더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분이 제게 찾아와 차라리 환자를 죽여 달라고 눈물로 사정을 했어요. 그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죠. 이어 통곡을 하던 남편이 환자의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혔어요. 추측컨대, 병원비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남편의 간곡함에 장기 기증을 위한 검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어렵게 된 것이 거의 모든 뇌기능이 정지해 있던 상태라 장기도 이미 제구실을 못하고 있었어요."

그 즈음. 환자의 딱한 소식이 외국인근로자센터 이재경 목사에게 전해졌다. 소식을 들은 이재경 목사는 도움의 손길을 찾아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그러던 중 육군 제3957부대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부대원들이 K씨를 위해 모금 운동을 펼치고자 한다는 것이다.

"우연히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간부회의 때 K씨를 도울 방법에 대해 논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십시일반이라는 옛말처럼 간부들끼리라도 정성을 모아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각 내무반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그 즉시 각 내무반에 모금함이 만들어졌습니다."

각 내무반에 모금함이 설치되고 장병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성을 모으는 모습에 정말 가슴이 뜨거워지더라는 조성호 중령. 지휘자로서 새삼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3957부대 장병들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입원한 지 11일만인 지난 30일 오전. K씨는 기어이 이승과 인연의 손을 놓아 버렸다.

한 푼 두 푼 모금함을 채워 가던 장병들에게도 K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K씨의 쾌유를 비는 마음이 절절했던 만큼 K씨의 사망 소식은 장병들을 한동안 멍하게 하였다고 한다. 결국 3957부대 장병들은 채우다 만 모금함을 열게 되었고 지난 5월1일. 92만원의 성금을 외국인근로자센터 이재경 목사에게 전달하였다.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a 조선족 여인의 허망한 죽음에 따스한 온정을 펼쳐준 하나성심병원과 장례식장

조선족 여인의 허망한 죽음에 따스한 온정을 펼쳐준 하나성심병원과 장례식장 ⓒ 김정혜

조선족 여인 K씨의 죽음은 결코 평범한 죽음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한국이 어머니의 고국이니 K씨에게도 한국은 분명 고국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따뜻한 곳만은 아니였던 것 같다.

'코리안드림'이라는 부푼 꿈에 빚까지 내어 한국으로 떠난 남편. 그러나 남편에게도 그녀에게도 '코리안드림'은 그저 이루지 못할 한 조각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 L씨에 의하면 4개월여, 그녀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고 한다. 평소 성실이 몸에 밴 탓인지 식당 일에 공장 일당 일에 그나마 일감이 꾸준했다고 한다. 그러나 꾸준한 일감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에선 늘 어두운 그림자가 걷히지 않았다고 한다.

K씨는 입버릇처럼 중얼거렸다고 한다. '부지런히 벌어 딸 시집보낼 밑천이라도 장만해야 할 텐데'라고. 그러나 두 사람 입에 풀칠하느라, 남편 병원비 충당하느라 그녀의 야윈 두 어깨를 천근만근의 쇳덩이가 짓누르고 있었음은 굳이 남편의 하소연이 아니더라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 그녀가 어이없는 자전거 사고로 생명을 잃고 말았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그녀 곁엔 남편조차 없었다고 한다. 병원비 몇 푼이라도 구해 볼 요량으로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느라 남편 L씨는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에 손 한번 잡아 주지 못했다고 한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아니 한 여자로서의 삶치곤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또 너무나 허망한 삶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어처구니없고 허망했던 그녀의 삶이었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그리 쓸쓸하지 않았다.

a 외국인근로자센터 이재경 목사에게 성금을 전달하는 육군 제3957부대 부대원들

외국인근로자센터 이재경 목사에게 성금을 전달하는 육군 제3957부대 부대원들 ⓒ 김정혜

3957부대 장병들의 성금에 이어 또 다른 따스한 온정의 손길이 있었다. 바로 K씨를 치료했던 병원과 사망 후 시신을 안치한 장례식장이다. 그간 K씨의 치료비를 정산해 보니 400만원이 넘었다. 3957부대 장병들이 모은 성금 92만원의 4배를 웃도는 금액이었다.

무일푼인 L씨로선 병원비는 차치하고라도 아내에게 수의 한 벌 못해 입힐 처지였다. 이런저런 사정을 전해 들은 하나성심병원 이순규 원장과 장례식장 이안재 대표는 3957부대 장병들이 모은 성금 92만원으로 이제까지의 병원비와 장례비 일체를 모두 해결해 주기로 한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남편 L씨는 그저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그때서야 휘청거리는 몸을 일으켜 아내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내의 시신을 향해 한 번 두 번 큰절을 올리던 남편 L씨. 얼마나 참았을까. 기어이 터지는 통곡 속으로 애 끓는 몇 마디가 섞여 들었다.

"미안하오. 돈에 미쳐 당신을 이리 보내오. 나를 용서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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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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