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과 소외는 휴머니즘의 도구?

[드라마 비평] MBC 수목 미니시리즈 <고맙습니다>

등록 2007.05.04 13:19수정 2007.05.04 13:21
0
원고료로 응원
예전에 한 신문에서 낙도 청년 장가보내기 운동을 했다. 마침 방송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자 전국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결혼하겠다고 연락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곧 짐을 싸 나갔다. 낭만적으로 보이던 섬에서 막상 살려니 갑갑하기만 했을 것이다. 섬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것은 불행이나 고통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의 일상을 휴머니즘, 낭만주의로 그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 면에서 일단 드라마 <고맙습니다>는 분석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분석할 기준이 하나 더 첨가될 듯 싶다.

소설이나 만화를 창작하다보면 고민이 생긴다. 사람의 목숨을 마음대로 빼앗아도 되는가 싶다. 혹은 질병에 걸려 고생하는 장면을 넣을까 뺄까 고민도 한다. 어느 감독은 어떠한 장면을 넣으면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했다.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려면 이러한 고민쯤은 하지 않아야 한다. 이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떤 장치와 도구, 장면 설정이 필요한지 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과감하게 무감각하게 감동을 위해서라면 죽음과 질병, 고통의 삽입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TV 드라마 작가는 더욱 그러하다. 이 때문에 잘 나간다는 드라마 작가들은 자신들이 만들면 시청률 확보는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친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작가의 작가적 능력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데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 포스터.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 포스터.MBC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 봄이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한쪽에서는 에이즈에 감염된 봄이가 에이즈 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불식시키는데 일조를 하지 않겠는가 기대도 한다. 과연 그럴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다른 편견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너무 아름답게만 고맙게만 그리기 때문이다.

감동을 자아내기 위해서 드라마가 선택한 것은 아이의 치명적 질병이다. 그것도 반드시 죽게 되는 에이즈라는 질병이다. 더구나 그의 엄마는 미혼모다. 미혼모에 딸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렸다. 섬은 불행한 그들이 갇혀 사는 고립의 공간이지만, 드라마는 아름답게 그린다. 그렇게 그리는 이유는 감동을 자아내기 위해서다. 그들의 불행은 결국 감동을 위한 장치였다.

죽어가는 어린 아이, 봄이를 설정한 것도 대단하다. 이 드라마에서는 아이가 갈등의 원인은 아니지만, 어른들의 감동을 자아내기 위해 죽는 도구가 된다. 정작 대단한 것은 따로 있다. 봄이는 죽을병에 걸렸고, 그 병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수혈로 걸렸는데, 성인군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점이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초탈하고 맑고 순수하며 따뜻해야 하는 것일까? 더구나 외부 반응에 즉응적인 아이가 말이다. 드라마에서 아이 봄이는 인간적이지 못하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다. 도대체 저런 아이가 있을까 싶다. 물론 작가는 그러한 장면과 대사, 장치들을 사용할 때 어떤 반응이 나올지 꿰고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노하우는 결국 편견을 오히려 더 만들어낸다. 고통과 아픔, 아니 질병이 감동의 대상이 되는데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아이는 순수하고 맑아야 한다는 편견이다.


백남준이나 천상병은 꼭 어린 아이와 같았는데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무서우면 무섭다라고 말하고, 원망은 원망대로 하며, 화가 나면 화를 낸다. 봄이는 죽을 병에 걸렸어도 세상을 다 용서해야 한다. 어린 성자의 탄생이다. 봄이는 어린 아이가 아니고 어른들의 또다른 투영체로 보인다. 드라마를 통해 아이들은 이러한 어린이 상을 형성한다. 어른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상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어린이 상이다.

여전히 한국 드라마는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고, 아이는 어른의 감성을 위한 존재로 대상화 된다. 성인 군자형 아이는 다만, 미디어가 어른 시청자를 위해 발라주는 아바타일 뿐이다. 에이즈 환자에 대한 주목은 <너는 내 운명>에서 예견되어 있던 아이템이다. 여기에 낭만적 휴머니즘이 결합된 <고맙습니다>는 봄이가 착하고 맑고 선한 아이라 더 살리고 싶다. 물론 그렇지 않으면 살리고 싶은 마음이 나겠나 싶다.


불행과 고통이 감동의 수단이 될 때 현실성은 사라진다. 또한 그 고통을 현실적으로 감내할 수단도 언질하지 못하고 만다.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 중에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개는 불치병과는 관계가 없기에 찡한 감동을 느끼고 나면 뿌듯할 것이다. 어차피 자기와 관련이 없는 일이니 말이다. 오히려 그러한 일상이 없는 지금의 삶에 감사해 하면서 눈물 흘리고 잊어버리면 된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대상화하고 희화화하면서 극적 이완의 장치를 사용하는 이들은 치매에 걸리지 않았기에 맘대로 다룰 것이다. 불행과 고통, 소외를 다룰 수는 있지만 낭만과 순수, 극적 감동이라는 관점에서만 다루면 반휴머니즘적이다. 또 다른 편견 강화와 휴머니즘의 수단화 때문이다. 섬에 대한 환상으로 촬영장이 러시를 이루면 지역경제가 산다고 하니 그런 면에서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의미가 더 있는지 모른다.
#고맙습니다 #MBC #수목드라마 #봄이 #에이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무 의미없는 자연에서 의미있는 일을 위하여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4. 4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5. 5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