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인생의 짐을 지고 봉우리를 오르는 사람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19] 한계령풀

등록 2007.05.07 08:21수정 2007.05.0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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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풀 ⓒ 김민수

한계령풀이 피었다는 소식, 그리고 이제 피었으니 곧 질 것이라는 협박 아닌 협박에 올해 만나지 못하면 또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그를 만나러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한계령', 그냥 이름만 들어도 먹먹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내설악과 남설악의 경계릉을 이루는 곳, 인제와 양양의 분수령이 되는 그곳에 한계령휴게소가 있다. 구비구비 강원도 산길을 돌고돌아 한계령휴게소에 서서 날씨가 좋은 날이면 기다란 뱀처럼 구불구불한 산길 끝 저편에 동해바다가 보였다.

오색약수터 근처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하여 '한계령풀'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뿐, 그녀를 만나기 위해 한계령으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환경부에서 지정한 희귀식물이지만 막상 그들이 피어 있는 곳에 서보니 지천으로 그들을 피어 있었다. 도감상으로 5월에 핀다고 되어 있지만 4월 말인데 벌써 내년을 기약하고 있었으니 그들의 삶은 봄보다도 더 짧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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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한계령풀을 만나러 가는 길, 양귀자씨의 단편소설 <원미동 사람들>에 나오는 '한계령'을 떠올렸다.

여류소설가인 나는 어느 날 25년전 고향 전주의 철길 옆동네에 살던 진빵집 딸 박은자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그녀는 부천의 한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으며 다음 주면 신사동에 카페를 개업하게 되니 이번 주에 꼭 자신을 찾아왔으면 한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 나는 옛 추억을 떠올리며 네 명의 오빠와 자신을 늠름하게 키워낸 큰오빠를 기억한다. 은자의 전화통화 이후 어머니로부터 큰오빠의 상태가 좋지 않다며 매일을 술로 지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큰오빠는 고생 끝에 얻은 성공 뒤의 허망함을 느끼는 것이리라. 결국 소설 속의 나는 은자를 찾아가고 싶었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은자가 마지막으로 부천에 있는 나이트클럽에 출연한다는 일요일, 동생으로부터 큰오빠가 고향집을 팔기로 했다는 전화를 받고, 큰오빠가 고향집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으로 인해 무척이나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날 은자를 찾아가 어느 여가수가 부르는 '한계령'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큰오빠의 살아온 세월과 무게가 떠올라 눈물을 흘리며 노래에 빠져든다. 그는 그 여가수가 은자라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온다. 그녀가 부른 노래 <한계령>은 가파른 한계령에 올라서서 밑으로 한없이 펼쳐진 깊고 깊은 산 속을 바라볼 때의 막막함에 대한 노래이다. 은자는 바로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을 통해, 다방과 밤업소를 전전하고 임신한 채 무대에 섰다가 사산한 것과 같은 자신의 암울하고 막막한 기억들을 삭여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꿈속에서 어두운 하늘 아래 황량한 산을 오르고 있는 일련의 사람을 만난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짐꾸러미를 메고 있었고, 그 중에 자신의 오빠도 끼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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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이 땅의 소시민들은 모두 이렇게 자기의 짐꾸러미를 지고 힘겹게 봉우리를 오르고 있다. 그 봉우리에는 그들을 기다려줄 사람도 없다. 그래서 그들이 지고 가는 짐꾸러미는 흡사 '어두운 인생의 짐'처럼 느껴진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아니 시한부 인생을 남겨두고 있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지금 내가 의미를 두고 하는 일들을 그때도 할 것인가 자신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냥 앞만 보고 달려왔고, 이젠 조금의 여유와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위치에 서고 보니 여지껏 내 삶은 '어두운 인생의 짐을 지고 봉우리를 오르는 군상' 중 하나였을 뿐이다.

아이들을 살린다고 한 일조차도 아이들을 살리는 일이 아니었으며, 경쟁사회구조 속에서 뒤처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공존의 길이 아닌 공멸의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시험점수에 태연한 척하면서도 시험점수로 아이들을 닥달했고, 학원으로 아이들을 몰아넣었으며 그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가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아이들도 나도 죽는 그 길을 걸어왔고, 걸어갈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쉰다.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서 부터 이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어느새 '한계령'에 나오는 큰오빠가 되어 있음에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이제 내리막길만 남은 봉우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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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한계령풀은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그래서 어쩌면 난생 처음 만난 꽃이면서도 마냥 슬픈 느낌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를 생각했다. 현실에서 십자가는 조롱거리가 되어버렸고, 장식품으로 전락되었다. 그것은 예수를 모르는 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목숨 걸고 예수를 따르겠다는 그들에 의해 그리 되었다. 고난 없는 영광, 죽음 없는 부활은 껍데기뿐인데 그 껍데기를 알곡인 것처럼 포장하는 기술만 남아 이젠 예수를 말하는 이들로 인해 예수는 또 다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른다.

그에게 돌팔매질을 하고 침을 뱉고, 따귀를 때리고 조롱하던 자들이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돌팔매질을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만들어 놓은 우상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는 예수와 어두운 인생의 짐을 지고 봉우리를 오르는 사람들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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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트리나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너는 뭔가 알고 있었지? 그렇지? 기다림이 '용기'라는 것을."
"꼭대기엔 아무것도 없고 그것은 신경 안 써도 된단 말이야!"


그는 자신의 말 속에서 꼭대기에 오르려는 본능을 얼마나 잘못 해석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기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날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꼭대기를 향해 서로를 짓밟으며 올라가는 애벌레같은 삶, 거기에서 이탈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만 같은 불안감으로 '이건 아니지'하면서도 지금까지 걸어왔던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군상들, 그들과 동행하고 있는 나, 모두가 어두운 인생의 짐을 지고 봉우리를 오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돌팔매질을 하지 마라. 침을 뱉지도 말라.
#한계령풀 #한계령 #양귀자 #희귀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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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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